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페코 May 23. 2023

느긋한 고양이와 게으른 집사의 콜라보

아무 계획이 없는 연휴



20대에는 쉬는 날이 사흘만 있어도 꾸역꾸역 최저가 항공권을 검색해서 가까운 곳이라도 놀러 다니곤 했는데. 명절 연휴에는 집에 붙어 있어 본 적이 없는데.


어찌하여 우리는 스위스와 이탈리아가 코앞(?)인 프랑스 국경 근처에 살면서. 연월차 쓰는데 눈치 주는 사람도 없고 여름휴가가 3주씩이나 되는 곳에 살면서 어디 갈 생각조차 없는가.


우수에 젖은 치치


이것은 다 고양이 때문이니라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하던 나는 고양이 집사가 된 이후로 본격 집순이가 되었고, 가뜩이나 사람 많은 곳 싫어하고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 히키코모리 남편은 고양이를 핑계로 더더욱 밖에 나가지 않으니, 간만의 징검다리 연휴로 나흘을 쉬게 되었건만 우리는 그저 집에서 뒹굴거렸을 뿐이다.


나는 연휴 내내 9시, 10시까지 늦잠을 잤는데 남편은 모모가 옆에 와서 깨우는 통에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에 일어났다고 한다. 참고로, 모모의 기상나팔은 6시부터 불기 시작한다.


아마도 새 구경중인


울어도 우리가 일어나지 않으면 침대에 올라와서 남편 옆에 누워있다가 내 위로 걸어 다니면서 재촉하기 시작한다. 모모에 약한 남편은 일어나서 사료를 채워주고 조금 더 버틴 내가 잠시 뒤에 일어나면 어느새 티구가 꼬리로 내 종아리를 감으며 아침인사를 한다. 머리부터 등까지 쓰다듬어 주고 발치에 누운 티구의 엉덩이를 토닥토닥해주면 우리의 아침 의식이 끝난다.


궁디팡팡 티구
뒹굴뒹굴


이쯤 되면 캣타워나 2층에서 자던 치치가 도도도 달려와 먀아- 하며 발치에서 인사를 해야 하는데 치치가 보이지 않는다. 아니, 얘가 어디 갔지? 간식 주머니를 흔들면서 온 집안을 찾아다녔는데 치치가 보이지 않아 혹시나 하고 캣티오로 향하는 덧문(볼레, volet)을 열었더니, 세상에.. 남편이 밤에 문단속을 하면서 치치가 밖에 앉아 있는지도 모르고 문을 닫은 것이다. 밤새 이 밖에서 얼마나 무서웠을까. 요즘 그나마 춥지 않아 다행이지.


집안에 개미약을 치느라 고양이들은 잠시 밖에 격리 한 날
또 문닫았어??

문을 열어주자 쏜살같이 들어온 치치는 사료도 먹고 물도 마시고 내 주변을 한참 맴돌다가 침실로 들어가서 뻗었다. 평소에는 고양이 3마리가 집안에 들어온 걸 다 확인하고 문을 닫는데 이 날은 남편이 뭐에 씌었는지 치치를 안에서 봤다가 착각한 것이다. 아휴.


밤새 집사들과 떨어져 밖에 있었던 것이 트라우마가 된 건지 치치는 그 이후로 부쩍 캣티오보다는 캣티오 앞에 있는 테이블 의자에서 쉬는 시간이 늘었다.


코 뽀뽀
오후만 되면 나가자고 문앞에서 우는 모모
실물이 훨씬 귀여워서 엄마도 놀라고 간 티구
요즘 좀 덜 싸우는 두녀석


비행기를 타고 한 시간만 가면 유럽 어디라도 갈 수 있지만 고양이와 함께라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좋은 우리. 우리가 사는 집은 마당이 탁 트여 있어서 요즘같이 날씨가 좋을 때는 마당에 나가서 맥주만 마셔도 힐링인 것. 아무래도 어른 둘이 캣티오 안에 들어가 있으면 답답해서 종종 집 앞에 선베드를 내놓고 앉아있는데 그러고 있으면 고양이들이 캣티오에 매달려서 우릴 보며 울고 난리다. 마음이 급해진 사람이 먼저 들어가는 수밖에..


숨은 고양이 찾기

요즘 우리 꿈은 고양이들과 함께 쉴 수 있는 중정이 있는 집을 짓는 것이다.


열심히 벌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프랑스에서 고양이 행동치료 전문가 만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