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도 오고 문도 잠기고
어쩜 이렇게 뭐 하나 쉽게 가는 법이 없는지. 이삿날 아침 컨터이너가 8시까지 도착하기로 했는데 6시쯤 눈을 떴다. 꼬르륵꼬르륵.. 남편도 나도 배가 고파서 새로 이사 온 동네 빵집에 한번 가볼까? 하고 길을 나섰는데 비를 뚫고 빵 사러 나갔다 돌아와 보니 아뿔싸..! 집에 문이 잠겨서 들어가지 못하게 된 것.
이 집에는 수많은 문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건 현관문과 차고 문. 현관문 안쪽에 키를 꽂아두고 차고를 통해서 나갔더니 차고 문도 잠기고 현관문도 잠겨서 열쇠로 열 수 없게 되었다.
7시 40분에 집주인에게 비상용 차고 키가 있는지 문자를 보내 놓고, 이삿짐 회사에도 천천히 와달라고 전화를 했다. 그런데 집주인이 빈손으로 와서 보고는 안 되겠다며 아들에게 차고 키를 받으러 다시 출발.. 그 사이 컨테이너를 실은 트럭이 도착하고, 내 등 뒤에 식은땀도 흐르고. 빗방울도 거세지고 진짜 난감했다. 혹시나 해서 열쇠 수리공에게 전화를 했는데 가장 가까운 열쇠 수리공도 20km밖에 있는 데다가 12시가 되면 점심시간이라 이도 저도 안될까 봐 얼마나 걱정을 했던지.
다행히 집주인이 들고 온 차고 키가 작동해서 문을 열었고, 빗물과 눈물과 식은땀을 닦으며 이사 시작!
한국에서 이삿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왔는데, 남편이 모르는 사람들한테 우리 옷상자를 풀게 할 수 없다며 큼직한 것만 풀게 하고 상자를 거실에 쌓아두었다. 이 상자들도 버리려면 어디 따로 연락해서 허가를 받아서 (차량 등록을 해서) 다 싣고 가야 된다는 것 같은데, 이럴 줄 알았으면 상자 싹 다 풀고 보낼 것을. 나중에 이 모든 것이 남편의 생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는 대폭발. 야 이거 다 언제 버려!!!! 다른 사람이 우리 옷 좀 만지면 어때서!!! 어차피 대부분은 다 내 옷인데!! 한 번씩 이렇게 알 수 없는 포인트에서 예민한 그를 이해할 수 없다.
스스로 정리하고 싶었던 남편은 이삿짐을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옮기다가 등근육이 놀랐는지 결국 주말 내내 아프다고 앓아누워버렸고, 남은 짐 정리는 내가 하게 되었다. 일은 자네가 키우고 뒤처리는 왜 나의 몫인가. 응?
거실에 짐을 풀고 보니 한국에서 쓰던 가구가 커서 안 맞으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이사 온 집의 거실은 제법 넓었고, 층고가 어마 무시하게 높은 덕에 집이 답답해 보이지도 않았다.
알프스가 가깝고 산이 많은 이 지역은 겨울이 되면 아주 춥다던데 층고가 높아서 더 추울 것 같다. 겨울이 되면 벽난로에 불을 지필 나무를 잔뜩 사다 둬야 되는 것이 아닌지. 남편이 장작을 스스로 패겠다는 둥 헛소리를 하면 바로 말려야겠다.
한국 같으면 이사하는 날 중국집에서 짜장면이랑 탕수육을 시켜먹었을 텐데, 이 시골 동네에도 마을 시내에 나가면 중국음식과 베트남 음식을 같이 판매하는 아시안 식당이 있긴 하지만 내가 아는 그 맛이 아닐뿐더러 영업시간에 맞춰 가기가 힘들어서 패스. 결국은 까르푸에서 자주 사 먹는 연어초밥으로 한 끼를 해결했다.
매콤한 사천 쟁반 짜장이 어찌나 당기던지! 다음 주말에는 남편이랑 탕수육을 만들어 먹어보자는 야심 찬 계획을 세운 우리. 한국 같으면 터치 몇 번에 손쉽게 한상이 순식간에 배달될 텐데 우버 이츠도 없는 이런 시골 마을에서는 딱히 할 것도 없으므로 먹고 싶은 건 만들어 먹기로 한다.
마침 솔드(여름 정기세일) 기간이라 야심 차게 테팔에서 냄비와 프라이팬 세트도 마련했고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 짐을 풀자마자 주방 먼저 정리 완료!
우리 집 고양이들은 집사들이 하루 종일 고생을 했는지 알지도 못하고 원래 쓰던 캣타워와 숨숨집을 반기며 단잠을 잤다. 두 달 사이에 집을 다섯 번 옮겼는데도 잘 적응해줘서 고마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