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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아 Sep 08. 2022

먼저 지나가세요

양보하는 세상



여기서는 신호등이 없는 삼거리나 사거리같이 누군가는 멈춰야 하는 순간이 오면 운전자들은 서로 손을 흔들며 먼저 지나가라는 신호를 보낸다. 한국에서는 누가 양보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먼저 가려고 너나 할 것 없이 가속을 해서 사고 날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거늘. 프랑스에서는 자동차 창문에 선팅이 되어 있지 않다 보니 상대방의 표정이 아주 잘 보이는데 그래서 그런지 다들 표정관리도 잘해서 웃으면서 양보해준다 '먼저 지나가세요'. 



프랑스에서도 큰 도시에서는 하나같이 바쁘니 신호고 뭐고 무시하고 길을 건너는 사람도 많고 틈만 나면 끼어드는 사람들도 있지만, 내가 사는 곳처럼 작은 동네는 어디서 직장동료를 만날지 모르는 데다 건너 건너 다 아는 사람이다 보니 행동을 조심하게 된다. 


심지어 몇 주전 주말에 근처 샹베리에서 소파를 주문했는데 다음날 출근하니 옆팀 동료가 나를 보자마자 '소파 샀다면서!' 심지어 모델명까지 알고 있었다.. 소파를 고르면서 남편이 직원이랑 수다 떨며 내가 옆동네 회사에 파견 온 주재원이라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직원이 우리 회사에 아는 사람 있다고 하긴 했었지만 그 직원이 나랑 친한 그 직원일 줄이야. 세상은 좁고 이 프랑스 촌동네는 더 좁다. 수다 떨 때 TMI인 편인 남편에게 이러다가 동네방네 내가 뭐하고 다니는지 소문 다 나겠으니 모르는 사람들한테 회사 이야기 좀 하지 말라고 함. 안 그래도 이 동네 통틀어서 아시안도 몇 없는데.. 


아무래도 동네도 작은 데다 대대로 이 동네에 살아온 사람도 많고, 이렇게 건너 건너 서로 다 아는 사이다 보니 매너 탑재가 필수가 된 것 같다. '그 언덕에 사는 한국 여자가 그렇게 무례하다며?' 이런 구설수에 오르고 싶지 않기도 하고. 눈치 없는 걸로 유명한 나지만 그래도 해외에 나와 있다 보니 내가 하는 행동이 한국인을 대표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상식적으로 행동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덩달아 느긋해진 치치


그러고 보면 한국에서는 항상 분단위로 쪼개서 생활할 정도로 바쁘기도 했고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그런지 운전할 때도 항상 마음이 초조했다. 도로에도 난폭하게 운전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어디를 갈 때면 기분이 나빠지는 순간도 많고 중얼중얼 욕을 하기도 했었다. 여기저기 경적소리에 짜증도 많이 났었는데 생각해보면 프랑스에 온 5개월 동안 경적 소리를 들은 적이 손에 꼽을 정도. 길에 차도 별로 없거니와 주변에 산이며 호수며 강을 끼고 있는 동네에 살다 보니 운전하는 것 자체가 힐링이 되는 것 같다. 운전하면서 욕을 내뱉어 본 지가 언제인지. 느긋한 동네에서 세월아 네월아 지내다 보니 나도 느긋해져서 이제는 급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 프랑스 시골에서는 신호등 보기도 어렵지만 이런 사거리에서도 먼저 가라고 서로 양보하느라 난리. 며칠 전에는 동네 빵집 앞 사거리에서 차 두대가 서로 가라고 손 흔들면서 한참 서 있었다. 세상 성격 급한 나였는데 이런 내 모습이 어색하지만 싫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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