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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아 Jul 19. 2022

당근을 왜 이렇게 많이 주세요?

평생 먹을 당근 몇 달 새 다 먹은 듯



점심식사는 회사 식당에서 해결한다. 많은 직원들이 도시락을 싸오거나 집에 가서 식사를 하다 보니 회사 자체적으로 식당을 운영하기에는 수지가 안 맞고 근처에 있는 회사 여럿을 대상으로 하는 식당이 있다.


메뉴는 보통 고기/생선 이렇게 두 가지에 곁들이는 채소, 탄수화물, 선택할 수 있는 디저트, 샐러드, 커피 이런 식인데 하나하나 선택하는 게 다 돈이지만 회사에서 4유로 정도는 지원해줘서 보통은 4-5유로 정도를 내고 먹는다. 한 달에 점심식사 비용으로 80-90유로 정도 사용하는 편.



이 구내(?) 식당에서 배식하는 분이 음식을 엄청 후하게 퍼주시는데 난 초반에는 다 먹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다 먹지 못하고 남기는 날이 많아져서 조금만 달라고 요청하는 날이 늘었다.


그런데 프랑스 동료들을 보면 접시가 꼭 설거지를 한 것처럼 깨끗하게 비워져 있어서 음식이 남은 내 접시를 반납하기가 아주 민망한 경우가 많다. 다들 어찌나 깔끔하게 먹어치우는지.


남편도 그렇고 어릴 때부터 음식은 남기는 게 아니라는 가정교육을 받아서 그런 것 같다. 우리 집은 딸만 둘이 있어서 그런지 철이 든 이후로는 세 모녀가 체중에 신경 쓰느라 “배부르면 더 먹지 마”를 입에 달고 살았는데.. 여기서는 음식이 남은 접시를 반납할 때 남보기가 좀 부끄러울 정도라 아무도 안 볼 때 샤샤샥 반납하곤 한다. (그래도 범인이 나인 줄 다 알듯)


치즈올려 구운 당근


한 주는 식당에서 당근을 좀 많이 샀는지, 매일매일 당근이 다양한 방법으로 요리되어 나왔다. 구운 당근, 찐 당근, 데친 당근, 삶은 당근.. 정말 평생 먹을 당근을 한주에 다 먹은 것 같은데 하루는 같이 밥을 먹던 회사 동료가 접시 위에 당근을 보더니 “와 이 정도면 내가 일주일 동안 먹을 당근인데.. 남기긴 아까우니까 다 먹긴 하겠지만 너무한 거 아니냐”며 한숨을 쉬었다. 결국 우리는 꾸역꾸역 당근으로 배를 채움.


생각해 보니 프랑스 와서 가장 많이, 자주 먹은 야채가 감자 다음으로 당근인 것 같다. 어릴 때는 당근이랑 시금치를 잘 못 먹겠더니 어른이 되고 나니 야채가 맛있다고 느껴지다니. 정말 거짓말 아니고 다양한 방법으로 조리한 당근을 하도 먹었더니 당근이 익숙해지기도 했고..


남편한테 회사 식당에서 점심때 우리한테 당근을 너무 많이 준다고 불평했더니 빵 터지면서 한다는 소리가,



당근 먹으면 상냥해 진대요
Les carottes ça rend aimable


프랑스에 그런 말이 있다니.. 궁금해서 구글에 당근의 효능에 대해서 검색을 해봤더니 우울증에 좋고 심신의 안정에 좋다 뭐 이런 게 있긴 했다.



외식을 해도 당근 겁나 많이 줌


남편이 우리 회사 사람들, 아니 전반적인 프랑스 사람들이 불친절해서 당근 많이 먹이는 거 아니냐며 얼마나 웃던지. 당근 철이라 싸고 맛있어서 많이 줬다고 생각하자. 정말 좀 상냥해지라고 먹인 거라면 팀킬 아닌가.


고명도 이정도면 너무 심한거 아니오

그리고 남편은 장 보러 가서 또 당근 라페를 잔뜩 사 왔다. 나보고 많이 먹으라며.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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