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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코 Jun 01. 2023

산책하다 냥줍 한 이야기

너는 어디서 왔니?


낮기온이 부쩍 올라가서 오후에는 제법 덥다. 오늘은 사무실에서 온종일 자리에 앉아있었더니 몸이 찌뿌드드해서 퇴근하자마자 남편을 재촉해 동네 산책을 나섰다. 


오후 6시에도 환해서 좋다. 그래도 저녁 무렵이라 그렇게 덥지는 않네. 이따 집에 가면 연어 해동해 둔 거 굽고 파스타 삶아서 저녁을 먹자. 이런 이야기를 두런두런 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검은색 고양이를 마주쳤다. 


몇 달 전부터 이 집 앞에서 자주 보이던 고양이인데, 현관 앞에 종종 앉아있더니 오늘은 옆 수풀에서 나오면서 내 옆으로 '먀아-'하면서 걸어오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고양이를 키워서 그런가 우리 동네 산책냥이들이 우리한테 관심이 많다는 건 알았는데, 유난히 우리 앞길을 막으면서 우리 다리에 왔다 갔다 하며 비비면서 아이컨택도 하고 여하튼 반갑다고 난리가 났다. 


여태 멀찍이서 보기는 했어도 이렇게까지 친근감을 표시한 적은 없는데 어쩐 일이람. 귀여워라.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 쓰담쓰담해 주었다. 


우리 치치만 한 크기지만 쓰다듬어 보니 훨씬 근육질이라 마당냥이의 포스가 느껴졌다. 


길에 쭈그려 앉아서 고양이를 한참 쓰다듬어 주고 있는데 요 녀석이 내 무릎에 냉큼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어머 귀여워라. 우리 애들은 아무도 무릎에 올라오지 않는데 우리 집 냥이들 빼고는 죄다 무릎냥이네.. 이런 생각을 하던 찰나 이 녀석이 침을 줄줄 흘리기 시작했다. 


응응?? 내 바지랑 길바닥에 뚝뚝 떨어질 정도로 침을 흘리는데 털은 매끄럽고, 뭐지 뭐지? 구내염인가? 어떡하지? 남편이랑 고민을 하다가 일단 단골 동물병원에 데려가 보기로 했다.  


고양이는 내 무릎에 앉아있겠다 애교도 많고 사람 손을 탄 걸로 봐서 분명 주인이 있을 것 같은데, 일단 확인해 보고 주인한테 연락해기로 했다. 다행히도 건강에 이상은 없고 입안에 염증도 없고 마이크로칩이 등록된 고양이였다. 


병원에서 등록된 전화번호로 연락을 해보니, 고양이 주인이 하는 말이 3개월 전에 이사를 갔는데 이사 가기 전부터 고양이가 안 보여서 어쩔 수 없이 두고 갔다는 것이 아닌가. 응???? 아니.. 마당냥이를 키우면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갈 것 같으면 며칠 전부터 문을 잠가두고 외출을 못하게 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우리 동네에서 500km 떨어진 툴루즈로 이사를 갔다고 한다. 친구가 고양이를 픽업해 주기로 했다며 동물병원에 고양이를 맡기고 가라고 하길래, 병원 담당자에게 혹시나 고양이를 찾으러 오지 않으면 우리한테 다시 연락 달라고 이야기하고 나왔다. 


세상에.. 3개월 전이면 한참 추웠을 땐데 대체 어디서 먹고 자고 한 걸까? 그때 현관 앞에서 봤을 땐 이미 주인들이 이사 가고 난 뒤라 집안에 들어갈 수 없어서 현관 앞에서 그저 기다리고 있었던 거겠지. 


남편은 자기 자식 같으면 못 찾았다고 두고 가겠냐고. 고양이 키울 자격도 없는 사람이라며 한참을 화를 냈다. 우리 같으면 고양이들 없어졌으면 남편이 남아서라도 찾아서 데려갔을 거라며. 심지어 검은 고양이 잃어버렸다는 전단도 근처에서 본 적이 없는데. 고양이 주인을 찾아서 다행이긴 한데 영 믿음이 가지 않아서 씁쓸한 저녁이었다. 


부디 이번에는 잃어버리지 말고 잘 키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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