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고양이 둘
인터넷을 떠돌아다니는 '동물 싫어하는 아빠'의 짤들을 보면서 낄낄 거릴 때가 있었는데 그게 우리 집 이야기가 될 줄이야.
친정에는 내가 회사에서 구조해 데려다 놓은 고양이 두 마리가 있다. 두 녀석은 동배는 아니지만 둘 다 암컷이라 자매가 되었다. 우리 집은 딸만 둘인데 나와 동생 둘 다 20대 중반쯤 취업하자마자 독립을 했다. 이렇게 우리가 떠나고 적적한(내 생각에) 엄마 아빠에게 새 가족이 생긴 것이 불과 2년 전이다.
내가 회사에서 구조한 고양이를 다른 집으로 입양 보내기 전까지 친정에 임시보호를 부탁했었는데 아빠가 고양이와 정이 담뿍 들어서 그냥 입양하기로 하신 것.
부모님이 고양이를 키우고 난 뒤로 친정에 갈 때마다 이런저런 변화가 생겼다. 여느 부모님들처럼 친정에서는 겨울에도 보일러를 잘 안 틀어서 항상 좀 추웠는데, 부모님들이 고양이를 모시는(!) 집사가 된 이후로는 혹시나 라라와 릴리가 추울까 봐 난방을 얼마나 하시는지..
“엄마. 내가 춥다고 할 때는 긴 옷 입으라더니.. 애들 털코트 입은 것 좀 봐. 춥겠냐고 ㅋㅋㅋ“
갈 때마다 새로운 장난감이나 스크래처가 생긴 건 당연한 일이고. 지난겨울 크리스마스 휴가 때 한국에 들어갔더니 친정 거실에 못 보던 매트리스가 깔려 있었다.
“아니, 이건 뭐여?”
“아 느그 아빠가 거실에서 고양이들이랑 같이 잔다고 매트리스 깔았다”
“왜?”
“안방에서 자면 애들이 자꾸 왔다 갔다 하니까 엄마가 잠을 잘 못 자서”
작년 초에는 라라가 아파서 응급실 입원을 했었는데 정초부터 초상집 분위기가 따로 없었다. 뭘 잘못 주워 먹어서 뱃속에 이물질이 있었던지 열이 나서 며칠간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고 한다. 엄마 아빠가 약을 겨우겨우 먹여가며 병시중을 들었다. 라라가 완쾌한 이후로는 애가 뜯어먹을 수 있는 종이로 된 스크래처는 다 갖다 버리고 러그로 바꾸기도 했다.
나중에 엄마 말로는 라라가 입원했을 때 아빠가 울었다고.. 아빠가 예전엔 동물한테 관심이 하나도 없었는데 이렇게 변하다니.
며칠 전에는 엄마가 사진 합성하는 걸 배우셨는지 가족 단톡방에 아빠가 공유한 고양이들 사진을 합성해서 다시 공유해 주셨다. 그러고 보면 단톡방이 온통 고양이 이야기.
벽지 좀 뜯어도 좋으니 건강하기만 해라 요 녀석 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