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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이 Aug 01. 2019

괜스레 눈물이 난다.

냉소적인 표정, 카리스마로 이글거리는 눈빛, 뜨거운 용암처럼 모든 걸 녹여 버릴 것 같은 아우라, 너무도 강력한 나머지 감히 한 발짝 다가서는 것도, 그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도 쉽지 않았던 사나이, 때로는 얼음처럼 차갑고 때로는 새하얀 우유처럼 한없이 부드러웠던 사나이. 이 사나이는 내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는 부친의 이미지였다. 깊고 깊게 새겨져 너무도 선명했던 각인이었다. 진하고 선명한 그 각인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기별도 없이 사라지게 될 거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는데, 어느샌가 희미해졌고 이젠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기억 저편에 묻어 두었던 부친에 대한 추억을 파헤치다 보니, 문득 '내가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내지는 '너무도 강했던 탓에 나 스스로 기억을 왜곡시켜 버린 걸까.'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혹 부친이 이 글을 읽고 "내가 그랬다고? 아들아. 내가 널 얼마나 사랑했었는지 아니?. 그래. 모를 수도 있겠지. 그때 넌 너무 어렸으니까." 라며 억울함을 호소할지도 모르겠다. 영화 '트루먼 쇼'처럼 나의 모든 삶이 기록되었다면 모를까. 진실을 알기에는 그때의 나는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전부였던,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었던 철부지 어린애였다. 부친의 기억 또한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퇴색되어 버렸을 것만 같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명확하지 않게 되어 버린 채 이미지와 느낌만 남아 있을 뿐이다. 부친보다 덩치가 커졌을 무렵, 내가 커진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마치 부친이 작아졌다고 느꼈던 때처럼, 마흔이 된 지금도 그때와 마찬가지 일수도 있다. 어쩌면 그때나 지금이나 아버지는 여전히 같은 모습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진실이 아니라 착각과 혼돈이 생길 만큼 요즘의 '우리 아빠'가 무척이나 낯설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서 부쩍 아버지는 눈물을 자주 훔치신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몸이 베베 꼬인다. 복합적인 감정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슬픔이라던지 기쁨이라던지 또는 분노처럼 뚜렷한 하나의 감정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감정인지 짐작하기도 힘들 만큼 애매하고 뒤틀린 것들이 뒤죽박죽 썩여 혼란스럽다. 온전히 그 감정에 집중해서 찾아내고 싶었지만, 그래야겠다고 다짐을 하지만 아버지의 눈물은 그런 다짐 따위 가볍게 바스러 뜨리는 파괴력을 지녔다. 아버지의 떨리는 목소리와 그렁그렁한 눈망울을 마주하게 될 거라 감히 짐작도 하지 못한 나에게 후회와 미련이 담긴 아버지의 눈물은 너무나도 강력하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텅 비어 버려서,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서, 세월의 한이 담긴 눈물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게 된다. 그런 내가 참 못난 것 같아 속상하다.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걸까. 이젠 완전한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었지만, 여전히 서툴기만 하다. 아버지의 눈물을 따뜻하게 받아줄 넓은 가슴도 없고, 그 눈물의 의미를 이해하는 포용력도 부족하다. 마흔이 되었지만 여전히 여전히 철부지 같다. 얼마나 더 많은 삶의 경험들이 축적되어야 아버지를 보듬어 줄 수 있게 될까.


남자는 나이가 들수록 여성호르몬의 분비가 많아져 눈물이 잦아진다는 이야기를 언젠가 들은 적이 있다. 그저 농이라고 여겼던 일들이 삶 속으로 들어오게 되다니, 시간 앞에서 내가 가진 관념들이 덧없게 느껴진다. 아버지도 아버지지만, 요즘은 나도 괜스레 눈물이 나곤 한다. 드라마를 볼 때나 음악을 들을 때, 지난 추억을 회상할 때면 가슴이 저미고 눈시울이 달아오르곤 한다. 

<괜스레 눈물이 난다>

어느새 내 몸에서도 여성호르몬의 분비량이 많아지기 시작했나 보다. 아버지도 살아오면서 분명 '남자는 나이 들수록 눈물이 많아진다.'는 말을 한 번쯤 들었을 텐데, 당신에게 이런 날이 오게 될 줄 아셨을까. 당신의 아들에게도 이런 날이 올 거라는 생각은 하셨을까. 아버지가 마흔이 되셨을 때, 아버지 곁에 할아버지가 계셨더라면, 지금의 내 기분을 경험하셨을 텐데. 그랬더라면 아버지와 함께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부자의 서로를 향한 서툰 사랑이 조금은 덜 했을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마주 하게 될 아버지의 눈물 앞에서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 걸까. 이미 나에게도 진행되고 있는 여성호르몬의 과다 분비로 인한 눈물들을 어떻게 받아 드려야 하는 걸까. (지금은 없지만) 언젠가 생길지도 모를 내 자녀에게 이 눈물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를 해줘야 하는 걸까. 마흔이 된 지금도 여전히 서툴고 모르는 것 투성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노라면, 또 괜스레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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