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입문기 #2
# 생활 자전거
내 두 번째 자전거는 MTB였다. 'MTB'의 뜻도 모르는 채 동네 자전거 가게에서 샀던 기억이 난다. -MTB는 산악자전거이다- 대구는 산을 많이 볼 수 있지만, 정작 산악자전거가 필요한 곳은 아니다. 산이 병풍처럼 보일 뿐인 평평한 하고 옴폭한 분지 지형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동네 자전거로 'MTB'를 택했다. 핑크색 자전거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어진 자전거라면, 이 MTB는 강력한 나의 의지가 담긴 자전거이다. 어린 내 눈엔 그 자전거가 멋있어 보였다. 특별한 특징은 기억나지 않지만, 두텁한 타이어가 특징이다. 청소년에겐 자전거가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한 걸음만 나가도 집에 들어가고 싶은 날씨도, 자전거를 타고 나가면 괜찮았다. 좀 먼가 싶은 친구 집에도 쉽게 갈 수 있었다. 35도를 훅훅 넘어가던 대구에선, 바로 앞의 친구 집도 멀게 느껴진다. 그럴 때 자전거를 타고 가면 순식간에 친구집에도, 슈퍼도 쉽게 갈 수 있었다. 나에겐 이 산악 '관람형' 지형에 딱 맞는 생활 자전거였다.
# 수성못
그 자전거를 타고 자주 가던 곳이 있다. 바로 수성못이라는 연못이다. 연못이라 하면, 아담한 사이즈가 떠오르지만 사실 꽤 큰 인공호수다. '인공' 호수 라지만 널찍해서 보고 있으면 마음이 놓인다. 이상하게 석촌 호수를 볼 때는 그런 기분이 들지 않았다. (데이트를 해서 그런가?) 대신에 서울에선 한강이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용산과 동작 어귀에 왔다리 갔다리 살아온 나에게 한강은 대구의 신천 같은 곳이었다. 돌아다니고 돌아다니면 다시 강으로 돌아온다. 수성못으로 향하는 날은 꼭 그런 날이었다. 무언가 가슴이 갑갑해서, 속이 터질 것 같은 날. 고작 그 맘때 하는 고민이랄 게- 뭐 있나 싶지만- 떠올려 보면 중년의 고민과 별반 다르지도 않다. 그때도 '진로, 학교, 연애' 고민이 생기면 수성못을 향해 뛰쳐나갔다. 부모님과 의견이 맞지 않아 투닥거리고 나와도 마찬가지였다. 우습게도 중년인 지금도 '진로, 회사, 연애' 정도가 고민인 걸 보면 대체 30여 년간 뭐 하고 살았나 싶기도 하다.
갑갑한 날이었다. 이유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시험을 못 쳤든지, 갑자기 연애 상담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머리 복잡하고 가슴이 꽉 막힌 기분이었다. 밤 10시, 자전거를 맹렬하게 타고 내려간다. 더운 여름밤이지만 호수 주변은 살짝 차갑게 느껴졌다. 차분하게 내려앉은 수증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바람이 불면 선선했다. 바람을 가르고 살짝 들리는 물소리도 좋고, 자전거를 타면서 들리는 바람 소리도 좋다. 동네 친구들과 멍 때리고 있는 게 좋았다. 지금도 가끔 그런 멍한 시간을 한강에서 보내곤 한다. 자전거를 타고 뛰쳐나온다. 뭔가 갑갑한 마음을 붙잡고 달린다. 그러다 잠수교 옆에 자전거를 세워 놓곤, 벤치에 앉아서 커피를 한 잔 마신다. 어쩐지 이 동네 어딘가는 집처럼 느껴진다.
# 호숫가 MTB
이제는 더 이상 수성못에서 예전처럼 씽씽 달리며 자전거를 탈 수 없게 되었다. 그때처럼 동네에 여유공간이 없었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하게 걷고 있는 와중에 자전거로 달릴 수는 없다. 걷기 좋은 길이 된 걸 좋아할 수도 있지만, 이런 점만 보면 자전거는 호수에서 쫓겨난 거나 마찬가지이다. 그래도 자전거를 타고 호수 끝에서 멍하며 바라보던 시간은 기억이 남는다. 자전거를 타고 수성못을 갈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어디도 갈 수 없는 학생에게 발이 되어주었고, 어디라도 갈 수 있다 말해주었다.
호숫자 MTB팀과 대화가 필요하다. 속이 뻥 뚫린 것 같이 즐거웠다. 어디라도 갈 수 있었다. 밤에 한강 자전거도로를 따라 쭉 달리다 보면 그날의 수성못이 떠오른다. 여전히 어딘가 묶여있지만, 어디도 갈 수 없는 나에게 자전거가 발이 되어준다. 그리고 그렇다. 나는 어디라도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