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현아 Aug 01. 2022

열심히 안 해도 되지 않을까

프랑스 생활 3개월 만에 느긋해진 사람


한국에서는 항상 바쁘게 지냈다. 회사 업무 자체가 많아서 정신이 없기도 했지만, 퇴근하면 부업이자 취미생활인 블로그에 글도 써야 하고 열심히 투자하는 지인들에게 자극받아 자산을 어떻게 불릴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하느라 머리가 아팠다. 주변에 태릉인 수준으로 운동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이상적인 체중과 근육량을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도 적지 않았다.


그 와중에 사람들이랑 모여서 먹고 마시고 돈 쓰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데 비해서 뭐하나 딱히 아웃풋이 있지도 않았던 것이 킬링 포인트라고 해야 할지.. 삼십 대도 후반에 가까워지는데 돈을 많이 모은 것도 아니고 뭐하나 이룬 것도 없이 이대로 괜찮을까 이런 생각을 하던 차에 프랑스 파견이 결정되어 이때다 하고 프랑스로 현실도피를 했다.


한국에서는 사람들과 모이면 돈 이야기를 했다. 커리어 걱정과 부동산 이야기, 각종 재테크에 부업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그 끝은 돈이었다.


돈을 더 벌어야 된다는 생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나에게 먹고살만한데 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순진한 소리를 하는 남편이랑 돈 이야기를 하면 한숨이 나왔다. 사실 여행 다니고 명품 가방이나 신발 살 돈으로 주식에 투자를 했으면 우리 형편은 훨씬 나았을 것이다. 결국 이런저런 스트레스들은 이 나이에는 이 정도는 이루어야 한다는 사회적인 통념에 남들보다 좀 더 가지고 싶은 욕심이 더해져서 나 스스로를 짓누르고 있었던 것 같다.


멧돼지 조심하라는 팻말이 있는 곳에서 사는 사람


그런데 프랑스에 오니 아무 생각이 없어졌다. 여기서는 아는 사람이 없으니 비교할 대상도 없고, 직장 동료들 중에는  사는 사람도, 아닌 사람도 있을 테지만 사적으로 만나도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다. 내가 외국인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만나면 어디에 맛있는 식당이 있는지 어디가 경치가 좋고 어디서 자전거 타기가 좋은지 그런 이야기들을 주로 한다 (덤으로 직장  가십거리도). 동료들은 퇴근하고 나면 경치 좋은 곳에 가서 운동을 하고 맛있는 요리를 먹고 취향에 맞는 와인을 마시면서 여유롭게 지낸다. 주말에는 근처 호숫가에 피크닉을 가서 낮잠을 자기도 하고 몽블랑으로 하이킹도 가고 요가도 한다한다.


집을 몇 채나 가지고 있는 부유한 동료도 명품으로 휘감고 다니지 않으니 표가 나지도 않는다. (애초에 부자들은 로고도 없는 면티에 면바지 입고 다닌다고 하지 않나) 남편 말이 프랑스는 역사적으로 계급 간의 갈등이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기 때문에 돈이 있어도 있는 티를 내지 않는 편이라고 했다.


파견 오면서 집이랑 차를 회사에서 지원해주니 딱히 돈걱정할 필요가 없어져서 그런지 프랑스에 온 지 삼 개월 만에 내 전투력도 사라져 버렸다. 한국에서는 퇴근하고 할 일 리스트를 점검하고 글을 쓰고 자정이 넘어서 자는 날이 많았는데 요즘은 매일매일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이나 공부를 하는 것이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평생 파견 생활을 할 건 아니지만 여기 있는 동안은 이렇게 느긋하게 지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ㅋㅋㅋㅋ
세상 느긋한 녀석들



작가의 이전글 정시에 오지 말라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