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뀐 소비패턴 무엇
우리 집에서 돈 나올 구멍은 회사에서 주는 월급, 한국에 세주고 온 아파트에서 나오는 월세(이걸로 주담대 이자내니 똔똔이다), 그리고 취미로 하는 블로그에 한 번씩 꽂히는 광고수입 정도가 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여기에 남편 수입까지 더하니 애도 없는 부부 둘이 살기에 모자란 금액은 아니었을 텐데 뭔가 항상 빠듯했다. 사실 내가 좀 무턱대고 지르는, 절약이랑은 거리가 먼 인간이라 버는 족족 여행 다니고 예쁜 거 있으면 사고 하고 싶은 거 있으면 하고 그랬다. 뭐 어떻게 되겠지가 모토인 전형적인 욜로족.
그에 반해 남편은 없으면 없는 대로 별 욕심도 없고 돈 쓰는 취미도 없는, 가능하면 적당히 모아서 빨리 은퇴하고 싶은 파이어족이다보니 결혼 초반에 서로 다른 인생관 때문에 얼마나 갈등이 많았을지는 상상이 갈 것이다.
한국에서는 대체 어디에 그렇게 돈을 썼는지 어떤 달에는 카드값이 월급보다 더 나올 때도 있었다. 고양이 한테는 부부가 합심해서 아낌없이 쓰다 보니 작년에만 샤넬백 하나살 돈을 고양이들한테 썼던 것 같기도 하다. 하루 날 잡고 카드 고지서 분석을 해보니 어떤 달에는 배달 음식에만 60만 원 넘게 쓴 달도 있었다. 재테크에 빠삭한 지인들이 이 글을 읽으면 혀를 끌끌 차리라.
프랑스에 와서도 제버릇 개 못준다고 초반에는 비싼 소파사고, 전기 자전거 사고, 주말마다 레스토랑 가서 밥사먹고(그나마 한국에서는 매일 배달시켜 먹는 걸 프랑스와 서는 주말로 한정했으니 아낀다고 생각했지만 여기는 대신 외식비가 어마어마하다), 근교 도시에 계획 없이 놀러 다니고 (한 번씩 움직일 때마다 작게는 수백에서 크게는 천유로는 우습게 깨진다), 또 최근에는 남편이 과일을 수백유로치 벌크로 사서 통장에 빵꾸나는 바람에 시어머니한테 돈까지 빌리고 이래저래 빠듯했다.
그러던 우리의 통장 잔고가 프랑스에 온 지 10개월 만에 플러스로 돌아섰다. 만세! 남편의 과일 600유로치 구매사건이 우리 부부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주기도 했고, 겨울에는 날씨가 좋지 않아 주말에도 집이나 근처 동네에만 돌아다녔던 것, 밖에서 먹어봐야 딱히 맛있지도 않은 데다 집에 있는 야채와 저렴하게 판매하는 (프랑스 고기는 정말 싸다!) 고기로 집밥 해 먹고 남아도는 과일로 디저트도 만들어 먹은 것 등 생각해보니 돈 쓸 일이 정말 줄어든 것이다. 회사에서 집도, 차도 제공해 주는데 그동안 빠듯하게 (라고 쓰고 흥청망청이라고 읽는다) 생활했던 게 사실 말이 안 되는 거였지만.
확실히 백화점 안 가고, 로드샵 돌아다니면서 야금야금 지를 일이 없으니 식비 말고는 프랑스에서 받는 월급 쓸 일이 없다. 남편은 내 통장에서 이번 달 한 달 동안 나간 돈이 회사에서 자판기 커피 뽑아마시는 거랑 회사 식당 카드 충전 한 거밖에 없냐고 깜짝 놀라며 뭐 이쁜 거라도 하나 사라고 했는데(사고 있어..), 기왕 이렇게 돈이 모이고 나니 엄한데 쓰지 말고 두어 달 치 생활비로 쓸 수 있을 만큼의 비상금 및 틈틈이 여행 다닐 자금, 취미생활 할 수 있을 정도의 현금은 좀 모아두기로 했다. (유로는 만일을 대비해 좀 가지고 있는 게 좋을 것 같기도 하고)
외벌이가 되었지만 지출은 줄어서 한국에 있을 때만큼 (혹은 조금 더 많이) 모으게 되다니! 그나저나 이걸 핑계로 남편의 구직 의욕은 점점더 짜게 식어가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