여기 한 여자가 있습니다. 예민한 그녀에겐 거슬리는 것이 많아 무엇을 해도 딱히 즐겁지가 않습니다. 항상 신경이 곤두서 있어 피곤한 그녀는 그래도 정말 즐거운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부지런히 움직입니다. 새로운 걸 배워보기도 하고 사람들을 만나보기도 합니다.
회사 일은 여전히 재미가 없지만 꾸역꾸역 하다 보니 신입 때 사수에게 욕먹고 숨어 울던 그녀가 일 잘한다는 소리도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까칠하다는 이야기를 건너 건너 또는 직접적으로 듣습니다. 이쯤 되면 타고난 성격을 어쩌라고 싶기도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남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눈치가 없는 듯 예리한 그는 예민한 여자의 기분을 잘 살펴줍니다. 대부분의 날은 무던하게 지나가지만 말이 잘 통하지 않아 짜증이 치솟는 날도 있고 답답해 속이 터질 것 같은 날도 있습니다. 한번씩 터지는 여자의 짜증에도 그는 덤덤합니다. 토닥토닥 우쭈쭈에 밤송이 같이 뾰족하던 그녀의 마음은 점점 말랑말랑해집니다.
한 달, 두 달, 그리고 일 년이 지났습니다. 일 년 뒤 일본으로 떠나려고 했던 남자는 생각을 바꾸어 여자 옆에 좀 더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이 년, 삼 년.. 둘은 함께하는 미래를 생각해 봅니다. 육 년, 칠 년.. 그는 여자의 꿈을 위해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합니다. 타지에서의 생활은 생각만큼 쉽지 않고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여자는 남자와 함께라면 어떻게든 헤쳐나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녀는 그를 만난 뒤로 조금은 바뀐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뾰족하던 그녀의 모서리가 조금씩 둥글려지면서 그녀를 거슬리게 하던 것들이 하나둘씩 사라집니다. 세상이 예전만큼 짜증 나지 않네요.
이번 주말에는 시골에서 심심한 여자를 위해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 남자가 큰 마음먹고 밖에서 무언가를 해보자고 합니다. 밖에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던 여자는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집순이가 되었지만 같이 뭔가 하고 싶은 남자를 위해 알겠다고 합니다. 대신 비가 오면 그 핑계로 불멍이나 할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