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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미니꾸 Aug 26. 2022

22. 잔인한 8월 내가 듣는 노래

tudo ou nada  -  nonato luiz




 기나 긴 8월이었다. 찌는 듯한 더위에 갯벌 속 낙지처럼 축 늘어져 지쳐가던 몸은 오히려 그럭저럭 버틸만했다. 하지만 연속적인 수많은 충격적인 사건들은 나의 멘탈을 그야말로 붕괴시켜놓았다. 예상 치도 못한 태풍을 맞은 수재민이 된냥 넋이 나간채 근근이 하루하루 지내다 보니 벌써 8월의 마지막이다. 태풍이 휩쓸고 가버린 자신의 집을 잃고 마을회관에서 모든 것들을 해결하며 수해복구가 되기만을 기다리는 뉴스에서만 보던 수재민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다. 여전히 나의 멘탈은 강가에서 급격하게 늘어난 하천의 물을 정통으로 맞은 침수차량처럼 진흙 투성이의 모습이다. 비야 언제 가는 그칠 것이고 태풍이야 언젠가는 지가겠지만 며칠 동안 하천에 침수되어있다가 온갖 오물과 진흙을 뒤집어쓴 침수차량이 다시 재빠르게 도심을 질주하길 기대하긴 어려운 것처럼 아직은 나도 그저 축 늘어져 있을 뿐이다.



 많은 일들이 있었다. 먼저 출근길에 내가 뺑소니 사고를 당했다. 신호위반을 차량이 빠르게 횡단보도를 지나가며 나를 거의 칠 뻔했다. 피하지 않으면 차와 정면으로 충돌할 것 같아 재빠르게 몸을 반대로 던져 직접적인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아스팔트 바닥에 넘어지며 목과 허리, 그리고 엄지발톱이 빠지는 사고를 당하게 되었다. 나를 인지하지 못했는지 차는 빠르게 나를 지나쳐갔고,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주변인들의 도움으로 비접촉이긴 하지만 사고를 인지하고 나를 찾으러 왔다지만 난 자리를 떠나고 없었던 모양이다. 사고 가해자는 자신의 잘못을 전적으로 인정했고, 연신 사과를 하였다. 사고 당일에는 엄지발톱이 멍이 들어 빠질 것 같다고 생각한 거 말고는 크게 몸이 아프지 않아 넘어가려 했으나, 다음날 내 몸은 생각보다 심각하게 아팠다. 목은 옷을 입지 못할 정도로 아팠고, 허리는 피지도 못할 정도였다. 며칠을 고생했다. 더군다나 와이프가 해외에 있는 관계로 일도 일이지만, 6세 아기를 육아하는 입장에서 내가 아프다고 손을 놓을 수는 없는 법이었기에 더욱 가해자에 대한 원망이 커졌다. 돈도 없고, 그리 넉넉하지도 않았던 삶이지만 건강 하나로 그나마 작은 희망이라도 꿈꾸고 버틸 수 있었음을 이번 기회에 깨달았다. 입원을 하고 싶었으나 그러면 아이 밥은 누가 챙겨주며 어린이집 등 하원은 누가 하며 실적에 하루하루 스트레스받아가는 일이긴 하지만 내 본업은 어찌할 것이며...... 하루 이틀 통원치료를 하며 버텨내는 수밖에 없었다.



 며칠이 지나고 핸드폰 메시지를 한통 받았다. 누군가가 돌아가셨다는 부고의 문자였다. 그렇지 않아도 날씨도 급격히 더워지고 하며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들의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며 장례식장을 가는 일이 잦았는데, 이번 문자도 또 누군가가 돌아가셨겠구나 하고 부고라는 머리말만 보고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한참이 지나고 폰을 뒤지다 그 문자를 다시 찬찬히 보았다.

 '응? 무슨 소리야.'  '에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장난인가?'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생각이 오갔다. 친하게 지내던 형님의 부고 소식이었다. 단순히 친하게 지내던 형님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의지하고 닮고 싶었던 몇 안 되는 내 주변 사람 중 하나였다. 절대로 그럴 일이 없는데 믿고 싶지 않던 그 일은 현실이었다. 하루에도 수없이 통화를 하고 목소리 들으며 수많은 대화를 나누던 사람의 부고 소식은 연세가 많으시던 친할머니의 부고 소식과는 달랐다. 슬픔의 차이가 있다기보다는 수긍이 쉽게 되느냐 안되느냐의 차이가 있었다. 다음 날 장례식장을 찾아가니 더욱 믿기지가 않았다. 하지만 형님의 이름이 맞았고, 상주로 자리를 지키던 아이들과 형수님의 상복 입은 모습을 보니 무거운 현실로 다가왔다. 아무도 울지 않던 장례식장에서 난 눈치없게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려버렸다.



 비슷한 시기에 아버지는 큰 수술을 하셨고, 직장 동료는 공황장애와 모친상을 겪는 등 좋지 않은 일이란 좋지 않은 일들은 내 주위에서만 일어나는 것 같았다. 이웃 주민의 아버지는 부동산 사기를 당했다느니, 직장이 파산을 했다는 친구라던지. 들려오는 모든 좋지 않은 소식들이 나 때문인 것 같았다. 나의 잘못으로 내 주변 사람들이 고생을 하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상당히 긍정적인 편이라 생각하는 나조차 긍정적이기 어려운 시기였다. 다행히 8월이 저물어가는 현시점에서는 지나간 이야기들이 되어버렸지만, 무수한 사건들이 나에게 신체적, 정신적으로 남긴 대미지는 여전히 나에게 남아 있다. 결론적으로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는지, 좋게 좋게 생각 중이다. 11월에 나에게는 인생에서 몇 번 없을 중대한 사건이 기다리고 있다. 현재 하고 있는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시작하게 될 것 같다. 15년 동안 해오던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한다는 게 엄청난 압박이다. 내가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에서부터 새로운 일에 대한 두려움까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인생의 중요한 변곡점의 근처에서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일들을 뒤돌아보고 새로운 일들을 하기 위한 정리 할 시간을 준 것이라 생각한다. 어린 나이도 아니고, 지금까지 해왔던 커리어에 방점을 찍고 업무 자체를 바꾼다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은 아니다. 결정을 내리기까지도 상당히 힘들었지만, 90% 이상 결정이 되어버린 현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현실에 충실하는 것 밖에 없다.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사건들이 주는 교훈들이 그런 것이었다. 인생은 아무도 모른다. 누군가는 마라톤에 비유하고, 누군가는 등산에 비교한다. 40년을 넘게 살아왔지만, 난 아직도 어렴풋하게나마도 인생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다만, 태어나서 죽는 동안 수많은 좋고 나쁜 일들이 반복될 것이고, 나의 의지에 따란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게 인생이라는 것만큼은 정확히 알고 있다. 노력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예측하지 말고 대응해야 한다는 것. 10분 뒤의 일도 예상을 못하는 게 우리들 일인데, 10달 뒤 10년 뒤를 어찌 알겠는가. 그렇다고 주야장천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지금을 즐겨라 라는 마인드로 인생을 살겠다는 것은 아니다. 물론 현 순간을 즐기며 인생을 보내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인생의 절반을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며 살아온 미생의 상태인 나에게는 아직은 사치일 뿐이다.



 11월 1일이 되면 난 지금의 자리와 다른 자리에 가서 앉아 또 다른 인생의 미래를 궁금해할 것이다. 사회에 나와서 15년의 기간 동안 해오던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방식에 적응하고 순응하며 다가올 15년을 준비하며 마음 졸일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번 8월의 수많은 사건사고들이 나에게 준 경험들은 다가올 나의 15년은 다를 것이라 말하고 있다. 경험의 힘을 나는 믿는다. 노력의 힘은 반은 믿고 반은 믿지 않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험은 다르다. 수 없이 틀리고 틀렸던 경험 내에서도 성공의 가능성을 뽑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5년 난 수많은 실패를 반복하며 실패의 경험을 축적했다. 새로운 자리에서의 내 새로운 시작은 이러한 경험들의 축적을 바탕으로 시작할 것이기에 지난 15년과는 다를 것이라 믿고 싶다. 새로운 일을 하며 얻게 되는 새로운 경험은 또다시 실패를 안겨 줄게 뻔하지만, 그 경험 또한 축적되어 나에게 올바른 길을 안내해 줄 것이라 믿는다.



아직도 8월 26일이다. 5일의 8월이 남았다. 내 주변인들 모두가 건강하고 무탈하길 빌어본다. 이 글을 읽고 있을 나를 잘 알지 못하는 분들의 무탈과 건강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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