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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입문 Nov 17. 2019

[05] 3회초 - #식염포도당님 영접  

3.  소금먹고 야구하기

3회초 - #식염포도당님 영접

3회초 - #식염포도당님 영접


        집합시간 9시. 이 시간에 나오기 위해서는 새벽 6시부터 부산을 떨어야한다. 무릎이 안좋으면 무릎과 발목 주위에 안전용으로 테이핑을 하고 종아리를 감싸는 긴 양말을 신는다. 팬티 외에도 땀 흡수, 슬라이딩을 위한 슬라이딩팬츠를 입기도 한다. 여기까지 다 입었다 싶으면 드디어 바지를 입는다. 상의를 입기 전에 먼저 ‘언더’를 한 장 입는다. 그리고 상의를 바지 안으로 넣어서 입은 뒤 벨트를 한다. 나가기 전에 팔이나 목에 워터프루프 선스틱을 바른다. 햇빛이 차단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안 바를 수는 없다. 


        이렇게 준비하다보면 어쩐지 30분은 훌쩍 넘어있다. 운동을 해본 적이 없는 나에게 생소했던건 ‘테이핑’, ‘언더’, ‘슬라이딩 팬츠’였다. ‘테이핑’은 근육이 아플 때도 많이 하는데 선수경험이 있는 친구들은 늘상 본인이 붙이는 방법이 있어서 전문가처럼 슥슥 ‘테이핑’을 붙이고 나간다. ‘언더’는 땀 흡수가 잘되는 재질의 옷인데 정말 신박하게 빠른 속도로 옷이 마른다. 흔히 야구 중계에서 보는 야구복 아래에 입는 색이 화려한 쫄쫄이 셔츠다. ‘슬라이딩 팬츠’는 옷이 벗겨지지 않는 한 볼 수 없는 부분이라 몰랐는데 슬라이딩을 할 때 엉덩이이나 허벅지 부분을 다치지 않도록 하는 보호용 바지다. 재질은 ‘언더’랑 비슷하고, 쫄쫄이 반바지 같은 모양새다. 부스스하게 씻고나서, 이정도 두텁게 입고 나면 정신이 없다. 가방에 ‘글러브’랑 ‘배팅장갑’(타격용 장갑)을 털어넣고 나가면 간당간당하게 집합시간에 맞춰 도착하게 된다. 

김입문 해부도 - 왼쪽 위부터 언더, 양말, 상의, 하의, 운동화, 공, 배팅장갑, 글러브 

             

        운동 시작하기에 앞서서 감독님이 두가지를 물어본다. “어이, 다들 아침은 먹었지?, 그리고 곧 시작하니까 화장실 다녀오고.” 처음에는 이런 개인적인 이야기를 왜 물어보나 싶었다. 이걸 물어보는 이유는 단 하나, 그저 오늘 니가 쓰러질 지 안 쓰러질 지를 알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화장실은 반드시 물어볼 필요가 있었다. 초등학교 운동장과 화장실의 거리를 떠올리면 느낌이 올 것 같은데 상당히 멀다. 연습장이 근처에 없고, 오토바이 타고 가야 있는 곳도 있다. 있으면 다행인데 없는 곳 마저 있다. 그러니 물어볼 수 밖에. 


        배는 고픈데 뭐라도 먹을까 싶다가도, 배가 땡길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밥을 운동 직전에 먹고, 과한 운동을 하게 되면 배가 땡긴다. 그렇다고 안 먹을 수도 없고 걱정스럽다. 운동을 처음하는 초보가 하루종일 운동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리가 만무하다. 그런걸 모르는 사람이 새벽에 벌떡 일어나서 아침을 챙겨먹고 에너지 바를 챙긴 다음 이온음료나 얼음물을 챙길까? 귀찮고 굳이 안해도 될 것 같은데? 그렇다. 무식해서 용감하다고 나는 안 했다. 


            운동장에서 나보다 운동량이 훨씬 많은 사람들로 이뤄진 팀의 훈련을 따라간다는건 힘든 일이다. 개인 스케줄에 맞춘 헬스나 수영에 비해서 팀 운동은 팀을 따라가야한다. 팀이 나보다 훨씬 운동량이 많다면 내 평균보다는 훨씬 높은 운동량을 버텨야하는 일이 된다. 그런 운동량으로 오후 2시를 맞이하게 되면 운동장을 보면서 울렁거리는 기분이 들게 된다. 운동량은 개인차가 크다. 팀 운동은 개인 운동에 비해 서로 맞춰야할 것이 많다. 잘하는 사람은 좀 덜 잘하게 맞춰줘야하고, 못하는 사람은 좀 더 힘들게 맞춰야한다. 모두 다 함께 본인에게 딱 맞지 않는 운동을 하게 된다. 여튼저튼 야구는 취미이다 보니 잘하는 언니들은 훨씬 힘을 빼고 운동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니들의 하향 평균을 밑도는 내 운동량을 훨씬 웃도는 운동을 하게 된다애석하지만 못 따라가는게 나뿐이라면 내가 운동량을 서서히 늘려가는 수 밖에 방법이 없다. 


             먼저 땡볕에 달구어진 운동장에서 몸 풀기를 위해 운동장 수 십바퀴를 돌고 순발력 테스트를 위해서 18미터를 전력 질주 했다가 갑자기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캐치볼은 단어만 들으면 굉장히 쉬워보이지만 이것도 제대로 연습해보면 굉장히 힘들다. 처음에는 정확성이 떨어져서 멀리 떨어진 공을 줍기 위해 뛰다보면 이것만 해도 운동장 몇 바퀴는 도는 만큼 몸을 움직이게 된다. 
 

타격연습의 종류 - 티배팅과 토스배팅


            캐치볼이 끝나고 나면 타격 연습을 한다. T 바에 볼을 얹어놓고, 멈춰있는 공을 때리면서 타격감을 올리는 연습이다. 이것도 처음 하면 굉장히 힘들다. 가만히 있는 공도 정확하게 임팩트 포인트에 맞추는게 쉽지 않다. 그게 끝나면 토스 배팅. 공을 상대편이 토스해주면 그걸 받아치면서 타격감을 익힌다. 이후에는 라이브 배팅. 임시로 배팅볼을 던져주는 투수가 던져주는 공을 진짜 타격 하듯이 치는 연습을 한다. 이제 겨우 타격이 끝났다. 


           나머지는 수비 연습이다. 수비는 캐치볼에서 시작해서, 내야 수비, 외야 수비를 연습한다. 흔히 “펑고”를 한다고 하면 이 연습이다. 일본에서는 “노크” 라고도 부른다. 연습 타구를 날려서 공을 타격하는 사람, 이 타격으로 어떻게 수비를 해야하는지를 총괄적으로 연습한다. 처음에는 5-10개씩 수비 위치에서 날라오는 공을 받는데 주력을 하고, 이후에 이 연습이 한 두바퀴 돌고나면 수비 위치에 서서 모의 경기처럼 연습하곤 한다. 


              앞에 연습들로 몸이 다 풀렸다고 하면 이 연습으로 인해 점점 ‘힘듬’이 무엇인지 다가온다. 펑고(Fungo)가 즐겁게 (Fun)하게 시작해서 고통으로 (Go)으로 끝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우스갯 소리가 있을 정도로. 처음에는 편하게 정면에서 받을 수 있게 오지만 훈련을 위해서 좌우로 빠져나가는 공, 앞뒤로 달려가야하는 공을 연습한다. 나는 달려가는데 끝까지 공이 안 잡히면 ‘다시!’, ‘또 다시!’ 잡아야 한다. 내야, 외야가 나뉘어서 한참을 연습하다가 내야 연습팀들이 외야로 다 같이 와서 난이도가 높은 공들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벌써 공을 한 다스 다 써서 포수인 주장님이 외야로 볼 백을 가지고 달려온다. 펑고로 외야에 모아 둔 공을 가지러 온 것이다


                 다시 또 다시를 반복하던 내가 펑고 줄에 서 있다가 주저 앉았다. 어느 샌가 머리가 뭔가에 맞은 듯 멍 하다.  “헐, 언니 왜 그래요?” 공을 줍다 말고, 눈치 빠른 주장님이 다가와서 얼굴을 살핀다.  “얼굴이 좀 하얗게 떴는데? 파래진건가? 언니 밥 먹고 온거에요?”, “아.. 아니”, “헐 언니 미쳤어요. 잠깐만요!! 소금 갖고 올께요”, “어… 뭐? 소금?!” 주장님이 급하게 홈을 뛰어가서 감독님이랑 이야기를 한다. 벤치로 돌아가서 구급상자를 찾더니, 안에 있는 껌통 같은걸 꺼내서는 가지고 온다. 나는 죽염통 같은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소금님은 그런 가루 형태가 아니었다. 대신 하얀색 알약이 두알 손에 놓여있었다.


식염포도당님

        


           꿀꺽 넘기는데 생각보다 짠맛도 나지 않고 바로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식염포도당님 영접 순간이다. 상상한 것 보다는 덜 짜고, 빠르다. 내가 소금 이야기를 들었을 때 상상한 장면은 껌통으로 안에 든 소금가루를 한 스푼 떠서 먹으며 짜다고 괴로워하는 모습이었다. 가장 유사한 경험을 떠올리자면, 어릴 때 소금으로 양치하면 좋다고 해서 죽염을 칫솔에 묻히고 양치한 경험이라고나 할까. 나중에 그 이름의 치약을 쓸 때는 약간 긴장감 넘치는 표정으로 칫솔 위에 치약을 뿌렸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영접의 순간이 생각보다 싱겁게 끝났다. 식염포도당님은 흰 색의 정제된 알약의 형태(운동선수들은 흔히 먹어보는 알약)였다. 나는 이런 약을 운동을 하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땀으로 배출되는 염분과 포도당을 보충해주는 용도로 매우 땀을 많이 흘리는 운동이나, 산업 현장에서 사용되고 있었다. 때로는 선택이 아닌 의무로 약을 먹는 상황이 생긴다. 더 좋은 성적을 만들기 위해, 남들보다 더 땀을 흘리며 달리고 그래서 땀을 너무 빼다보면 포도당을 먹게 되는 상황이 생긴다. 한 여름 용암로 앞에서 땀을 흘리고 있는 이들도 스스로 그만큼 땀을 흘리고 있는지 인지하고 있지는 않다. 깨달았을 때는 이미 약을 먹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포도당을 받으니 궁금한 것들이 생겨 주장님에게 물어본다. 


           “이런 약 운동하다보면 자주 먹는거야?”, “네, 그렇죠. 이건 약 축에도 못 들어요. 생리 기간 피할려고 피임약도 먹고..”


           알고보면 이 약, 상당히 많은 부작용이 있다. 과하게 복용하게 되면 구토, 위장질환, 부종, 심부전 등이 올 수도 있다고 한다. 땀 흘리는 이들이 만약 선택 할 수 있다면 왜 이 약을 먹어가며 하겠는가. 그녀의 말처럼 식염포도당은 약 축에도 못드는 지도 모르겠다. 여성에 경우에는 이 식염포도당에 또 하나의 약이 추가된다. 훈련 일정, 경기 일정에 생리를 하지 않기 위해서 피임약을 먹는 일도 있다고 들었다. 그 부작용으로 불임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해서라도 얻어야 하는 승리는 무엇일까.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승리로 몰아넣고 있는 것일까?  이런 부작용을 알면서도 약을 먹고 달리고, 또 달리는 언니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시큰하다.


           식염포도당님을 영접하고 나서 한참을 그늘에 앉아 있었다. 시원한 바람이 느껴지면서 서서히 제 정신이 돌아온다. 주장님이 다시 돌아와서는 얼굴을 한번 더 확인한다.  “이제 좀 얼굴색이 돌아왔네요. 에고 큰일나요... 진짜.” 정말 큰일 난다. 이 운동, 취미로 하는 거지만 다치기 십상인 운동이다. 멍하게 있다가 돌덩이 야구공을 맞을 수도 있고, 운동장에서 쓰러지면 구급차 불러야하고, 훈련하다 얼굴 다칠 수도 있고… 등등 다양한 스토리가 들려온다. 여튼 방금 전까지 멀미하듯 띵한 머리가 서서히 풀린다. ‘당 떨어진다’는게 이런 느낌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 때 주장님이 자기는 배가 안부르고 당이 금방 보충되서 좋아한다고 한다며 환상의 과자를 건네 준다.  초콜릿 바는 이빨에 끼고 불편한데 이건 금방 먹을 수 있고 너무 달지도 않아서 좋다는 것이다. 약 천 원 이하의 환상적인 제품, 편의점이나 슈퍼 어디에든 있을 법한 범용성. 아침에 물이랑 이 녀석을 하나 사가면 당장 점심 먹을 때까지는 안 쓰러지고 움직일 수 있다. 


           나도 이 친구를 할머니들의 친구라고만 오해하고 있었다. 알고보니 -운동을 하는- 10대 여성도, 20대 여성도 먹고 있었다. 이 환상적인 아이템의 이름은 ‘양갱’이다.  나중에는 나도 양갱의 팬이 되어버렸다. 운동을 위해서 한 박스 사놓고 운동할 때마다 꺼내서 비상약 마냥 가방에 넣어둔다. 배가 헛헛하거나, 힘이 빠진다 싶으면 어지럽기 전에 한 입 먹어둔다. 이제는 왠만하면 아침을 챙겨먹고 가지만 못 먹더라도 양갱 한 입 먹고 가면 지난 번 처럼 어지럽지는 않았다. 식염포도당님 이후로 영접한 신박한 과자님이시다. 


           옛날에는 식염포도당을 훈련하는 도중에 주기적으로 먹어가면서 운동했다고 한다. 취미였지만, 다들 정말 열심히 했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제는 부작용도 우려가 되고 그렇게까지는 잘 하지 않는다. 결과에 대한 욕심이 그렇게까지 노력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렇게까지 한다면 분명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십자인대가 파열 되기도 하고, 과한 욕심에 지도자가 아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아직도 폭력이 일상인 그곳은 전 세계의 축제인 올림픽을 주최하는 나라에서 한 스케이터가 훈련장에서 탈주하게 몰아 세웠다. 일상적인 폭력도 아닌 성폭력이 이뤄졌는데, 코치에 대한 처벌도 고작 1년 6개월 징역. 관련 자들은 아직도 버젓이 요직에 남아있다. 무엇이 그들을 괴물로 만드는 걸까?







1회         야구를 하고 싶습니다
              1회 초 - #왜 하게 되었나

              1회 말 - #어떻게 하게 되었나 


2회          야구하는 여자들

              2회 초 - #첫 연습 가는 길

              2회 말 - #어떤 여자들


3회          소금 먹고 운동하기

              3회 초 - #식염포도당님 영접

              3회 말 - #냉탕과 온탕


4회          드디어 (동네) 리그를 뜁니다

              4회 초 - #얼마면 돼?

              4회 말 - #선물하시게요


5회          첫 안타 치던 날

               5회 초 - #패배감

               5회 말 - #첫 안타


6회          전국대회 벤치 입문

                6회 초 - #벤치도 공사가 다 망합니다

                6회 말 - #기세는 벤치가 가져옵니다


7회          여자야구 국가대표

               7회 초 - #국가대표의 대가

               7회 말 - #그 많던 언니들은 어디로 갔을까


8회          운동장에 엠뷸런스 오던 날

               8회 초 - #운동장에 구급차 오던 날

               8회 말 - #솜사탕 같은 뜬 공


9회          우승하던 날

               9회 초 - #금메달

               9회 말 - #모자를 던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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