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의 뒷면 #검은 금메달보다 흰 양말
9회 초- #금메달
새삼스럽게 금메달의 뒷 면을 본다. 금메달의 뒷 면은 금색일까? 분명 금색일 터, 하지만 뒷 면은 빛이 들지 않는다. 그러니까 금메달 뒤는 검다. 반짝거리는 금메달은 1등을 증명하는 증거 1호다. 모두 잘 알다시피 이 나라에서 1등이 참 중요하다. 순위가 중요하고, 결과가 중요하다.
사회인 야구라고 별반 다른 것은 없다. 리그도 대회도 승패가 있고, 1등이 있고 꼴등이 있다. 이기는 팀은 대체로 스트레스가 풀리겠지만, 지는 팀은 이러려고 주말을 날렸나 라는 생각이 절로든다. 프로라면 어떨까? 누군가는 1등을 하고, 누군가는 야구를 그만둔다.
십수 년 이 나라의 교육을 잘- 받은 탓인지 나도 별 수 없다. 말로는 1등은 별로라고 하면서, 게임을 해도 이기는 게 중요하고 지면 역시나 싫다. 대회를 몇 번이나 나갔는데, 2등 한 경기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우승하고, 금메달을 받은 날만 생각난다.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취미를 하는데도 이렇다. 이 놈의 나라는 취미를 하면서도, 1등이 아니면 의미가 없게 만든다. 1등을 추구하는 한정적인 공간에서 필요한 건 ‘극도의 효율성’이다. 그리고 그걸 돕는 것은 ‘폭력적인 강압’이다. 그렇게 만든 극도의 효율과 강압은 대체로 ‘좋은’ 결과를 만든다. - 누구에게 좋은 건진 모르겠지만 - 보통은 그게 금메달이다.
전국대회를 참가하게 되면 이 두 가지 요소를 명확하게 볼 수 있다. 금메달을 따기 위한 극도의 효율성. 그 방법 중 하나로 ‘선수 출신’의 등용이 있을 것이다. 선수 출신이 아닌 사람은 팀에서 효율이 높지 않다. 열심히 한다고 해도 체육 전문인에 비하면 훨씬 경기 수준이 낮다. - 악으로, 깡으로, 돈으로 야구하는 몇몇의 특수 케이스가 있다고는 들었다. - 효율적이지 않게, 잘된 팀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극히 낮은 확률일 것이다.
여자 야구 전국대회, 우승하는 팀은 ‘선출’(선수 출신)의 비율이 높은 경우가 많다. 참, 서류상으로는 높지 않을 수도 있는데... 타 종목 ‘선출’로 숨길 수도 있다. 야구 선출만 유의미한 남자 야구와 달리, 여자는 야구선수가 없기 때문에 소프트볼 선수 정도만 선수 출신으로 분류한다. 그래도 ‘선수 출신’이 아닌 ‘선수’들이 포함된 팀은 강하다. 타 종목 내 스포츠 선수이기만 해도, 일반 여성들과 대비해서 경기력 차이가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선수 출신 비율을 일정 정도 제한을 두긴 하지만, 이런 부분까지는 알 수가 없다. 물론 이게 ‘불법’은 아니지만 석연치는 않다.
왜냐면 1년 내내 팀에서 활동하지 않다가, 전국대회만 나가는 용병 같은 멤버들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극도의 효율성 추구를 위해서 정작 한 해를 함께 했던 팀원들은 벤치로 밀려난다. ‘팀을 위한 선택’이라며, 취미 야구의 금메달 뒷 면에도 이런 일이 생겨나는데 프로 야구라면 어떨까? 오죽 효율성을 추구하면 약물까지 먹을까. 그리고 폭력적인 강압도 생겨난다. ‘못하면 더 잘하게’ 강압적인 연습을 하거나, 연습하다 말고 서로 폭력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대체로 선수 출신들은 군대식 문화에 조금 더 무감했다. 반드시 선수 출신들이 그러한 폭력적인 강압을 한다는 건 아니지만, 확률적으로 빈도가 높았다. 또는 타인에게 폭력적인 강압을 행할 때 관찰자로서 묵인하거나, 용인했다.
취미활동인 야구장에서 깜짝 놀랄만한 큰 소리를 듣곤 한다. 그게 더 빠르게 선수들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엔 더 했고, 요즘엔 덜 하다. 분명 선수 시절이던 때에 비하면 정말 ‘별거 아닌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엔 별거 아닌 것도 아니고, 그런 경우가 없지도 않았다.
더 잘하는 사람이 더 못하는 사람에게, 더 나이가 많은 사람이 나이가 적은 사람에게 쉽게 폭력이 내려온다. 십 수년 전의 나는 어리고, 다소 (상당히?) 못했기 때문에 그런 위기를 빨리 봉착했다. 담배를 피우던 언니들 무리에 끼지 못했고, 욕하고 센척하는 언니들 사이에 익숙해지지 못했다. 물론 절대 전부는 아니다. 그렇지 않으려 노력하는 선수들이 분명 있고, 많아지고 있다.
여자인 입장에서는 이 차이가 더 극명하게 느껴진다. 아예 군대를 가지 않아서 그 문화를 이해할 수 없는 입장과, 여자이지만 마치 군대를 갔다 온 듯한 이들 사이의 거리는 멀다. 여자팀에서 이 정도인데, 남자팀에서는 어떨지, 프로팀은 어떨지 그리고 사회에서는 어떨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씁쓸하다.
다행히(?) 요즘엔 나도 나이가 들어서 이제는 담배 피우던 선수 언니들보다 나이가 많아졌다. 이 놈의 나이 빨 때문인지 그들이 다소 만만해졌고, 때때로 이들이 욕하거나 폭력적인 행동을 하면 ‘당신들이 욕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소리 지르는 게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 말고도 다른 많은 이들의 작은 노력들이 모여서 나아져왔다. 정말 십 여 년 전보다는 훨씬 야구장의 분위기가 부드럽다. 그래도 여전히 - 내가 예민할 수도 있지만- 이런 의문이 남는다.
과연 같이 등산하는 사람들끼리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수예를 하는 사람들끼리는 어떨까? 낚시라면? 그림 그리는 동호회라면? 취미인 동호회 그 어느 곳에서도 그렇게 소리 지르거나, 못한다며 윽박지를 수는 없을 것이다. 아 하지만, 음악 하는 사람들끼리는 또 그런 모습을 보기도 한다. 같이 하다 보면 더 잘하라고 서로 으르렁 할 수도 있긴 한 것 같다. 그래도 마음은 다치지 않게 서로 선을 지키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이런 고민은 현재 진행형이다. 사회인 야구가 조금 나아진 거에 비하면 프로 리그를 자정 하는 일은 아직도 갈길이 한 참 멀은 것 같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계속해서 찬양하는 한 이런 일은 끝나지 않겠지. 금메달을 따는 과정도 금처럼 반짝반짝 빛나지 않으면 그 뒷면은 영원히 어두울 수밖에 없다.
나는 그래서 오늘 검은 금메달은 버린다. 하지만 함께 즐겁게 야구하고 받았던 동네 리그의 흰 양말은 소중하게 넣어두었다. 검은 금메달 속에 들어있는 극도의 효율성도, 폭력적인 강압도 싫기 때문이다. 이 검은 금메달보다는 요 보잘것없는 흰 양말이 훨씬 더 반짝거린다.
그렇게 검은 금메달들을 먹고 자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들을 나는 응원할 수는 없다. 돈 없고, 약한 피해자는 숨도 못 쉬고 살아가는데, 가해자는 너무나 당당하고 심지어 잘 살고 있다. 오히려 돈이 많으니 법률적으로도 더 도움을 많이 받겠지. 아마도 피해자가 질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소리 내는 것’은 두렵다. 다시 역으로 공격당할 것을 생각해야 하고, 지난한 법정 공방으로 힘들 것도 각오해야 할 것이다. 그 두려움을 잘 알고 있기에, 그 길을 선택한 것이 쉽지 않은지 알 수 있다. 당장 대항할 수 없어도, 더 이상 외면하거나 넘어가지는 않겠다. 그들을 응원하지 않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이 사회에서도, 사회인 야구에서도, 프로리그에서도 더 이상 아픈 사람들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p.s : 기사를 보고, 마음이 쓰여서 글 순서를 바꾸어 봤습니다..
1회 야구를 하고 싶습니다
1회 초 - #왜 하게 되었나
2회 야구하는 여자들
3회 소금 먹고 운동하기
4회 드디어 (동네) 리그를 뜁니다
5회 첫 안타 치던 날
6회 전국대회 벤치 입문
7회 여자야구 국가대표
8회 운동장에 엠뷸런스 오던 날
9회 우승하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