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입문 Jan 13. 2020

[13] 7회초 - #국가대표의 대가

 7회초 - #국가대표의 대가

#국가대표의 대가

7회초 - #국가대표의 대가


     마지막 공격인 4회 초가 왔다. 프로 리그에서는 승부가 길어지면 연장 15회까지 경기를 한다. 당연하지만 시간 제한은 없다.  예전에는 승부가 날 때까지 했던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여자야구는 전국 대회라면서 고작 4회가 끝이다. 시간제한도 매정하다. 1시간 30분. 시간제한 없는 야구의 즐거움을 맛보기도 전에, 시간제한으로 끝나 버린다.


    요는 4회 초가 그냥 4회 초가 아니라는 것. 경기는 프로야구로 치면 9회초, 끄트머리에 접어든 것이다. 7-8번 타자들의 활약으로 1, 2루를 메웠다. 다음 타자인 9번 타자 희생번트를 시도하다가 공을 띄우고 말았다. 번트라는게 보는 사람은 쉬운데 하는 사람은 쉽지가 않다. 허망하게 포수 위로 높게 떠오른 플라이볼(캐처플라이)로 아웃. 그 허망함을 만회하기라도 하듯 1번 타자가 공을 잘 골라내서 사구로 출루. 2번 타자의 강한 타구가 유격수 글러브로 빨려들어가면서 투 아웃. 주자는 만루 상황으로 이제 모 아니면 도다.  

나의 영웅!


       마지막 공격이라는 드라마틱한 상황에 언제나 이 언니가 서있다. 4번은 쑥쓰럽다는 이 사람. 그래서 3번 타순인 이 언니. 국가대표 포수이자 투수. 이 언니가 근 20년을 야구랑 함께 해온 배테랑. 이 언니는 언제나 이렇게 드라마틱한 장면에서 나타난다. 내가 존경해 마지 않는 국대언니다.


        “언니 하나만...”


        기도하듯 중얼거렸다. 마음 한 어귀에서 실낱 같은 희망을 쥐고 있었다.  이 언니는 칠 수 있다고. 언니가 어떤 언니인데 이거 하나 못치겠냐고 언니는 할 수 있다고. 내 맘 속에서 언니는 늘 대단한 사람이다. 몇 십년 운동을 거르지도 않고, 주말에는 어김없이 야구를 한 사람이다.  어느 토요일 밤, 우리팀 연습이 쉬던 날에도, 회식으로 모두가 곯아떨어진 날에도 언니는 새벽 같이 달려나갔다. 커다란 야구가방을 짊어지고 말이다.


        "언니 어디가?"


        “아 오늘 국대 연습이 있어서 좀 멀리 나가. 친구가 근처로 픽업 온데.”


    밖은 여전히 쌀쌀한 날씨다. 비가 온다는 예보 덕에 팀 연습은 휴식인데, 국가대표 연습은 이 날씨에도 한다니 새삼 놀랐다. 언니가 현관문을 살짝 열자, 문 틈새로 새벽의 싸늘한 바람이 스며 들어왔다. 언니는 잠이 깬 나에게 미안했는지 "들어가서 더 자"하고 속삭였다. 그렇게 외마디 쾅하는 문 소리만 남긴 채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나가서 한참을 차로 여행한 뒤 늦게까지 연습하고, 지쳐서는 일요일 저녁에 들어온다.


    또 어느 날은 언니가 여권을 챙기고 있었다. 집도 제법 크다. 트렁크가 고장나서, 남는게 있냐고 물어본다. 목 베게도 챙기고 정신이 없다.   


        "언니 어디 출장가?"


        "주말에 국제대회 있어서"


        "언니네 회사는?"


        "연차를 썼지-"


    언니는 그렇게 주말 없이 연습했다. 그리고 본인의 휴가를 '휴식'도 없이 줄창 써가며 국제대회에 참가했다. 국가로부터 포상 휴가라도 받을려나, 뭐라도 챙겨주나 싶었는데 그런 건 없었다. 개인의 희생으로 이뤄지게 된 국가 대표팀- 결과는 좋지 못했다. 사실 좋은 시스템이 있는 곳에서 국가의 든든한 지원을 받으며 연습에만 매진을 해도 좋은 성적을 이뤄 내는 건 쉽지 않다. 그런데 생업하랴, 연습하랴 힘겹게 진행한 팀은 오죽 어렵겠는가?


    그런 이들에게 격려가 아닌 비난의 댓글이 달려 있다. 여간 속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온라인에서 많은걸 바라는 건 아니다. 격려는 없어도, 비난은 너무 한 것 아닌가? 비난의 댓글들을 보다보면 언니는 주말 뿐 아니라 평일에도 매일 연습에 매진해야만 할 것 같다. 어디까지가 가능한 희생일까? 분명한 것은 생업도 못하는데 밤 낮을 가리지 않고, 주말까지 불태워가며 준비하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언니가 평일에는 야구에 손도 안대는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평소에는 트레이닝 하면서 늘상 컨디션도 조정한다. 여유가 생기면 초보인 나나 다른 팀원들의 연습을 봐주곤 했다. 입문자는 근력도 부족하고, 몸을 섬세하게 움직이지도 못한다. 섬세한 이미지 트레이닝 뒤에 가능한 일인데 그런 것도 없이 무작정 움직이는 것이다. 화가 날 법도 한데 언니는 늘 묵묵히 가르쳐주었다.


        "자, 이 동작은 최대한 자세를 낮게 해서 안전하게 포구하는게 중요해.'


    내가 하는 수비동작을 보다가 언니의 움직임을 보면 큰 차이가 느껴진다. 공부도 좋고 이미지 트레이닝도 좋다. 하지만 물 흘러가듯 움직이는 언니의 움직임은 어디에도 없는 최고의 교과서이다. 남자 야구인의 책과 영상은 많지만, 여자의 몸으로 야구 동작을 어떻게 최적화 하는지는 어디에도 잘 나와있지 않다. 남자와 여자가 똑같은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근육의 모양도 골반의 모양도 움직임도 다르다. 결국은 보고 배우는게 가장 좋은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초보들 평일 운동을 봐주고는 또 주말이 온다.


    이런 지난 한 준비 기간을 거치고 국제대회를 나갔다 온다.  그런 상황에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오기는 쉽지 않다. 심지어 몸도 만신창이다. 다쳐서 올 때도 있다. 그래서 저 사람이 태극마크를 달고 있다. 너무나 야구를 좋아한 게 죄라면 죄다. 때론 저 태극마크가 신물이 난다. 저 마크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을 하는걸가? 이 나라가 우리에게 준거라고는 주입식 교육의 스트레스와, 삼포의 미래. 무한 경쟁의 불안함 아닌가? 저 태극마크를 위해 이렇게 까지 해야하는 걸까. 그 희생이 먹먹하다. 야구 뿐만이 아니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져가는 선수들이 있다. 어느 스케이터 선수는 가혹한 체벌, 심지어 성폭행까지 당하기도 했다. 그렇게 딴 금메달 이후에는 삶이 안정될까? 그렇지도 않다.  삶이 안정적인 선수는 몇이나 있을까. 따기라도 했으면 다행이지만 이름 없이 연습만 하다 다친 이들은 오죽할까.


        다시 시선을 그라운드로 돌린다. 언니가 무릎을 살짝 매만진다. 매번 연습을 많이해서 어딘가 아파고, 또 거길 수술하고, 돌아와선 또 병원을 가고 난리도 아니다. 그러고는 말릴 새도 없이 또 운동장을 간다. 계속 야구를 보고, 연습을 하고 공을 던진다. 그래서 오늘도 또 그라운드다. 이상하게 무릎이 아픈가 보다. 그래서 이번엔 3번 타자를 한 것 같다.  언니는 치고야 만다. 이 사람이라면 쳐야 마땅하다. 단단한 마음이 나에게 말했다.


언니의 공이 멀리로 날아간다.


            기다리기 무섭게 명쾌한 쇳소리가 구장을 울린다. 언니의 호쾌한 배트 휘두르기다. 공은 멀리 우익수 넘어로 날아간다. 언니는 정작 빠르게 뛰지 못해서  1루까지 밖에 못갔다. 뭐 어떤가. 언니가 쏘아 올린 공은 그라운드 꽉 채운 주자들을 싹 정리했다. 3점! 1루 위에서 언니가 힘차게 주먹을 올린다. 이런게 승리다!


        지금은 나만 알고 있고 싶다. 묘한 팬심. 컬링의 김 자매처럼 유명해지기 전에, 내가 먼저 팬 했다고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국가 대표 언니들은 오늘도 힘차게 달린다. 승리하는 그 날을 위해 202X년에도 어느 한 켠에서 연습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의문이 남는다. 그 승리가 꼭 메달이 아니면 안 되는 걸까? 그저 서로의 승리를 인정해주고 축복하는 건 우리에게 어려운 일인 걸까?






1회         야구를 하고 싶습니다
              1회 초 - #왜 하게 되었나

              1회 말 - #어떻게 하게 되었나


2회          야구하는 여자들

              2회 초 - #첫 연습 가는 길

              2회 말 - #어떤 여자들


3회          소금 먹고 운동하기

              3회 초 - #식염포도당님 영접

              3회 말 - #냉탕과 온탕


4회          드디어 (동네) 리그를 뜁니다

              4회 초 - #얼마면 돼?

              4회 말 - #선물하시게요


5회          첫 안타 치던 날

               5회 초 - #패배감

               5회 말 - #첫 안타


6회          전국대회 벤치 입문

                6회 초 - #벤치도 공사가 다 망합니다

                6회 말 - #기세는 벤치가 가져옵니다


7회          여자야구 국가대표

               7회 초 - #국가대표의 대가

               7회 말 - #그 많던 언니들은 어디로 갔을까


8회          운동장에 엠뷸런스 오던 날

               8회 초 - #운동장에 구급차 오던 날

               8회 말 - #솜사탕 같은 뜬 공


9회          우승하던 날

               9회 초 - #금메달

               9회 말 - #모자를 던지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