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페코 May 04. 2023

외상으로 가져가세요

프랑스에서 외상을 할 줄이야






주말에 남편과 산책을 나갔다가 옆마을에서 농장을 발견했다. 식당도 하고 체험농장 같은 걸 하고 있다길래 목도 마르고 해서 커피나 한잔 할까 하고 들어가 보았다.


느슨한 펜스 뒤로 닭, 오리, 말, 알파카(?), 염소, 양 등등 다양한 동물들이 느긋하게 풀을 뜯고 있었고 넓은 부지 한쪽에 식당과 정육점을 겸하는 건물이 있었다.


우리는 삼겹살이랑 목살을 자주 먹는 편인데 아무래도 까르푸에서 판매하는 건 우리가 원하는 두께(한국에서 파는 두툼한 삼겹살)는 아니어서, 사장님한테 혹시나 하고 물어봤더니 원하는 두께로 잘라준다고 한다. 예전에 Bio Frais라는 유기농 식품 마트에서 통삼겹살을 발견해서 좋다고 먹었는데 알고 보니 베이컨 용으로 소금 간을 엄청 해놓은 거라 구워 먹었다가 망한 전적이 있어서 미리 소금 빼고 자르기만 해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새 고기가 들어오는 날이 일주일에 한 번이라 일단 예약만 해두고 그다음 주에 고기를 찾으러 갔는데, 하필이면 옆 마을 주말 마켓이 있는 날이라 사장님이 잘라둔 고기 전부랑 카드 리더기까지 들고 가버렸던 것.


운동삼아 나온 길이라 집까지 걸어가려면 한 시간 정도 걸릴 텐데 거기다 들고 있는 현금도 없어서 '으악 어쩌지' 했더니, 오늘은 외상으로 가져가고 계산은 다음에 올 때 하란다. 아이코 감사합니다 하고 고기만 달랑 들고 나오면서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아니.. 우릴 언제 봤다고 외상을 줘?"

"이 근처에 아시안 자기밖에 없잖아. 마을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우리 사는 집까지 알려줄걸요?"


그렇다. 시골인심이 좋은 것도 있지만 난 이 동네에서 희귀하다는 아시안이었던 것이다. 한국에서는 카드나 현금이 없으면 계좌이체도 바로바로 가능해서 외상 할 일이 없었는데, 프랑스에서는 계좌 이체를 하면 이틀정도 걸리다 보니 이런 일도 있나 보다.

작가의 이전글 인터넷 속도가 너무 느려서 글쓰기가 어렵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