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현아 Aug 22. 2023

결혼식 하객이 흰색 드레스를 입는 것에 대한 고찰

개인의 자유와 상대방에 대한 배려 그 사이 어딘가



시댁 식구들과의 기나긴 저녁식사 시간이었다. 여느 프랑스인들처럼 시댁 식구들도 정말 말이 많은데 식전주-식사-디저트-커피까지 평균 3시간에 이르는 식사 시간 동안의 화제도 정말 다양하다. 이 날은 화제가 흘러 흘러 프랑스 인들의 게으름으로 흘러갔다.



A : "결혼식의 주인공은 신부니까 흰 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돋보일 수 있도록 밝은 색 옷은 피하는 게 예의지"


B : "그런 게 어디 있어? 내가 입고 싶은 대로 입을 건데"


C : "프랑스에는 저렇게 남을 배려할 생각조차 안 하는 사람들도 많아. 난 다른 사람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 이 게으름 la flemme 이 문제라고 생각해."


나 : "한국도 그렇고 아시아에서는 집단 안에서 조화롭게 지내는 걸 중요하게 생각해. 그래서 여러 상황에서 암묵적으로 지켜야 할 이런 규칙들을 지키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기도 하고.. 보통은 폐 끼치는 행동은 안 하려고 하지"


남편 : "꼭 신부한테 가장 중요한 결혼식 날 자기 혼자 좋자고 흰 드레스를 입고 가서 그 순간을 망쳐야겠어?"


B : "왜 신부가 주인공이야? 그리고 내가 흰 옷을 입는 게 피해를 주는 거야?"


A : "와.. 그건 아니지"


남편 : "말을 말자"


다른 의미로 투머치 했던 우리 가족들 ..


프랑스인들의 토론은 말도 빠르고 목소리 톤도 높아서 싸우는 것 같다. 중간에 '너네 싸우는 거 아니지?' 여러번 물어봄. 남편의 사촌동생과 남편이 중간중간 영어로 통역을 해주었는데, 개인주의가 강한 프랑스에서도 B의 의견이 중론은 아니었던지 이날 B는 식사시간 내내 집중포화를 맞았다.



똘레랑스 Tolerance

프랑스의 국가 표어는 'Liberté 자유, Égalité평등, Fraternité 우애'로 공화국의 가치를 가장 잘 설명한 말이다. 1년 넘게 살다 보니 나라의 전체적인 시스템이 이 가치에 맞게 디자인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비자 연장을 위한 시민교육을 들을 때 가장 첫 시간부터 강조한 말이기도 하다. 이 Liberté 자유 부분을 설명할 때 같이 수업을 듣던 미국인들이 자유의 정의에 대해서 굉장히 헷갈려했는데, 프랑스에서 말하는 자유는 상대방의 자유나 권리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지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는 인종차별과 같은 혐오 발언의 자유를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그게 상대방에 대한 욕이든 뭐든 표현할 자유가 있다고 하던데…)


그러다 보니 남한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타인의 사상과 그 자유를 존중하는 톨레랑스를 어릴 때부터 장착하게 된 것 같다. 여기서 직장 생활을 해보니 나와 의견이나 취향이 다르다고 해서 '틀렸다'거나 '이상하다'라고 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네가 틀렸어'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다시 그날 저녁으로 돌아가서, '결혼식에 초대받았을 때 흰색 옷을 입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한 질문에 한국에서는 '타당하지 않다'가 정답일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너에게도 흰옷을 입을 자유는 있지만, 굳이 그래야겠냐'가 아닐까.


아니, 흰 옷을 입는 건 신부에게 돌아갈 스포트라이트를 나눠 가지는 거니까 피해를 입히는 거 아닌가? 내가 아직 프랑스 패치가 덜 된 것일까?



작가의 이전글 열흘간의 한국생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