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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이 Aug 18. 2019

미루기와 후회


20년 가까이 미뤄 왔던 일이 있다. 무언가를 20년 동안 미룬 것을, 과연 '미뤘다.' 고 할 수 있는 걸까. 이쯤 되면 미룬 것이 아니라 하지 않은 것 아닌가. "올해는 진짜 한다. 안 하면 성을 간다." 외쳤던 것이 벌써 스무 번이나 된다. 더 미뤘다가는 바꿀 성도 모자랄 판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무언가를 미룬다는 것은 애초에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기에 존재할 수 있는 행위이며, 해야 한다는 마음은 곧 무언가가 필요해졌기 때문에 생긴 감정, 곧 '의지' 다. 내 의지가 약했던 걸까. 아니면 내 필요가 가벼웠던 걸까. 뭐가 중요하겠어. 어찌 되었든 스스로 필요하다고 느꼈던 무언가를 20년 동안 미루고 있는 것은 변함이 없는데. 필요하다는 마음에서 비롯되어 매년 새해가 밝아 오던 때 올해는 꼭 시작하겠노라고 다짐했던 것, 누군가의 평생만큼이나 미뤄왔던 일은 다름 아닌 '운동'이다.


<마흔의 운동>


얼마 전, 깃털보다 가벼웠던 의지에 무게를 실어 드디어 운동을 시작했다. (어떤 운동인지는 다음 기회에) 20년이나 미뤘던 운동을 지금에서야 시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른들에게 수없이 들었던 '예전 같지 않음' 때문이다. 누구나 마찬가지 겠지만, 이 '예전 같지 않음'이라는 것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20대에도 30대에도 경험해본 적이 있었다. 돌이켜 보면 지금껏 살아오면서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을 제법 많이 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서야 운동을 시작한 것을 보면 '예전 같지 않음'이라는 것은 상대적이라는 증거다. 마흔이된 지금. 20대에 비해서 또 30대에 비해서 '예전 같지 않음'을 감당해내고 있는 내 육체와 정신이 이젠 정말이지 예전 같지 않아서 미룸을 멈추고 운동을 시작했다.


이렇게 적고 보니 의지에 무게를 실어서 운동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절실함'을 느끼게 만드는 나의 몸뚱이가 운동을 시작하도록 만들었구나. 육체적 건강을 챙기기 위해서 운동을 하고 싶었는데, 결국은 비루한 몸뚱이가 되고 나서야 운동을 시작하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거기에 어리석음은 덤이다.


이런 어리석음은 비단 운동뿐만이 아니다.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것, 영어공부. 영어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어느 날, 바로 그 날부터 시작했더라면 아마 (어디까지나 아마도) 나는 아주 유창한 영어실력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모르긴 뭘 몰라 이 또한 20년 가까이 미뤘는데 그동안 하루에 두 시간만 했었어도 1만 시간의 법칙은 가볍게 채울 수 있는데 말이다. 내가 아무리 영어에 소질이 없기로서니, 1만 시간 정도면 간단한 대화 정도는 할 수 있을텐데. 이리 생각하니 새삼 "아, 그때 시작했었어야 했다." 하는 아쉬움이 가득 담긴 후회가 든다.


운동이든 영어든 이런 식의 후회가 그동안 얼마나 많았던가.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지금의 내 삶은 꼭 후회가 만들어낸 것만 같다. 그리고 앞으로도 얼마나 더 많은 후회와 미루기를 반복하며 남은 삶을 살아갈까. 그것도 모자라 훗날, 후회했었던 내 모습을 떠올리며, '내가 그때 왜 후회했었지. 굳이 후회할 필요 없잖아.' 하며 후회한 걸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가만, 그 보다 먼저 '후회'가 그리 나쁜 것인가. 후회 좀 하면 어때. 후회와 미련이 얼마나 사람을 더 단단하게 만들 주는데 말이야. 거기다 후회와 미련이 없는 삶이라니 어쩐지 딱딱하고 재미도 없고 낭만도 없고 무엇보다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는다.


요컨대, 좀 미루면 어떠한가. 후회 좀 하면 어떠한가. 결국에는 '절실함' 이 미루기와 후회를 이겨버릴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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