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처럼 살기 편한 나라도 드물다는 것
연말 휴가를 이용해서 잠시 한국에 다녀왔다. 프랑스에는 고작 8개월간 있었을 뿐인데 평생 살았던 내 나라가 이렇게 새로워 보일 줄이야.
어딜 가나 잘 터지는 인터넷
지금 살고 있는 시골집에서는 브런치나 블로그 포스팅 한번 하려면 몇 번의 에러(중간에 인터넷이 끊어지거나 너무 느리기 때문에) 다시 시도하기를 눌러야 하고 그러다 보니 짜증이 나서 프랑스에서는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다. 써봐야 올리는데 시간이 더 걸리기 때문. 이것도 내가 사는 곳이 깡촌이라 더 그런 것도 있긴 한데 큰 도시라고 해봐야 지하철에서도 인터넷이 빵빵 잘 터지는 한국에 비할바가 못된다.
병원은 30분 컷
프랑스에서는 병원 가기가 너무 힘들다. 어디가 아프면 사는 동네에 주치의를 먼저 찾아가서 진료를 보고, 그다음에 주치의가 권하는 전문의를 찾아가야 한다. 이런 절차를 거쳐야 의료비 환급이 대부분 가능하고, 그렇지 않으면 엄청난 비용이 부과된다. 응급실은 있지만 여긴 주말에 갑자기 아프면 가는 곳이라기보다는 죽을 것 같을 때 가는 곳이라 어지간해서는 갈 수가 없다. (라디오에서도 수시로 공영광고가 나온다. 아프다고 응급실 가지 말라고) 심지어 동네 주치의들이 새로운 환자를 잘 받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8개월째 주치의 없이 지내고 있는지라 한국에 간 김에 그동안 미뤄두었던 진료를 몰아서 보았다.
내과에서 내시경, 안과에서 다래끼 약 타기, 치과에서 스케일링하고 정기검진 하기, 유방외과에서 정기검진하기 등등. 매일매일 다른 병원을 찾아다니느라 휴가를 다 썼지만 일부 인기 있는 병원 빼고는 당일에 가서 기다렸다가 약을 타는 데까지 30분도 안 걸렸다. 진짜 좋아.
언제나 열려있는 식당
프랑스에서는 파리 같은 대도시가 아닌 다음에야 정해진 시간 (점심은 12시에서 2시 사이, 저녁은 7시 이후) 외에는 식사를 할 수 없다. 한국도 요즘 오후 3시에서 5시 사이에 브레이크 타임을 가지는 식당이 제법 생겼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은 언제든 식사를 할 수 있지 않은가. 항상 계획적으로 움직이다가 부모님과 함께 산책을 하러 나가다가 배고파서 떡볶이를 먹으러 갔는데 오후 3시쯤에도 가서 먹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던지! 거기다 주문도 빨리 받고 음식도 빨리 나오고. 주문 한 번 하려면 세월아 네월아 느려터진 프랑스와는..
제시간에 맞춰 오는 기차와 지하철
우리나라는 좁은 나라에 사람들이 모여 살다 보니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다. 한파 때문에 기차 시간이 평소보다 좀 늘어지긴 했지만 일 년에 몇 번 있을까 말까 한 일. 서울에서는 배차 간격도 짧아서 차 없이 다니기도 좋았다(물론 창원은 자차가 없으면 쉽지 않다). 하필 내가 한국으로 떠나던 시점에 프랑스의 철도회사 SNCF에서 파업을 하는 바람에 캔슬되거나 지연된 기차가 많았고 우리가 그 피해자 중 하나가 되었던 지라 더 국뽕 맞은 것도 있을 듯.
저렴한 택시비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기차역까지 택시비가 25유로가 나왔는데 한국에서는 시내를 가로지르는 거리임에도 만원이 채 나오지 않았다. 택시비가 예전보다 오르긴 했어도 한국만큼 택시비 저렴한 곳도 잘 없지.
한밤중에도 안전한 거리 & 카페에 가방을 두고 자리를 비울 수 있다니!
한국에선 예전 동료들과 술을 마시고 밤길을 걸어도 (여럿이 걸었지만) 위험하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길에 사람이 많기도 하고 길 곳곳에 CCTV가 설치되어 있으니 대로변에서 무슨 일이 생기는 일은 잘 없는 것 같다. (프랑스에서는 해지면 잘 안나감) 같은 맥락으로 카페에서도 자리 맡으려고 가방만 던져두고 주문하러 가도 아무렇지도 않은.. 식사하면서 테이블에 폰이나 지갑도 잘 올려두지 못하는 프랑스에서는 생각도 못할 일이다. (프랑스에서는 기차 안에서도 소매치기 조심하라고 수시로 안내방송 나옴) 자리 맡는다고 가방 두고 카운터로 가던 친구보고 놀랐던 나..
빠른 배송
말해 뭐 해. 전날 주문하면 다음날 오전에 도착하는 로켓배송 정말 좋음. 어지간한 건 한국 가기 전에 미리 주문했었는데 깜빡하고 잊은 것들은 프랑스로 다시 출국 전에 급하게 주문했는데 빠짐없이 받을 수 있었다.
고작 일주일 들렀지만 한국에 살고 있을 때는 당연하게 누리던 것들이 (심지어 더 빨리 안된다고 불평하면서) 새삼스러웠다. 예전에 같은 팀이었던 동료들과 만나 한잔 하면서 들은 이야기가 있는데, 취중에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도 가물가물 하지만 이것만은 기억에 남는다.
"김 과장님, 과장님한테 정말 고마운 게 있어요. 하나는 새로운 환경에 도전하고 싶다는 동기부여를 해준 거고, 다른 하나는 외국에 나가고 싶다는 로망을 깨준거예요. 한국에서 사는 게 제일 편한 것 같아요."
"맞습니다!! 한국만큼 편한 곳이 없어요"
장점만 잔뜩 적긴 했지만, 사실 한국이라고 다 좋기야 하겠나. 일주일 지내는 동안 뉴스를 보면서 나오는 이야기라고는 한숨 나오는 것 밖에 없었고, 새삼스럽게 우리나라가 휴전 중이라는 걸 깨닫기도 했다. 프랑스에서 별생각 없이 지내는 동안 친구들은 또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고.. 재충전과 동시에 정신이 번쩍 드는 일주일이었다. 확실히 프랑스와 한국은 사람들이 삶을 대하는 태도에 차이가 있는 것 같다. 현재를 즐기는 프랑스인과 미래를 준비하면 채찍질하는 한국인. 나는 여기서 중심을 잘 잡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