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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입문 Apr 29. 2021

[18] 9회 말- #모자를 던지며

#야구입문 #재구매 의사있습니까?

9회 말- #모자를 던지며


        우승을 한다. 모자를 던진다. 어딘지 익숙한 야구 만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그만큼 이 순간은 여러가지 복잡한 기분이 기분이 마무리 되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대중화된 엔딩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기분은 대중이 쉬이 느껴볼만한 기분은 아니다.  대부분의 학교에 야구부가 있고, 전국대회가 치뤄지는 일본과 달리 한국에서는 소수의 엘리트 학교만 야구를 하고 그 소수의 엘리트 학교 중 극히 일부만 돌아가며 ㅇㅇㅇ기 고교야구의 우승을 맛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생생하게 그 장면을 보지만 느낄 수는 없다. 생방송 TV로 올림픽 금메달을 보기도 하고, 매년 열리는 고교야구 대회 우승을 보기도 하지만 당사자들의 기쁨이 어떤지 느끼는 것은 참으로 요원한 일이다.


        생활체육에는 소소하게 계속해서 대회가 열린다. 수영을 할 때는 동네수영장 동호회에서 매번 참여하던 대회가 있었다. 회원들이 돌아가다시피하며 메달을 따왔다. 그렇게 일상적이지만 개개인에게 메달이 돌아가는 경험은 그들에게는 즐거운 비일상이고, 소중한 한 순간이었다.


        나에게도 그랬다. 비록 나는 야구를 잘 하지 못했지만, 팀은 우승했다. 비록 내실력도 아니지만, 팀에서 최고의 내조를(?) 했다는 이유로 여러가지 받아버렸다. 생각해보면 대학교 때도 무대 앞보다는 뒤에서 정리하고, 주변일을 하던 스타일이었다. 학생회 앞에서 왔다갔다하기 보다는 뒤에서 작전을 짜고 조직을 구성했다. 그러던 나는 야구장에 와서도 나는 벤치가 익숙하고 편했다. 분석하거나, 출전 인원 외에 인원들이 잘 배분 될 수 있게 조정하거나 현장을 촬영하거나, 소소하게는 물배달, 간식조달하는 ‘야구 그 외’ 일이 생각보다는 재밌었던 것이다.  직접 나가 타격하는 것도, 수비하는 것도 즐겁지 않은건 아니었지만 그것보다는 우승에 기여한 자잘한 일들을 해내고 팀이 우승하는게 즐거웠다.


전국대회 -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학창시절의 수학여행 같은 존재다. 


전국대회는 힘들다.


        전국대회는 힘들다. 사회인 야구에서 프로의 힘듦을 한 조각 떼서 느낄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예를 들어 이동일의 고통을 한  전국 이동을 차로 하는 건 쉽지 않다. 이 나라가 작다고 하지만 최소 1시간 반, 3-4시간을 이동하는 건 몸이 피곤하다. 게다가 사회인 야구는 프로가 아니니까 이동 후 휴식일 같은건 없다. (전날 가는 경우도 있다. 숙박비는 추가...) 새벽 이동 후 졸린 몸으로 바로 시작한다. 게다가 그 몇시간 운전한 사람 본인도 선수인 경우도 있다. 고로 사회인 야구지만 프로야구의 피곤함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감정 소모도 크다. 일반 리그랑 다르게 전국 대회는 승패에 상금도 걸려있다. 일반리그는 근처 동네사람들끼리 소소한 일상 만화처럼 즐기는 느낌이다. - 막상 경기에 들어가면 죽어라 열심히 하는건 비슷하나... - 그렇지만 전국에서 꽤나 하는 팀이 다 모인 대회는 한층 긴장감이 고조된다.


        상금은 추가비용인데 뭘 그렇게 목 메느냐고 할 수도 있다. 프로처럼 누군가 비용을 대주고 돈 받으며 경기하는게 아니다. 전국대회에 참가한 모든 비용은 거의 8할이 ‘내돈내산’이다. 팀에서 전국대회 올려고 사용한 기본 비용도 있고, 전국대회 참가비도 있을 것이며, 숙박비, 식사비... 여튼 대회’에 참가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팀 단위로 비용이 드는 일인 것이다.


        ‘내가 여기 들인 비용 (시간, 돈)이 얼마인데 본전을 뽑아야지’라는 마음이 들면 서로에게도 날카로워진다.일반 리그에서는 그냥 넘어 갈법한 실수도 전국대회에선 넘길 수가 없다.더군다나 중요한 국면에서 공을 떨어뜨리면 아주 죄인이다. 그 순간 모두의 한숨 소리가 귀에 꽂힌다. 그리고 잊혀지지가 않는다. 벤치에 돌아오면 다들 - 허탈한 표정으로 - 괜찮다고들 한다.  이정도면 부드러운 편이다. 서로 성질 내기도 하고, 분위기가 험악해지기도 한다. 벤치가 숨이 막힌다.


        그렇게 남들이 좋지 않은 분위기를 만들지 않더라도, 자기 자신이 제일 괴롭다. 내가 실수 했다는사실이 머리 속에서 잊혀지질 않는다. 그래서 프로들도 멘탈 관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나 보다. 실수하고 나면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벤치에서 얼굴이 사색되어 앉아있다.


        사회인 야구 수준에서 전국대회 에러(실수)는 프로의 포스트 시즌 중 에러 같은 느낌이다. 그런 에러를 하고 나면, 함부로 댓글로 어떤 특정 선수를 비난하거나 뭐라고 할 수가 없다. 선수가 실수한 후에  더그아웃에 푹 앉는 모습을 보면 보인다. 어깨에 묵직한 아령이 얹어진 듯한  그 모습. 그냥 봐도 어떤 기분일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잘하든, 못하든 전국대회는 참가 그 자체로 감정소모가 큰 것이다.


        게다가 혹시라도 본인이 팀 내에 운영진이나, 주요 멤버 쯤 되면 전국대회는 아주 피곤하다 준비단계가 많다. 대회에 전략짜기라는 중요한 ‘경기 관련 준비’외에도 자잘한 일이 많다. 여행 동선, 여행자 보험, 대회 확인, 차량 수배, 예산 짜기... 식당에 숙박예약까지 할 일이 태산이다.  팀 내 일반 참가자라고 해도 피곤한 건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팀이라고 해도 생판남과 어울려서 자고 경기하고 해야한다. 그게 생각보다 상당히 피곤하다. 수학여행에서 느낄 수 있는 부담감이라고 할까, 여행 자체는 좋은데 아무래도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


        학교 때 처럼 매일 같이 보다가 여행가는 것도 아니고. 1-2주 어쩌면 한달에 한 두번 보는 사람들끼리 여행을 갔다오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꽤나 투닥거릴 소지도 많다. 마치 명절에 만난 친척끼리 싸우는 것 처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것이다.


        그래서 전국대회는 여러가지로 힘들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매년 참가한다. 뭐랄까 대학교 때 기타 동호회가 생각난다. 그 때도 선배들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 ‘연주회’를 하고 나면 실력이 아주 많이 올라온다고. 그리고 재밌다고. 생각해보면 힘들었다. 감정도 부딪히고,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억이 난다.


모자를 던지던 날

사이다 같은, 모자를 던지던 날


        전국대회에서 수 많은 일들 - 싸우고, 다치고, 힘들고 - 하는 과정은 ‘사이다’를 흔드는 일과 비슷하다. 사이다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힘들고 짜증나는 일이다. 마구 흔들고, 그럴 때마다 - 빡침 - 압력이 쌓인다. 그런 상황에서 만약 퍽 하고 뚜껑이 열리면 어떨까? 정말 시원할 것이다. 그 시원함 때문일까? 전국대회를 끝내고, 이겨서 승리한 경기 뒤에 다 같이 모자를 던진다. 모자를 던질 때 보는 그 하늘은 눈부시게 파랗다. 사이다가 펑 터질 때처럼, 감정도 같이 펑 터지면서 모자 던지기 직전까지 화난 일들이 잘 생각이 안난다. 그리고 끝나고 나면, 모자 던지던 날만 생각이 난다.



재구매 의사가 있나요? 해볼만한가요?  


        누군가 전국대회, 아니 야구 해볼만한가요? 라고 물어본다면- 기억의 한 페이지는 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하지만 힘들고, 아픈 기억도 생길 수 있다. 아무리 기억 속에서 미화되어도, 신났던 기억만 남아도, 사진은 웃고 있어도 분명 힘들었다. 싸우기도 했고, 부딪히기도 한다. 커피는 마시고 나면, 잔앙금이 커피 아래 가라 앉아 있듯이.


        그래도 해볼만 하다.

             

       사람에 따라 다를 수도  있고, 어쩌면 인생에 필수인 취미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야구가 취미인 우리에게 는 일상의 괴로움을 잊을만한 환상의 공간으로 야구장이 남아주면 좋겠다. 반드시 절실하게 성과를 내야하는 곳도 아닌 감정을 부딪혀가며 효율성을 추구할만한 곳도 아닌 것이다.  그저 매주 좋아하는 사람들과 야구하고, 뛰어 놀고 평화롭게 재밌는 환상의 섬.  져서 화나면, 화난대로 다 같이 맥주를 마셔서 즐겁고. 이기면 이겨서 신나서 맥주를 마셔서 즐거운. 그런 곳으로 야구장이 남으면 좋을 것 같다.


— 영화 ‘그들만의 리그’를 보고나니, 더 많이 같이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금메달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내 생각엔 사진이다. 그건 어떤 증명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뛸 수 있던 어떤 날에, 같이 뛰면서, 공을 쫓았다는 증명. 그래서 즐거웠고, 다칠 뻔 했지만 함께해서 좋았다는 기억. 우린 어느 날 싸우기도 했지만, 그래도 만나서 즐거웠다고. 문득 서랍을 뒤져보니, 금메달은 이사하던 어느 날에 잃어버렸다. 여전히 내 서랍 어딘가에 사진은 남아있다. 


        우리가 그 날 만나서 즐거웠다는 걸 기억하기 위해.








1회         야구를 하고 싶습니다
              1회 초 - #왜 하게 되었나

              1회 말 - #어떻게 하게 되었나


2회          야구하는 여자들

              2회 초 - #첫 연습 가는 길

              2회 말 - #어떤 여자들


3회          소금 먹고 운동하기

              3회 초 - #식염포도당님 영접

              3회 말 - #냉탕과 온탕


4회          드디어 (동네) 리그를 뜁니다

              4회 초 - #얼마면 돼?

              4회 말 - #선물하시게요


5회          첫 안타 치던 날

               5회 초 - #패배감

               5회 말 - #첫 안타


6회          전국대회 벤치 입문

                6회 초 - #벤치도 공사가 다 망합니다

                6회 말 - #기세는 벤치가 가져옵니다


7회          여자야구 국가대표

               7회 초 - #국가대표의 대가

               7회 말 - #그 많던 언니들은 어디로 갔을까


8회          운동장에 엠뷸런스 오던 날

               8회 초 - #운동장에 구급차 오던 날

               8회 말 - #솜사탕 같은 뜬 공


9회          우승하던 날

               9회 초 - #금메달

               9회 말 - #모자를 던지며


연장전

 

10회        결국 주전이 되지는 못했다.

11회        매니저의 길

12회        잠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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