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쩜 그러니
대학교에서 SCM (Supply Chain Management) 수업을 들을 때 교수님이 하셨던 말씀이 기억난다. 이쪽이 유망한 분야고 앞으로 기업에서 공급망 관리 (구매, 자재관리, 물류 등)가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될 테니 SCM 전문가가 되라고, 그러면 앞으로 밥 굶을 일을 없을 거라던 교수님.. 학생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밤에 잠은 잘 주무시죠? 밥 먹을 시간도 없어요..
요즘 업계를 막론하고 SCM 쪽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선 곡소리가 난다. 코로나가 터진 이후로 자재도 없고, 구해본들 운송할 트럭이고 컨테이너고 없다. 겨우 스페이스를 구하고 나니 유가가 올라서 예전에 계약한 금액으로는 운반이 안되고, 어렵게 자재를 현장까지 가져다 두면 품질에 문제가 생기거나 현장에 아픈 사람이 많아져서 생산이 안된다. 이게 머선일이고.. 코로나 터졌던 첫해보다 올해가 더 힘든 것 같은데 출구가 안 보이니 지쳐서 그만두는 사람도 많다. 전반적으로 악순환.
어느 회사나 퇴사하는 사람이 많으니 채용도 많고, 그러다 보니 의외로 요즘 같을 때가 이직하기에는 최적의 시기라 나도 그 틈을 잘 타서 프랑스로 오기는 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다. 프랑스 사업장에서 그냥 앓는 소리 하는 줄 알았는데 곡소리 나는 곳일 줄이야..
원래는 월간 생산계획을 하던 것이 주간 계획으로 바뀌고, 이젠 일일 생산 계획으로 바뀌어버린 위기 상황에서 플래너인 나는 어떻게 해야 될까? 프로세스 개선하러 왔는데 매일매일 발등에 붙은 불을 끄고 있으니.. 내가 소방관이냐고.
오늘도 일일 생산(회의라고 쓰고 변경 회의라고 읽는다) 회의를 하는데 시작부터 여기저기 빵꾸가 나서 난리다. 지난주에는 업체에서 코로나에 걸린 사람이 너무 많아서 입고가 안되더니, 이젠 연락이 두절이란다. 내일까지 자재 안 들어오면 모레 생산은 어떡하냐고 머리를 쥐어뜯는 나한테 현장 매니저가 한마디 했다.
어쩔 수 없지 뭐. 호수로 가자.
“응?? 생산 좀 차질 났다고 다 같이 죽자는 거야??” 내가 당황해서 얘기했더니 더 당황한 그. “응??? 죽긴 왜 죽어? 호수로 수영이나 하러 가자는 거였는데”
뭐지 이 바보 같은 대화는. 난 또. 한국에서는 호수나 강에(한강) 간다는 말이 죽으려고 뛰어내린다는 말로도 쓰인다고 했더니 빵 터진 그.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죽긴 왜 죽냐며, 그나저나 프랑스에서는 자살한다는 표현을 오븐에 머리 집어넣는다고 한단다. 어휴 살벌하기는.. 답도 없이 앉아서 한숨만 쉬던 심각한 회의 끝에 다 같이 어이없이 웃고 헤어졌다. 결론도 안 난 채로.
뭐 어찌 되겠지?
일과 개인생활의 분리가 확실한 동료들 (아닌 사람도 있다. 예를 들면 우리 보스) 기운을 받아 나도 걱정을 다 내려놓고 퇴근했다. 내일 일은 내일의 나한테 맡겨놓고 가는 거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