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째 회사 쨈
집에 설치된 히트펌프가 고장 난 걸 모르고 지내는 일주일(혹은 더 오래) 동안 실내온도가 13-15도를 왔다 갔다 했다. 난 추워서 전기장판에 납작 엎드려 있었고 고양이들도 캣타워에 올라가 얼음장 같은 바닥에 내려오지 않았으니 집이 춥긴 정말 추웠다.
히트펌프를 고친 기쁨도 잠시. 토요일 오전부터 몸이 으슬으슬하니 몸살 기운이 돌았는데 약속 펑크내고 싶지 않아 저녁에 회사 동료들이랑 저녁 먹으러 꾸역꾸역 나갔다가 그만 감기몸살에 걸리고 만 것이 아닌가. 일요일 아침에 눈을 떴는데 목이 까끌까끌한 정도가 아니라 물도 삼킬 수 없을 정도로 따가운 데다 목소리도 나오지 않고 온몸은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팠다. 난 몸살이 나면 살갗이 까끌하니 잠옷이 닿는 것도 거슬릴 정도로 예민해지는 편이라 아픈 사람도 간병하는 사람도 녹록지가 않다.
정말 까다로운 환자네요!
옆에서 따뜻한 물주머니를 가져다 침대에 넣어주고 마실 물이랑 약도 가져다주면서 간병하던 남편은 아프면 왜 이렇게 사람이 까칠해지냐고 우린 정말 같이 아프면 안 되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아프면 다 예민한 거 아닌가? 했더니 자기는 아니란다. 생각해보니까 남편은 아플 때도 그냥 먹고 자는 게 다라 신경질 부린 게 좀 미안해졌다.
혹시 코로나에 걸린 게 아닌가 싶어서 수시로 체온을 쟀지만 다행스럽게도 열은 오르지 않았고 두통도 별로 없었다. 그냥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 같이 아프고 목이 심하게 아프다는 것뿐. 그렇게 일요일을 누워서 보내고 월요일이 되었는데 이건 도저히 아무리 나라도 (14시간 비행기 타고 파리 넘어와서 5시간 차 타고 회사가 있는 지역으로 넘어와서 자고 다음날 바로 출근한 사람) 출근할 수 있을 컨디션이 아닌 고로 보스한테 아파서 다 죽어간다고 월차 쓰겠다 하고는 계속 잤다. 그리고 화요일에 출근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했는데 이제는 옆에서 간병하던 남편이 아프기 시작했다. 내 컨디션도 아주 돌아온 건 아니라 찬바람 쐬면 다시 도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던지라 큰마음먹고 월차를 하루 더 연장했다.
환자가 둘. 각자 뜨거운 물주머니를 안고 누웠다. 옆에 2L짜리 물 한 병씩을 끼고서. 자다 깨서 배가 고프면 미리 비상용으로 사두었던 냉동 수프 데워먹고 집에 있는 사과 씹어먹고, 그나마 남편이 전날 약국 가서 사다준 약이 있어서 약 챙겨 먹었더니 아픈지 나흘 째에는 출근할 수 있게 되었다. 나보다 좀 늦게 아프기 시작한 남편은 아직도 환자 모드.
한국 같았으면 병원가서 주사 한방 맞고 쉬었을텐데. 여긴 예약없이 바로 갈 수 있는 병원도 없다. 운전해서 병원갈 정도로 기력도 없었지만. 여튼 이렇게 독한 감기는 몇년만이라 평소 건강관리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지나와서 아프면 서럽지..
평소 앓는 소리 안 하다가 이틀이나 회사를 쨌더니 보스도 놀랐는지 출근하니 괜찮냐며 걱정을 하길래 다죽어 가면서도 아직 살아있다고 큰소리를 쳤다. 한국이랑 달리 아파도 음식 시켜 먹을 곳도 없고 피카(냉동식품 전문점)에서 사둔 냉동 수프로 연명했는데 그건 좀 괴롭더라고 했더니 음식 없으면 사다 줄 텐데 말하지 라던 그. '마음만 받을게요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매니저한테 밥 좀 해달라고 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