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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아 Sep 11. 2023

3개 국어 하는 남편과 0개 국어 하는 나

내 어휘력 어디 갔어?


요즘 남편은 이력서 업데이트에 한창이다. 큰 프로젝트를 연달아하고 지쳐있던 그는 나의 프랑스 파견과 함께 퇴사를 하고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다. 그도 쉴 만큼 쉰 건지 방학 중이라 심심한지 방학중에 할만한 일이 없나 두리번거리는 중이다.


우리가 사는 깡시골에서 남편의 화려한 이력으로 일할만한 곳은 없다. 우리 회사 근처 헤드헌터 사무실이라도 한번 가보라고 했더니 그곳은 계약직 블루컬러들의 일자리를 위주로 하는 곳이란다. 최소 리옹이나 제네바는 가야 경력에 맞는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이런 시골 근처 50km 이내에 뭣도 없소


어쨌거나 기회는 준비된 자만이 잡을 수 있는 것!

일 할 생각이 있으면 (절대 강요하는 건 아니다) 이력서부터 업데이트해두라고 했다. 프랑스어, 영어, 한국어 이렇게 3개 국어를 일할 수 있을 정도로 구사하는 남편은 후다닥 이력서를 만들어서 이상 없는지 한번 봐달라고 했다. 대충 본다고 봤는데 나중에 보니 오타가 한 둘이 아니었던지라 내가 검수한 것이 민망했다.


한자어가 많이 섞인 한국어 어휘는 항상 헷갈린다며 이것저것 물어보는 남편.

"Job description을 한국어로 뭐라고 해?"

"그거? 잡 디스크립션"

"아니.. 한국어로 있을 거 아니야"

"우리 회사에서는 그렇게 얘기하는데?"

"자기 회사는 한국 회사가 아니잖아. 그래도 한국인 직원들끼리도 그렇게 얘기해"

"나는 자기가 불어 질문하면 잘 대답해 주는데, 왜 그렇게 성의가 없어? 한국 아저씨들은 영어로 얘기하면 싫어해"

"아니 ㅠㅠ 갑자기 물어보니 잘 모르겠고 ㅠㅠ 잠깐만, 검색 좀 해보자. 아.. 직무기술서.."


외국계에서 10년 넘게 일했더니 이런 한자 단어에 엄청 약해지고 만 것이다. 리포트는 글로벌 보고용으로 만들다 보니 영어로 쓰고(그렇다고 내가 네이티브만큼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다 보니 한국인 직원들끼리도 어떤 단어들은 영어로 그냥 쓰는 일이 많아서 제삼자가 우리 회사 사람들끼리 대화하는 걸 들어보면 저 사람들 왜 영어 단어 섞어서 대화하냐고..  상당히 재수가 없을 것이다. (나도 국내 기업 다니다 우리 회사 처음 왔을 땐 상당히 적응이 힘들었다.)


심지어 프랑스에 온 이후로 한국어를 쓸 일이 없다 보니 당연히 보면 아는 단어도 갑자기 누가 이거 뭐냐고 물어보면 얼음. 영어 잘 못하는 프랑스 직원들이랑 어버버 하다 보니 영어에 프랑스 단어를 섞어 쓰는 요즘. 그렇다고 프랑스어를 잘하냐면 그것도 아니다. ㅎ ㅏ.. 단전에서 한숨이 치밀어 올라온다.


그래서 요즘은 부지런히 책이라도 열심히 읽는 중. 어디 온라인 독서모임 하시는 분들 있으면 저도 초대 좀 해주세요.. 어휘력이 요즘 바닥을 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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