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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아 Sep 10. 2022

타지에서 보내는 추석

새삼스러울 건 없지만


명절을 외국에서 보내는 것이 처음은 아니다. 한국에 있을 때도 길게 여행 다니기 어려운 직장인에게 여름휴가 말고 멀리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시간은 추석이나 설 연휴밖에 없으니. 여기저기 많이도 다녔다.


프랑스에서는 그냥 주말이라 집앞 빵집에서 디저트나 사먹음


생각해보면 나에게 명절은 아주 어릴 때를 빼고는 쉬는 날이라 출근 안 해서 좋은 그 정도의 날이었던 것 같다. 제사 음식은 맛있었지만 김 씨 집안 제사를 지내느라 정작 성이 다른 엄마랑 숙모, 할머니가 연휴 내내 전 부치고 음식 준비하고 뒷정리하면서 앉을 새도 없이 일하는 걸 보면서 이런 건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다.


아빠가 엄마 눈치 보면서 좀 도와볼까 하고 부엌에 얼쩡거리면 남자가 어디 부엌에 들어오냐는 할머니의 노호는 결국 ‘넌 다 큰딸이 엄마 안 도와주고 뭐하냐’로 이어졌고 ‘결혼하면 평생 할 건데 뭘 지금부터 시키냐’며 열심히 실드 쳐주셨던 엄마 덕에 사실 명절이랍시고 내가 고생한 것도 없고 주야장천 여행만 다녔던  큰딸이지만 여하튼 산사람만 고생하는 제사는 안 지냈으면 좋겠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음식은 좀 사서 하시라고 우리가 꾸준히 말씀드린 덕에 할머니도 어느 정도는 포기하셔서 최근 몇 년 전부터 전을 비롯한 주요 제사 음식은 사 오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그래도 그날 만들어야 하는 음식이 있으니 손이 안 가는 건 아니지만.


여하튼 장남인 아빠와 맏며느리로 고생하는 엄마를 보고 자라서 그런지 ‘난 제사 지내는 집으로 시집 안 갈 거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그래서 그런지 내가 프랑스인 남자 친구랑 결혼한다고 부모님께 소개했을 때도 부모님은 별로 놀라시지도 않았다. 어릴 때부터 제사 안 지낸다더니 니가 결국 외국인이랑 결혼하는 구나라고 생각하신 것 같다.


프랑스에 와서 보니 가족모임이나 명절에 여자들이 고생하는 건 다 똑같은 것 같다. 크리스마스같이 온 가족이 모이는 날에는 전날부터 음식을 준비하는 것은 오로지 엄마들의 몫. 남편 시댁도 식구들이 많아서 다 모이면 대가족인데 최근에는 할머니 연세가 많이 드셔서 어지간하면 가족모임은 레스토랑에서 한다고 한다.



추석에 차례를 지내고 제사상 사진을 찍는 걸 깜빡했다며 아빠가 보내주신 식사 사진. 내가 어릴 때,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는 추석에 친척들이 다 모여서 송편도 빚고 했었는데 친척들이 점점 줄고 코로나로 모임을 자제하다 보니 이제 우리 가족들만 모여서 식사하게 된지도 몇 년이 되었다. 이렇게 우리끼리 명절 지내다가 동생이 결혼하면 다시 복작복작해지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사실 예전에 대가족이던 시절에는 남자들 여자들 상도 따로 차렸었는데 그꼴 안 봐도 되는 건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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