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야구입문기
7회말 - #그 많던 언니들은 어디로 갔을까
전국대회가 거의 끝나간다. 이제 준 결승전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한 달째 주말 내내 뛰어서 모든 선수들이 진이 빠졌다 평일에는 일하고 주말에는 온몸이 뻐근하게 운동한다. 한 주정도는 가능한 일이다. 한 달쯤 되면 슬슬 일상생활에도 무리가 가기 시작한다. 오전에는 쌩쌩하다가, 오후가 되면 소금물에 절인 배추처럼 흐느적거린다. 멍 때리기도 했다가, 온몸의 피곤함 때문에 날카로워지기도 한다. 다들 절인 배추가 되기 전에 교체를 해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벤치에 앉은 이들 중에 마땅한 대체카드가 없기 때문이다. 대타나 주자로 잠깐이야 나갈 수 있겠지만 시합 전체를 대체하기엔 역부족이다.
누군가 없을까 하고 생각하다 보니 그 언니가 생각이 났다. 2루면 2루, 3루면 3루. 어디에 서 있어도 든든했던 언니였다. 그녀는 키는 작지만 단단하다. 어깨를 만져보면 찰진 근육이 잡혔다. 다리와 팔, 그 어디에도 군살이 보이지 않던 언니였다. 그렇게 강해 보이던 그 언니는 핸드폰에 딸 사진만 보면 그렇게 귀엽게 웃었다.
“어 그 언니 왜 요즘 안 와요?”
“어.. 그게”
그렇다. 언니가 안 온 지 벌써 세 달째. 이제 계절이 바뀌어가고 있었다. 언니도 선수 출신이었다. 예사롭지 않은 근육은 수십 년간 닦아온 것이었다. 그리고 언니의 남편도 운동을 하던 사람이었다. 운동을 좋아하는 그 마음을 너무도 잘 알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늘 그 사람에게 고마워했다. 아이 때문에 한참 운동을 하지 못한 자신을 위해 주말마다 야구를 가도록 등을 밀어 준 남편이다. 머릿속에서 근육질 가득한 남자가 어색한 표정으로 아이를 보고 있을 장면이 떠올랐다. 그가 혼자서 아이를 본다는 게 상상이 잘 가지 않았다.
보통은 토요일이나 일요일 중에 하루를 연습하러 나온다. 하지만 전시상황이라는 게 있다. 어느 야구팀이건 야구대회를 앞두고는 바싹 준비를 하는 기간을 가진다. 그때는 토요일이나 일요일 중에 하루만 나오면 안 된다. 나올 수야 있지만 주전에서 밀리고 만다. 대회 기간 중에 하루만 나오는 사람이 있고, 이틀을 다 나오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누구를 선택하겠는가? 묘한 압박감이 생긴다. 당연히 양 일을 꾸준하게 나온 선수들이 대회를 출전하는 기회가 많아진다. 대회 기간에는 언니도 빠듯하지만 양일 연습을 다 나오곤 했다. 그렇게 대회를 참가하고 나면 언니는 한참 동안 쉬었다.
그런 방식으로 언니가 팀에 참여한 기간은 생각보다 길게 갔다. 하지만 결국 그럴 수 없는 순간이 왔다. 2년 차 가 되자 언니는 대회 때만 용병처럼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좋아하는 글러브를 하루 종일 닦고, 자기보다도 훨씬 큰 가방에 배트까지 챙겨 다니는 사람이 말이다. 언니는 이틀을 다 나올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이틀을 다 나오는 사람들에게 기회가 주어졌다. 공정했지만 공정하지 않았다. 나갈 기회가 없어지는 언니는 아이를 두고 벤치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더 나올 수가 없겠다." 그렇게 봄 대회를 끝으로 언니가 얼굴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원인은 자명했다. 취미는 다른 것보다 중요하지 않았다. 만약에 IMF와 같은 경제 한파가 나에게 왔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무슨 항목부터 줄이게 될까? 생활에 크게 중요하지 않은 외식, 사치품 같은 항목을 먼저 줄인다. 돈에 대한 한파가 아니라 시간에 대한 한파가 몰아닥쳤다고 생각해보자. 마찬가지다. 사치품에 해당하는 시간부터 줄인다. 생산적인 시간들은 남기고, 비 생산적인 시간들을 줄인다. 바로 ‘쉬는 시간’, 취미를 하는 시간이다. 취미는 필수적이지도 않고, 비 생산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장 먼저 줄이게 되는 것이다.
모두가 바쁘지만 여자는 취미를 포기할 이유가 더 많다. 아이를 낳는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육체적으로 포기해야 할 만한 이유가 생긴다. (움직일 수가 없다) 아이를 잘 낳고 나면 육아라는 큰 벽 앞에서 '남편의 일'과 '본인의 일'중에 선택해야 한다. 업무 강도가 너무 세서 아이를 기르는 일과 전쟁과 같은 일을 같이 병행하기 쉽지 않다.
토요일만 희생하는 사람들에게는 기회가 가지 않는다.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을 희생하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준다. 야구도 일도 '독하다'싶은 사람들이 살아남는다. 매일 저녁 아이를 데리러 가가기 위해 6시 땡 하고 집에 가는 어머니들에게는 당연히 기회가 가지 않는다. 공정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30대 중 후반 여성 중 남아있는 사람은 거의 결혼하지 않았거나, 했더라도 아이가 없는 사람이다.
이렇게 회사조차 그만두는 상황이었다. 취미를 그만둔다는 건 고민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일과 가정을 병행하기도 어려운데, 일과 가정과 취미를 병행한다는 건 사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아닌가? 가족이 생기고 나면 마치 블랙홀처럼 그 안에 빠져든다. 개인은 사라지고, 가족을 향해 달려가는 하루 하루. 그래서 내가 기억하는 팀원의 대부분은 '미혼'이었다.
만화로 나온 남자 사회인 야구 이야기들에서도 육아의 어려움은 나온다. "눈치를 보느라 나올 수 없다는 이들." 그렇게 새벽에 몰래 나온다는 그들의 이야기, 같은 야구를 하는 사람으로서 아련했다. 하지만 나는 언니들이 더 아련하다. 언니들은 애를 낳아야 해서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그래서 나오지를 못했다 아니 꼼짝도 못 했다. 낳고 나서는 가슴에 안겨 있는 아이에게 당장 젖을 줘야 한다. 남편은 눈치를 보고 나갈 수 있었지만 "언니"는 눈치를 보고 나갈 수 없다. 그저 아이들과 홀로 남겨져있다. '내가 먹이지 않으면 애들은 죽는다.' 언니에겐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번 설날에도 언니들은 당연한 듯이 요리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부엌에 앉아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언니들을 가끔은 그라운드에서 보면 좋겠다. 아니 매주 보면 좋겠다. 매주 보려면 부담이 없어야 하고, 편하게 교체할 수 있는 벤치 멤버들이 있어야 한다. 야구에서든 사회에서든.
그 많던 언니들은 어디로 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