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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인치 미니벨로

나다움을 찾아

by 김입문

속도를 즐길 거라 생각했다.


의외였다.


야구라는 특이한 운동을 하기 때문에, 당연히 자전거를 탄다면 속도를 즐길 거라 생각했다. 나는 의외로 속도파가 아니었다. 나 자신도, 남들도 나를 오해했다. 추론의 방향은 합리적이다. 야구는 나름 보험사에서도 특별 관리하는 극한의 익스트림 스포츠이니, 자전거를 탄다면 극한의 속도를 즐길 가능성이 높다. 합리적이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추론은 틀리고 말았다. 나는 속도를 즐기지 않았다.


자전거를 좋아하는 다른 이들은 물어보면 바람처럼 달리는 느낌이 재밌다고들 한다. 빠른 속도로 달리면 남들을 제치는 즐거움이 있다는 건데 — 제치긴커녕 나는 되려 양보할 때, 천천히 갈 때 쾌감을 느꼈다. 가령 수신호를 멋지게 하며 남들을 먼저 보내는 것도 꽤나 멀리서 보면 멋진데... 왼쪽으로 휘휘 손을 내저으면서 상대방을 미리 보낸다. ‘먼저 가시옵서서.’ 라는 마음으로 수신호를 하고, 도로 위에 적절한 질서를 만드는 것도 꽤나 짜릿한 일이다. 천천히 가야 할 길목이나 타이밍도 봐야 한다. 못 타는 입장에선 잠시나마 한 손으로 자전거를 타는 것도 도파민이긴 하다.


속도파가 나서서 “혹시 당신 너무 느리게 가서 그런 거 아니야?” 라고 한다면 — 물론 속도파보다야 난 느리지만 — 제법 노력했다고 할 수 있다. 제법 열심히, 꽤나 빠르게 달렸다. 문제는 내가 재미를 느낀 순간이 문제였다. 자전거 앱에서 최고 속도를 찍은 순간보다, 속도 0 즉, 멈춰 선 순간이 더 즐거웠던 것이다. 그래, 팔당에서 초계국수를 먹으러 앞에 멈춰 섰을 때쯤이었다.




멈추기 위해 달리는 사람


자전거를 오래 타는 일은 꽤나 곤욕이다. 엉덩이는 욱씬거리지, 달리다 보면 날벌레가 얼굴을 향해 돌진해오지, 내리막을 내려간다 싶으면 오르막이 버티고 있지. 욱씬거리는 엉덩이와 날아오는 벌레를 뚫고서, 풍경 같은 건 무시하고 고속열차처럼 달리기란 재미보단 일에 가깝다. 어차피 일이라면, 최단 시간에 국토를 종주하고자 한다면, 김포공항에서 30분 만에도 할 수 있다. 부산까지 최단 시간에 가기 위해 자전거를 선택하진 않는다. 자전거를 탄다는 건, 자동차와 달리 천천히 가겠다는 선언문과 같다.


이왕 천천히 가려고 자전거를 탔는데 그저 빠르게 모든 걸 지나쳐버린다면, 의미가 있는 것일까?


우리는 자전거를 탄다. 걷기보단 조금 빠르고, 자동차보단 좀 더 느리게 가기 위해서다. 자동차보다 느려서 주변 경치를 조금 더 천천히 구경한다. 내 다리만 멈추면 될 일이니, 자동차보다도 자주 잠시 멈춰서 주변을 둘러본다. 바람도, 자연도 충분히 느껴본다. 사진도 찍는다. 이리 찍고 저리 찍는다. 맛있어 보이는 가게가 보이면 예정에도 없지만 먹으러 간다. 느닷없이 감자전과 새싹무침을 두 그릇 시켜 먹는다. 커피도 한 잔 해야지.

이러다 보면 달리는 사람이기보다, 멈추는 사람이 되고 만다. 그것도 꽤나 자주 멈춰야 하는 사람이다. 커피도 마셔야겠고, 사진도 찍어야 했다. 가다 풍경이 좋으면 텐트도 쳐야 한다.




미니벨로를 탄다는 것


카본 신소재와 초경량 자전거에 감탄하고 있을 때, 나는 어떻게 자전거에 페니어 백(바퀴 옆에 다는 가방)을 달지 고민했다. 남들과 다르다는 건 때때로 부담스럽기 마련이다. 자신에 대한 이해가 없었을 땐 이런 자신이 싫기도 했다. 그저 남들이 좋아하는 걸 좋아했으면, 남들이 잘하는 걸 나도 잘했으면 했다.조금은 삶에 대한 지혜가 생기고, 자신에 대한 이해가 예전보다 풍부해졌을 때는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나를 받아들이고 나서야 내 삶은 조금 나아졌다. 남들, 정체도 알 수 없는 누군가들과 비슷해지려 억지로 노력할 때마다 내 삶은 힘들어졌다. 왜 다들 하는 걸 나는 못할까? 내 자신의 모지리 같은 점만 보였다.


특히 나의 모지리 같은 면은 안경을 벗을 때 나타난다. 나는 가까이에 있는 작은 글자가 특히 잘 안 보이는 할머니눈, 원시이다. 덕분에 모니터 앞에선 늘상 안경을 끼고 있다. 대신 거리가 있는 건 꽤 잘 보이기 때문에 안경을 벗고 다닌다. 밖에 나와 글자가 아닌 최대한 먼 거리의 풍경을 본다. 가까이 있는 걸 보기 위해 안경을 끼고, 멀리를 보기 위해 안경을 벗는다. 막상 안경을 벗으면 식당 메뉴조차 보기가 싫다. 그냥 사람과 이야기하는 게 좋다. 메뉴를 읽기보다 누군가 시키는 메뉴를 그대로 시킨다. 안경을 벗고 내 자신이 혼자서 어딘가 돌아다닐 때쯤엔, 아는 길을 — 외운 길을 가거나 아는 가게를 가는 게 마음 편하다. 그래도 늘 같은 걸 가는 것보다는 주변 사람들이 어딘가 새로운 곳을 데려가 주면 의외로 더 참 즐겁다.


어렸을 땐 돋보기로 꽤 놀림도 받았고, 불편하기도 했는데 막상 내가 그렇다 하고 선언하고 나면 세상천지 편하다. 그냥 하던 대로 주문하면 되고, 주변에서도 이젠 그런 내가 익숙해서, 차라리 좋아할 만한 메뉴를 읽어줘버리거나 아예 주문을 대신 해 주기도 한다. 그리 효율적이진 않지만 그런대로 괜찮다.

그게 나란 사람이고, 내 자전거랑 내가 닮은 점이다.




나다움을 찾아



나랑 달리 날렵하고, 빠르고, 가볍고, 그래서 멋지다. 그게 로드바이크다. 무언가 효율적이고, 과학적이고, 논리적, 어쩌면 합리적이기까지 하다. 이미 자동차가 있는 세계에서 자전거를 탄다는 자체가 그다지 효율적이고 과학적이며 논리적이진 않지만, 자전거를 타는 비합리적인 세계관에선 그나마 로드바이크가 합리적이다. 과학적으로 가벼운 소재를 때려 넣었고, 자전거 설계 중에 가장 효율적인 구조를 가졌으니 논리적으로는 가장 훌륭한 자전거가 아닐까? 내 다리 힘을 최대한 빠르게 만들어주는 자동차인 것이다.


반면에 동글동글하고, 느리고, 무겁고, 게다가 귀엽다. 이게 미니벨로다. 비효율적이고, 문학적이면서 감성적이다. 종합해서 비합리적이다. 자전거의 세계에서도, 자동차의 세계에서도 매우 비합리적으로 취급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점이 나랑 닮았다. 그래서 내 취향이었다.


자주 내리고, 자주 멈추고, 종종 텐트도 치고 싶어서 페니어백도 두 개 달았다. 자전거 주제에 뭐 별거 못 실을 것 같더니 그래도 텐트도 치고, 불도 피우고, 할 건 다 할 수 있다. 작지만 많은 걸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비합리적인 자전거로 국토종주를 시작했다.


미니벨로를 샀다.


이게 나다.

그래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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