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에게도 판매자에게도 윈윈
동네에 자주 가는 빵집이 있다. 예전에 살던 동네의 빵집이랑 비교하면 종류도 몇 가지 없고 화려한 디저트를 만드는 곳은 아니지만 매일매일 종류를 바꿔가며 기본 바게트와 소박한 디자인에 좀 더 담백한 맛이나는 디저트를 준비하는 정이 가는 시골 빵집이다.
사흘에 한번 정도는 디저트를 사러 들리는데 하루는 못 보던 전단지가 붙어 있었다. 남편한테 뭔지 물어보니 지역 농산물 구독 서비스라는 게 아닌가.
이 지역에는 협동조합이 제법 많은 편인데 제법 규모가 있는 건 치즈랑 와인 협동조합이다. 크고 유명해서 근교에 사는 사람들이 많이 간다고 들었다. 그런데 우리 동네에 온 건 로컬의 소규모 생산자들이 모여서 다양한 제품을 일 년 동안 매주 배달하는 신규 계약건 모집을 하기 위해서라고! 최근 몇 년 들어 이런 구독 서비스가 많이 늘었다고 한다.
13개의 영세 로컬 사업자가 모여서 근교 마을에 매주 배달을 하는 건데 마침 목요일은 배달 오는 날이라 어떤 것이 있는지 보여줄 수 있냐고 했더니 가방 하나를 열어주었는데 이렇게나 많이!!
우리는 야채 소비가 많지 않아서 기껏해야 애호박, 양파, 감자, 당근, 샐러드 정도만 가끔 사 먹는데 이렇게 매주 야채를 구독하면 먹어 치워야 되니 조리법도 다양하게 익힐 수 있고 좋을 것 같다. 루꼴라도 상태 엄청 좋았는데 좋았어! 매주 장 보러 가는 것도 귀찮던 와중에 아주 좋은 서비스인 것 같다.
이렇게 작은 시골 동네는 마트가 근처에 있기는 해도 차가 없으면 갈 수 없어서 노인들만 사는 집은 콜택시를 불러서 가곤 하는데 이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에게도, 우리처럼 만사 귀찮은 직장인에게도, 그리고 꾸준하고 일정한 수입이 필요한 지역 생산자들에게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이렇게 원하는 분야를 선택해서 구독할 수 있고 기본적으로는 1년 치를 선불로 계산 (체크를 생산자 별로 나눠서 제출하면 여기서 알아서 분배한다고 한다)하는데 이 지역에서 보기 힘든 두부도 있어서 우리도 냉큼 구독해 보기로 했다. 두부는 이번에 새로 시작하는 거라고 해서 좀 불안하긴 한데 먹을 수 있게 만들어주겠지?
우리는 야채, 과일, 빵, 치즈, 고기를 구독하기로 했다. 맥주랑 와인은 한 달에 한번 배송해준다던데 요즘 우리가 술을 그렇게 즐기는 게 아니라 서류 제출 전까지 시도해 볼까 말까 고민해보기로 했다.
회사 동료들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생각보다 농축산품 구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소고기 퀄리티도 좋고 야채나 빵도 진짜 맛있다며. 대신 구매자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고 그때그때 시즌에 맞춰 수확한 제품들을 배달해주는 거라 신선하고 퀄리티는 좋아도 내가 잘 안 먹는 걸 받을 수도 있다는 건 알고 있으라는 조언도 해주었다.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 까르푸 같이 대기업에서 구매하는 것보다 훨씬 좋은 일이라는 것도. 아니 다들 이름만 들으면 아는 글로벌 기업 다니면서 대기업 겁나 싫어하는 아이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