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칸 씩 나아가면 언젠가
오늘의 출발지는 운길산역이다.
북한강 자전거길.
이 길은 동해안이나 경북 내륙 코스에 비하면 마치 산책하듯 부드럽고 평화롭다.
강을 따라 완만하게 이어지는 자전거 전용도로.
중간중간 기차 터널처럼 생긴 구간을 지나면, 마치 기찻길 위를 달리는 기분마저 든다.
그래서 좋다.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불편하기도 하다.
이렇게 쉬운 길인데 왜 이토록 힘이 들까.
오르막이라 하기엔 민망한 경사, 따가운 땡볕도 없고 바람도 살랑살랑 분다.
햇빛도, 그늘도 모두 적당한데, 왜 이 코스는 이렇게 ‘은근히’ 지치게 할까.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왜 이렇게 지쳤지?”
체력이 떨어졌다는 걸 몸이 먼저 안다.
자전거를 안 탄 지 꽤 됐고, 운동도 오래 쉬었다.
‘누구나 쉽게 달릴 수 있는 코스’라는 말에 괜히 자존심을 세워보지만,
다리 힘은 금세 빠지고, 허벅지는 욱신거린다.
숨이 차오르고 나서야 비로소 인정하게 된다.
아, 정말 많이 약해졌구나.
나는 조금만 게을러져도 체력이 바닥나고, 살도 잘 찌는 체질이다.
겉보기에 단순히 ‘통통한’ 이 모습도, 나름대로 꽤나 관리하고 있는 결과물이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기에, 가끔은 억울하고 슬프다.
생각보다 많이 먹지도 않는데, 몸은 정말 기가 막히게 잘 붓고 잘 찐다.
이쯤 되면 체질을 탓할 수밖에 없다.
북한강 코스를 택했다는 건,
어쩌면 더 힘든 길을 갈 자신이 없다는 무언의 고백이었을지도 모른다.
마라톤에 도전한다고 말해놓고, 실제론 5km 코스에 몰래 신청하는 심정.
“시작은 해야겠는데, 힘든 건 버겁다.”
그런 마음이 섞여 있었다.
그리고 문제는, 나약함은 또 다른 나약함을 부른다는 것이다.
몸이 약해지면 마음도 게을러지고,
게으름은 다시 몸을 더 약하게 만든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싶어도,
무턱대고 끊으려 하다 보면 오히려 더 크게 다치는 경우가 많다.
나도 그랬다.
며칠 밤을 새워 글을 쓰고, 아무 생각 없이 야구장에 나갔다.
크게 넘어진 것도 아닌데, 다리가 ‘또각’ 하고 부러졌다.
이미 바닥난 체력으로 무리한 행동을 한 셈이었다.
그리고 그 무리를, 그 순간엔 무리라고조차 인식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지금 내게는,
‘쉬운 자전거 길’이 필요하다.
지금 내 체력이 얼마나 바닥났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길.
그리고 천천히라도 체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조금은 너그러운 길.
북한강 자전거길은 바로 그런 길이다.
이 길의 매력은 ‘여유로움’에 있다.
편의점이 가로등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나타나고, 이름 모를 식당도 꾸준히 이어진다.
“편의점까지만 가자.”
“저기 식당까지 가서 밥 먹고 다시 출발하자.”
“커피 한 잔 마시고 다시 달려보자.”
커피를 마시다 보면 아이스크림이 생각나고,
아이스크림을 먹고 나면 그늘 아래 잠깐 쉬게 된다.
덥다 싶으면, 마치 타이밍을 맞춘 듯 시원한 터널이 나타난다.
이 길은 쓰러질 틈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참 고맙다.
그렇게 쉬엄쉬엄, 하나씩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절반을 지난다.
강을 하나 건너고 나면, 목표에 제법 가까워졌다는 걸 느끼게 된다.
지칠 땐 이렇게 스스로를 다독인다.
“편의점까지만 가보자.”
“이 물 마실 때까지만 달려보자.”
“점심 먹고, 커피 마실 때까지만 하자.”
그러다 보면 어느새,
한 칸씩, 또 한 칸씩,
나도 모르게 멀리 있던 종착지가 눈앞에 와 있다.
포기하지 않고, 억지로 하지도 않으면서
그저 한 칸만큼 나아간다면,
언젠가 우리는
70.4km를 달려온 우리 자신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