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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입문 Nov 17. 2019

[02] 1회말 - #어떻게 하게 되었나

1. 야구 하고 싶습니다.


1회말 - #어떻게 하게 되었나


         야구팀을 찾아가 대뜸 야구를 하고 싶다 말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처음에는 어디에서 찾고, 가입해야 하는지 조차 해맸다. 15년전 쯤에는 포털사이트에 서 ‘여자야구’로 검색하면 일본 여자야구에 진출한 선수, 여자 모델의 경기 시구 등의 뉴스기사가 몇 건만 나와서 가입할 방법을 찾기 어려웠다. 2021년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팀이 많이 늘었다. (사)한국여자야구연맹에 속한 팀은 홈페이지에서 리스트를 확인할 수 있고, 이외의 팀은 각 포탈 및 카페, 게임원 여자리그 등에서 정보를 찾을 수 있다.     

여자야구 커뮤니티를 찾을 수 있는 포털 [출처 : 왼쪽 위부터 네이버, 다음, 게임원, 한국여자야구 연맹]

         본인이 사는 지역에는 전혀 여자야구팀이 없다면, 동네 남자야구팀에서 시작해볼까 라는 생각을 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추천은 하기 어렵다. 성차별은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있나?), 애석하게도 신체적인 차이는 부정할 수가 없다. 처음 야구를 시작하거나, 운동을 집중적으로 해본 경험이 없다면 남자팀과 섞여서 하는 것은 위험 할 수 있다.

 

          훈련이 부족하더라도 기본적인 근력이 먹고 들어가는 남자들은 오자마자 캐치볼을 해내곤한다. 근력도 한 몫 하지만, 어릴 때 한번이라도 공을 던지고 받아본 ‘캐치볼 가락’ 이 있어서 그렇다. 그래서일까? 남자들은 등급이 낮은 리그일 수록 체계가 없이 연습하는 경향이 있다. 평범한 여자의 체력으로는 하부리그에서 야구를 시작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기본 체력 차이와 ‘체계 없음’이 합쳐져서 단박에 부상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를 많이 봤다. 사무실에서 운동 한번 안 해 본 여성이 아니라, 운동을 왠만큼 해 본 체력 좋은 언니들이라도 다치는 경우를 왕왕 보았다. 기본 체력이 높으니 운동량은 많고, 그에 비해 스트레칭이나 준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고 시작한다.

 

          여자들이 학교에서 해본 ‘공던지기’ 는 체육시간의 피구가 다가 아니었던가? -요즘은 다를지도?- 축구, 농구는 공 한번 건드려 본 기억이 나지만 야구공은 전혀 없다. 야구는 학교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종목이기 때문이다. 그런 여자들에게 캐치볼(즉, 공 던지고 받기)는 좀 처럼 해볼 수 없는 행위이다. (90년대생은 또 다를 수도 있겠다). 던지고 받기에 대한 요령 -즉, ‘캐치볼 가락’- 부터  훈련 해야하니 갈 길이 멀다. 이거 말고도 해야 할 훈련은 첩첩산중이다.

 

          여자는 알게 모르게 몸을 움직이는 것에 대한 제한이 많다. 남자종목, 여자종목 같은 것이 의식 속에서 나뉘어져있다. 예를 들면 피겨스케이팅이나, 리듬체조는 왠지 여자의 종목인  같고, 여자가 아무리 잘해도 역도나 레슬링은 남자종목 같다. 이런 생각으로 인해 실제 행동에도 제약이 생긴다. 초등학교 때는 소리치며 뛰어 다니는  보다는, 조신하게 앉아 있기를 원했다. 고등학교 때는 친한 ‘남자인 사람 친구들 농구하고 축구하며 뛰어놀고 싶었지만, 그럴  없었다. 우리는 남자반과 여자반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여자반인 내가 남자반의 친구들과 어울려 축구나 농구를 하는건 1,000여명 남짓한 고등학교에서 어마어마하게 눈에 띄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여고생이 기껏   있는 운동이라고는 친구들과 회전 초밥 마냥 운동장을 조용히 뱅뱅 걸어다니는 정도였다.


트랙도 없는 흙 운동장을 구경꾼처럼 걸어다닌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이런 제한을 벗어난, 여고생이 딱 한 명 있었다. 당시 전국체전 사격부문 금메달 리스트였던 체육 특기생 친구였다. 그 아이는 여름에는 사격 훈련을 했고, 감을 잃지 않기 위해 수업 시간 중에도 기초 훈련을 했고, 겨울에는 눈이 있는 나라에서 체력 훈련을 하며 운동만 했다. 늘 빈자리로 만났던 그 친구를 가끔 만날 수 있었던 때는 중간고사, 기말고사 뿐이었다. 1천명 중에 딱 한 명 특별한 여자만이 ‘운동’을 했다.

 

           그렇게 알게 모르게 운동을 금지 당한 여자들의 기초체력은 어떨까? 여자의 체력은 엄청난 의지와 노력이 아니고서야 남자의 50-70% 정도이다. 그것도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경우다. 운동을 전혀 하지 않으면 (나처럼) 너덜거리는 종이인형정도의 체력을 갖게 된다. 캐치볼 하나를 하려고 해도 공을 10-20미터는 던질 수 있는 팔의 근력이 필요하다. 자세히 보면 알게 되지만, 공을 던진다는 건 팔로만 던질 수 있다. 온 몸을 사용해서 던지기 때문에 모든 부분에 최소한의 근력이 있어야 한다. (정확하지는 않아도) 운동장 30바퀴 정도는 뛸 수 있는 최소한의 체력, 수영장 60-80랩 정도는 너끈 돌 정도의 전신근력을 추천하고 싶다. 물론 필요조건이 아니라, 충분조건이다. 팀 분위기에 따라 천천히 늘려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조건들을 나 역시 처음부터 갖추고 시작한 건 아니었다.  

 

           손가락 끝으로 야구공의 실밥을 챌 수 있도록 공을 잡는 방법, 손목의 스냅을 공에 전달해 주는 방법, 던지고 나서 팔의 팔로스로잉까지 배워야 할 것이 첩첩 산중이다. 이것이 끝나야 겨우 A to B로 공을 던지고 받는 ‘캐치볼 가락’이 완성된다. 근처에 야구를 하는 팀도 없는데 남자팀에도 들어가지 말라니 어쩌란 말인가?! 하란 말인가, 말란 말인가?! 최선의 방법으로 하면 좋겠지만, 안된다면 당연히 차선도 있다.

 

        여자야구는 기반 시설이 별로 없다. 같은 서울/수도권 팀이면 공유하는 기반 시설이 한정 되어있어서 팀 별 차이가 별로 없다. 그렇기 때문에 수도권 내에서 팀 자체의 위치나 거리는 그다지 의미가 없다. 서울팀이라서 송파리그(리그도 많다)를 뛰지만 구리나 별내로 연습을 가고, 경기도에서 실내연습을 하기도 한다. 경기도 사람이 서울팀에 있는 건 물론이고 충청도 사람이 오는 경우도 봤다. 가장 놀라운 용병선수는 부산사람이 서울까지 원정을 와서 서울팀 연습을 함께하고 즐기는 경우도 있었다. (당시 그녀는 에이스였고, 간부까지 해냈다. 지금은 광주에서도 올라오는 언니들도 있다. KTX의 위대함!) 지역에서 흥해서 지역팀이 많아져야, 전국 리그가 커지는데 좀 씁쓸하기도 하다.


지하철의 패션왕


            나 역시 대학생 때는 우리동네 근처 팀이 없나 부단히 찾아봤는데, 나이가 들고 운전도 할 수 있게 되니, 이동 반경이 넓어졌다. 덕분에 새로운 팀으로 이적할 때는 거리를 고민하지 않고 골랐다. 그렇다면 처음 갈 때 차가 꼭 있어야할까? 장비가 무겁고 많기 때문에 차가 있으면 좋다. 처음 시작할 땐 장비가 거의 없지만 하다 보면 장비 가방이 유격훈련 가방만 하다. -라는 남자들의 평- 가히 세계여행을 위한 배낭사이즈라고나 할까? 처음엔 힘들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이정도 가방 정도는 매고 다닐 수 있어야 야구를 하며 버틸 수 있다. 그리고 야구복을 입고 지하철을 탄다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야구복을 입은 자를 보는 것만해도 지하철 내의 핫이슈를 독차지 할텐데, 야구복을 입은 여자라니. 입고가면 모르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말 거는 것은 기본이다. 뿐만 아니라 그저 서 있는 것 만으로도 1호선 1-1의 패션왕의 기분을 만끽 할 수 있다. 때론 너무 민망해서 나중엔 지하철 안에서 선글라스를 끼는 것으로 스스로의 신변을 보호하곤 했다. 차가 있으면 무거운 가방도 넣고, 눈총도 피할 수 있으니 지역에 상관없이 원하는 팀에 합류하는게 어렵지 않다.  

 

              여튼 뚜벅이라고 야구를 할 수 없는건 아니다. 좀 부끄럽고 약간 불편하더라도 할 수 있다. 우리팀의 2대는 다들 차는 커녕 오토바이도 없었고, 때론 30대 언니들이 카풀코스를 짜서 삼삼오오 태워와서 연습장으로 오곤 했다. 심지어 10대들도 몇 명 있었는데 머나먼 거리를 뚜벅뚜벅 걸어왔지만 언니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꾸준하게 열정적으로 야구를 했었다. 수도권의 부동산이 그렇지만 낮은 가격으로 넓은 면적을 구하려면 외곽으로 나가야한다. 야구장이 크다 보니 시설 좋은 데로 갈려면 외곽 구석진데까지 가야했다.

 

            뚜벅이가 오기 편한 역세권 연습장은 아무래도 작고, 많은 팀의 예약이 몰리다 보니 타 팀과 스케줄 경쟁도 심하다. 여자팀만 경쟁하면 모를까 이 나라 1만개   남자야구팀들까지 다 경쟁자다. 게다가 막상 연습장을 따와도 역세권이다보니 면적이 작거나, 낡거나, 시설이 부족한 부분이 많아서 영 아쉽다. 팀 입장에서야 뚜벅이를 위해서 역세권 작은 연습장을 쟁취하는 경쟁에 뛰어 들기보다, 오히려 팀 내에서 삼삼오오 효율적으로 힘을 합쳐 조금 멀리 이동해서 쾌적한 환경에서 연습하는 편이 더 좋다.

 

              일단 카페에 가입도 했고, 신입 연습을 가기로 했다면 남은 의문은 이제 가기 전에 뭘 준비하지라는 질문이 남은 것 같다. 십분 백분 이해할 수 있다. 가기 전에 수 많은 장비를 구매하고 싶은 그 마음을! 야구를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글러브가 탐나는건 당연할 것이다. 모든 취미의 시작이자 끝은 장비욕을 채우는 것 아니겠는가. 말리고 싶지는 않지만 정말 말려야 하는 것이 이 부분인 것 같다. 처음 가보고 야구는 커녕 기본 체육도 잘 안해본 사람이라면 장비를 먼저 사면 후회를 하게 될 것이다.

 

              여자야구는 리그도 작다. 그러니 시장도 작다. 시장이 작다는건 전문 매장이나 장비를 다루는 가게가 적다(아니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자야구용 장비가 아니라 사이즈가 작은 야구 장비 중에서 맞는 것을 찾아서 적당히 쓰고 있는 상황이다. 장비를 갖추고 당장 시작하고 싶은 그 마음! 십분 이해한다. 아쉽지만 실력과 포지션에 따라 필요한 장비도 천차만별이다. 첫 연습 전에 장비 구매는 앞으로 다가올 장비병을 위해 참는 것이 좋겠다.

 

              참을 것은 장비병이요,  해야할 것은 기초 장비 갖추기다. 기초 장비는 무엇일까? 야구를 시작하는 여자가 갖춰야 할 기초 장비는 크게 3가지이다. 펄떡펄떡 뛰어다니더라도 흘러내리지 않으며 먼지를 듬뿍 맞아도 상관 없는 편안한 체육복 상하의. 그리고 산지 오래되서 내 발에 딱 맞는 편한 운동화다. 기왕이면 꾸준한 스트레칭과 기초 운동을 한 몸도 챙겨가길 추천한다. 나는 처음에 엄청나게 쫀쫀한 청바지를 입고가서 언니들에게 한 소리를 들었다. 내 엉덩이에 문제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첫 시간에 수비 자세를 배우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 몹시 보기가 민망했다(언니들의 표현으로는 눈을 뽑고싶다)는 냉정한 비판을 들었다.


올바른 신입의 자세. 좋은 예와 나쁜 예

          

          막상 시작하면 알게 되겠지만 한국에는 아직 아마추어를 위한 잔디구장이 거의 없다. 내가 시작했을 때는 거의가 아니라 잔디구장이 전혀 없었다.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아서 흙구장에서 뛸 공산이 크기 때문에 가능하면 다리를 잘 보호할 수 있는 긴 체육복 하의를 입고 가면 좋다. 피부가 자외선에 맹렬하게 타기 때문에 상의도 가능하면 반팔보다는 긴 팔이 낫다. 그리고 썬크림은 필수다. 비오듯 흘리는 땀에도 억세게 버티는 워터프루프 썬크림, 3-4시간 마다 덧 발라줘야 해서 실제로는 썬스틱을 많이 썼던 것 같다. 선글라스도 운동용으로 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좋다. 스포츠 선글라스도 좋지만 그냥 선글라스도 싸고 마구 부서져도 괜찮은 마음 편한 녀석으로 하나 갖고 있는걸 추천한다. 운동화에 양말은 발목까지 오고 좀 두텁한 것이 좋다. 이건 운동을 어느정도 해본 사람들은 다 알 내용인데, 나는 정말 햇볕 아래로는 가뭄에 콩 나듯 나오는 사람이 였기 때문에 이런 정보조차 없었다.

 

        처음 시작할 때 할 수 있는 야구 연습은 주로 ‘주자’연습이다. 주자 연습은 모든 주자 상황을 가정하고 진행한다. 이 상황에서 다음으로 달려갈 것인지, 돌아갈 것인지를 타구 방향에 따라 연습해 본다. 처음에는 본인이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1-3루까지 무조건 뛰면서 수비 연습을 도와주는 존재로 시작한다. 이런 연습은 급 정지, 급 출발 등 순발력을 요하는 동작이 많다. 발목울 다치기 쉽상이므로, 이런 연습을 대비해서 가능하면 두껍고 발목이 긴 양말을 신으면 좋다.

 

 나중에 정식 가입해서 받게 되는 야구복에 딸려나오는 긴- 양말을 보면 놀라울 것이다. 그건 구장에 옆어지고 매쳐져도 안전하기 위해서 만든 양말이라 특히나 그렇게 긴 것이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발목을 감싸주는 두터운 양말은 입문자가 꼭 챙기면 좋을 아이템이다.

 

          이정도 챙겼으면 됐다. 남은 건 ‘내가 할 수 있을까?’하는 불안감을 내려 놓고, 주말 연습장을 향하는 차를 타는 것뿐이다. 나의 첫 연습은 위에 말한 그 어느 것도 준비하지 못한 채 시작했다. 그 차를 타고 나면 평소에 다니던 쇼핑몰과, 사무실에선 보기 어려운 언니들을 만나게 된다. 밤에는 이만 하얗게 보일 정도로 검게 탄 언니들, 너무나 만지고 싶은 근육을 지닌 멋진 언니들, 주말을 유혹하거나 붙잡는 수많은 것을 제쳐놓고 야구를 하는 언니들이다. 전화 해보면 일단 첫 연습에 나오라고 할 것이다. 당황스럽겠지만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갈지말지 망설여진다면 너무 두려워 말고, ‘일단’ 가보자. 일단 공을 치고 홈을 나와서 달리지 않고서는 어차피 1점을 뽑아낼 수 없다.






1회         야구를 하고 싶습니다
              1회 초 - #왜 하게 되었나

              1회 말 - #어떻게 하게 되었나


2회          야구하는 여자들

              2회 초 - #첫 연습 가는 길

              2회 말 - #어떤 여자들


3회          소금 먹고 운동하기

              3회 초 - #식염포도당님 영접

              3회 말 - #냉탕과 온탕


4회          드디어 (동네) 리그를 뜁니다

              4회 초 - #얼마면 돼?

              4회 말 - #선물하시게요


5회          첫 안타 치던 날

               5회 초 - #패배감

               5회 말 - #첫 안타


6회          전국대회 벤치 입문

                6회 초 - #벤치도 공사가 다 망합니다

                6회 말 - #기세는 벤치가 가져옵니다


7회          여자야구 국가대표

               7회 초 - #국가대표의 대가

               7회 말 - #그 많던 언니들은 어디로 갔을까


8회          운동장에 엠뷸런스 오던 날

               8회 초 - #운동장에 구급차 오던 날

               8회 말 - #솜사탕 같은 뜬 공


9회          우승하던 날

               9회 초 - #금메달

               9회 말 - #모자를 던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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