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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아 Aug 17. 2023

열흘간의 한국생활

8월에 한국을 가다니


한국에 다녀왔다.


친정이 대프리카로 불리는 대구라도 푹푹 찌는 여름 날씨는 익숙해지지 않는다. 인천공항에 도착하기 직전 승무원이 요즘 한국 날씨가 동남아 같다고 해서 마음의 준비를 하긴 했지만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훅하고 밀려오는 습한 열기에 8월에 귀국하기로 결정한 과거의 나를 원망했다.  


거기다 사람은 또 어찌나 많은지! 서울역에서는 울렁울렁 멀미가 났다. 하필이면 금요일 저녁에 도착해서 서울역이 더 미어터진 것도 있겠지만 일 년 동안 우리 동네에서 마주친 사람들보다 기차를 기다리는 한 시간 동안 더 많은 사람을 본 것 같다.



화가 많은 사람들

며칠간 서울에서 머물면서 느낀 건데 사람들이 화가 많은 것 같다. 대로변으로 진입하는 차를 기다려 주는 (이것도 이상하다. 그냥 지나갈 것이지 왜 내가 지나가도록 기다려준단 말인가) 작은 시골에 살다가 좌회전 깜빡이를 넣으면 오히려 들어오지 못하게 앞으로 더 전진하는 서울 사람들을 보며 나도 덩달아 화가 났다. 어차피 막힌 길인데 들어오지 말라고 30cm 더 빨리 간다고 얼마나 빨리 도착하겠냐고.


일 년 반 동안 경적 소리, 음악 소리, 거리에서 사람들이 소리를 지른다던지 이런저런 소음공해로 부터 정말 자유로웠는데 귀국한 날 한 시간 만에 이 모든 걸 다 겪었다. 서울역 에스컬레이터에서 어떤 아저씨가 모르는 사람한테 큰 소리로 역정을 내질 않나, 백화점은 음악 소리가 엄청 컸는 데다가 도로에는 빵빵 경적소리로 난리였다.  정원에서 들리는 새소리, 옆집 개 짖는 소리, 우리 집 고양이들 애옹 거리는 소리만 듣고 살다가 소음천지인 세상에 떨어지니 정신도 너무 사납고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어디에나 빵빵하게 틀어둔 에어컨

날씨가 습하고 더우니 솔직히 에어컨이 없으면 숨이 막힌다. 지하철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가는 20분 사이에 온몸이 땀으로 쩔었다. 그늘만 있으면 30도에도 버틸만한 프랑스와는 달리 그냥 찜통이다. 밖에 조금만 더 있어도 찜통 안에 들어간 만두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밖으로 나가고 싶지가 않았다. 사람들 말이 하필 내가 갔던 8월 둘째 주가 유난히 더웠다고 한다. 프랑스 집에도 에어컨이 없고, 사무실에도 에어컨이 작년부터 고장 나서 살짝 더운 것이 디폴트인 곳에서 실내는 에어컨 때문에 살짝 추운 것이 보통인 한국에 오니 항상 가방에 겉옷을 챙겨 다녀야 했다. 엄마는 카페에 갈 때마다 춥다고..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람.



회색 빛 하늘

일조량이 사람의 기분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데 진짜인 것 같다. 실제로 한국에 머무는 동안 비가 오다 말다 하거나 태풍이 오거나 해서 항상 하늘이 비구름으로 덮여 있었고, 파란 하늘이나 햇볕을 제대로 쬐지 못했다. 타들어가는 햇볕이 뜨겁다고 툴툴거렸는데 탈지언정 빛이 그리웠다. 다들 오랜 비에 햇볕 구경을 못해서 사람들도 우울한 걸까?



아이스 아메리카노

그러고 보면 유럽에 있는 동안 맥주 말고는 찬 음료 마실 일이 잘 없었다. 카페에서 커피를 시키면 사계절 기본이 갓 뽑은 에스프레소. 아이스커피를 달라고 하면 얼음하나 띄워주는 곳에서 얼죽아는 힘들었는데 한국에 오자마자 가장 처음 마신 음료는 바로 아이스 아메리카노! 힙한 카페 천지인 도시에서 꿋꿋하게 스타벅스만 찾아다니며 아이스 아메리카노, 더블샷 바닐라, 녹차 프라푸치노등 평소 마시고 싶었던 것들을 마시고 돌아왔다. 남편이 입원한 이후로 나도 기분 탓인지 속이 계속 좋지 않아서 먹고 싶은 걸 잔뜩 생각하고 갔지만 매운 것도, 한우도, 회도 아무것도 못 먹고 돌아옴. 딱히 별로 먹은 것도 없는데 체중은 왜 늘었는지 모를 일이다. (더운 날씨를 핑계로 계속 집에 누워있기만 하긴 했다)



비싼 물가

10년 전 처음 유럽에 놀러 왔을 땐 유럽 물가가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한국에 가보니 한국 물가가 어마어마하게 비싸다는 걸 제대로 느꼈다. 커피 한잔에 5천 원이 기본이고, 두 명이 백화점에서 식사를 하면 5만 원은 그냥 나온다. 한 끼에 만원으로는 좀 어렵겠는 걸? 뭔가 1년 반 자리 비운 사이 물가가 확 오른 느낌. 창원, 대구, 서울 할 것 없이 다 비쌌다. 이번엔 쇼핑 많이 안 하고 와서 통장에 빵꾸는 면함.


처음 프랑스 시골로 이사 왔을 땐 너무 조용해서 심심했는데 복닥거리는 서울에 있다오니 평화로워서 좋다. 시골에 사는 동안 정신수양이나 좀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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