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입문 Jul 15. 2024

빌려서 탄 자전거

자전거 입문기 #3

  중학교 때였나, 어느 날 엄마가 자전거를 사러 가자 말했다. 얼마나 신나고 기뻤는지 모른다. 30대의 나에겐 "차를 사러 간다." 정도의 자극(참으로 세속적인 지고)이었다고나 할까. 최근에 혼자 자전거를 한 대 사러 갈까 마음먹었던 그날도 그때처럼 신났다. 어릴 땐 동네 가게를 이 잡듯이 구경하며 자전거를 골랐던 것처럼 이젠 며칠 내낸 자전거만 검색하며 공을 들인다. 공을 들인 만큼 사러 갈 마음을 먹는데 오래 걸렸다. 필요한데, 막상 살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다. 사고 싶은데, 아직 살 수가 없다. 


따릉이

 

그런데 때 마침 온 서울에 자전거를 빌릴 곳이 생겼다. "따릉이"라는 자전거 공유 시스템이 생긴 것이다.  지하철역 앞 어디에나 자전거가 있었다. 필요한 거리만큼 타다 반납하면 되니 간단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자주 쓰니 이젠 막상 자전거를 살 이유가 있나 싶을 정도다. 딱 30분만 편도로 타야 할 때마다 요긴했다. 차가 꽉 막힌 여의도에서 회사 점심시간을 최대한 알차게 쓰기 위해 팀이 다 같이 자전거를 빌렸던 기억이 난다. (점심 식사는 창의력의 원천이니까) 최대한 다양하고 새로운 걸 먹자 마음먹은 팀의 결연한 의지였다. 하여간 재밌었고, 맛있었고 새로웠다. 게다가 점심을 아예 먹지 않고, 자전거만 타고 싶은 날에도 지하철 어귀에 따릉이가 있어 반가웠다. 


벚꽃이 흩날리고 모두가 사무실이 갇혀 있는 그때, 자전거를 타고 나갈 수 있어서 좋았다. 나에게 그때의 12시 30분이 소중했는데 그 30분 빌린 기억이 어쩐지 30년은 갈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타고 싶은 그때, 그곳에 자전거가 있었다. 


전기 자전거


전기 자전거는 영 로망이 떨어져서 싫다고 생각했는데, 숨겨진 조용한 동네를 다닐 수 있는 재미가 있었다. 자전거로 갈 만큼 가깝진 않은데, 차로 가는 거리에선 영 알려지지 않는 그런 애매한 숨겨진 맛집이 꽤 있었던 것이다. '빌려 탄' 전기 자전거는 출퇴근 시간대에 사방이 꽉 막힌 강남에서 택시보다 빨랐다. 내가 다니던 수영장과 사무실은 거리는 멀지 않지만, 상당히 높은 언덕을 넘어야 했고 버스도 지하철도 애매하게 연결되어있지 않았다. 버스도 지하철 역도 있지만 내가 가야 할 목적지 방향이 아니라 있어도 소용이 없다. 기이하게도 택시로 20분, 지하철로 30분, 버스로 30분 걸린다. 그런데 전기자전거로 가면 15분이면 도착이다. 아침 수영 뒤에 타는 전기자전거는 유난히 좋았다. 수영을 해서 상쾌하고, 아침 공기를 맞는 즐거움도 더 해졌다. 그렇게 아침을 시작하면 더할 나위 없이 가볍고 즐거운 아침이었다.


그렇지만 빌린 자전거는 딱, 단거리까지 즐거웠다. 장거리로 타자니 영 무겁고 느렸고, 때때로 상태가 안 좋은 자전거를 만나 덜컹 넘어지기도 했다. 특히 전기 자전거가 가끔 1단, 2단이 이상하게 들어가는 자전거가 종종 있었다. 그럴 땐 도착하기 직전까지 느릿느릿 속도를 줄여가며 불안한 마음을 안고 달렸다. 그래서 나는 자전거를 '장기'로 빌리기로 결심했다. 


친구의 로드 자전거

이쯤 되면 살 법도 한데, 아직도 자전거를 못 샀다. 어떤 자전거를 사야 할지 말지 고민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로드 자전거를 탈 것이냐? 일반 자전거를 탈 것이냐? 그것이 문제였다. 자전거를 여러 번 빌려 타서 자전거를 사긴 사야겠다 싶었다. 어릴 때처럼 재밌었고, 어른이 되어도 유용한 운동 수단이었다. 그렇게 고민하다 자전거를 좋아하는 친구에게 말했더니 선뜻 로드 자전거를 빌려주겠다고 한 것이다. 혹시나 마음이 바뀔까 싶어서 냉큼 그 로드 자전거를 빌렸다. 나는 그다음 날부터 바로 로드 자전거로 출퇴근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결국 로드 자전거를 사진 않았지만 로드 자전거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거의 내 거'가 된 빌린 자전거들이 있어서 결국 자전거를 살 마음이 생겼던 것 같다. 돌아보면 결국 내 자전거만큼 같이 여행하는 느낌이 드는 자전거는 없었다. 빌렸다는 마음 때문에 어딘가 정착하지 못한 마음이 들었다. 내 자전거가 아니니 부품을 바꿔 끼우거나 액세서리를 달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비싸지 않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분명 내가 빌린 수많은 자전거들 덕분에, 내 여행길은 언제나 꽤 즐거운 자전거 길을 달린 기억으로 가득하다. 내 다리로 그 땅을 달린 순간들이 자전거의 매력이 아닐까? 그 기억들 속에서 내가 빌린 자전거들은 분명 그 시간 동안 '내 자전거'였다.

               


이전 02화 호숫가 MTB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