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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입문 Nov 17. 2019

[03] 2회초 - #첫 연습 가는 길

2.  야구하는 여자들

2회초 - #첫 연습 가는 길


         처음 연습하러 가는 길은 참 머쓱하고 어색했다. 금요일 저녁 늦게 들어와서 “신입  참가 가능” 이라고 적혀있는 공고문을 봤다.. 집합주소랑 시간이 적혀있다. 찾아보니 강둑변. 지하철 타고, 버스 타고 한 1.2km 걸어가야 나오는 공터다. 예상소요시간 1시간30분. ‘헐…대략 2시간 좀 넘겠네. 아침 9시?’ 갈등이 밀려온다.

 

           금요일이란 말이다. 이제 겨우 씻었는데 벌써 10시반이고 공지에 적혀 있는데까지 가려면 아침 7시에는 출발해야한다. 그럼 한 새벽 6시에는 일어나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이걸 매주 할 수 있을까? ‘아니 다음주에 또 나갈수나 있을까?’ 싶었다. 여튼 내일 간다고 문자는 했고, 몸도 피곤하니 일단 누웠다. 영 잠은 오지 않는다. 입학식 전날 마냥 긴장과 불안과 기대가 뒤섞여서 몸을 이리로 뒤척 저리로 뒤척거린다. 아 일찍 자야하는데 뭐하는건지.

 

           새벽에 몽롱하게 일어나서 대충 씻었다. 거울을 보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최소한의 예의상 -서울시민(혹은 서울에서 거주하는 전 인류)의 시각보호 및 심리적 안정을 위해 ‘파운데이션 정도는 해야 되는거 아닌가?’고. 비몽사몽이라 세수랑 양치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전부인 것 같다. 어차피 땀 흘릴건데 파운데이션은 오버 아닐까 싶기도 했다. (나중에 야구팀에서 연말 선물로 ‘파데’를 선물 받았다.) 로션 바르고, 위엔 일단 흰 반팔티를 입었다. ‘청바지 정도면 될려나?’ -큰 착각이었다.- 하고 옷장을 보니 생각보다 달리 편한 바지도 없다. 잘 늘어나는 스판성 고무줄로 된 청바지를 입고 일단 밖으로 나섰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지하철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만 보인다. 드문드문 등산 가는 분들도 눈에 띈다. 맨 앞칸에 가니 자전거 여러 대가 잔뜩 실려졌다. 자전거 동호회 분 들 인가보다. 아침 일찍 이렇게 운동하러 가는 사람이 많다니 새삼스러웠다. 왠지 멋쩍으면서도 나도 오늘은 ‘새벽에 운동가는 사람’의 기분을 만끽했다.

 

           새벽에 다들 운동을 가는데 지하철을 타야만 갈 수 있다니 뭔가 아이러니하다. 나만해도 야구장이 멀어서 이렇게 지하철 타고 도심을 나와, 굽이굽이 갈아타고 걸어가야만 도착할 수 있지 않은가. 너무 멀리까지 가지 않더라도 원하는 운동을 할 수 있다면 좋을텐데. 새삼 호주에서의 시간들이 떠올랐다. 문 밖만 나서면 녹색의 길이 펼쳐져 있어서 러닝이나 자전거 라이딩을 하기 위해서 먼 장소로 이동한다는 생각을 못했던 것 같다. 눈 앞의 공원이 너무 넓어서 바로 나가서 캐치볼도 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수영장도 바로 동네 앞에 크게 있고, 인공풀에 바닷가도 20분 내외였다. 이런 저런 생각하는 사이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내려서 건너편 사거리에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갈아타면 된다.

 

          갈아타느라 기다리는게 일이지 막상 버스를 타니 멀지는 않았다. 문제는 내리고 나서 였다. 지도 앱으로 찍어봐도 건물 이름도 안 나오고 여기가 맞는지도 잘 모르겠다. 좌표는 맞는데 뭐가 없다. 가도 가도 연습 할만한 데는 안보이고 폐허 같은 가 건물이랑 쓰레기가 보인다. 약간 하수구 냄새도 나는 것 같다. ‘대체 여기가 어딘가…’ 사람 하나 안보이는데 그런 생각을 하는데 반갑게도 잔디가 보였다. 비록 무성하고, 아무도 손댄 것 같지는 않지만, 여튼 잔디였다. 의아한 마음과 걱정되는 마음을 안고 더 걸어 들어가보니 때마침 전화가 온다.

 

           주장님의 전화다. 어제 진짜로 연습에 오실 계획이면 근처에서 전화 한번 달라고 문자를 받았는데 벌써 집합시간이다. “아 혹시 어디 쯤이세요? 오늘 오시는거죠?”, “아 네! 지금 근처인 것 같은데 잔디랑, 교통표지판 쓰레기 같은 거 있는데 근처에요.”, “맞아요! 거기 좀 더 직진해서 들어오시면 흙구장이랑 천막 보이실 거에요. 파란 유니폼 보시면 오시면 되요!”, 기다렸다는 듯 “네!” 하고 대답했다. 대답은 잘해요. 사실은 대체 어디로 ‘직진’ 해야될지도 모르겠는데 말이다. 그 때쯤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알루미늄 배트와 나무 배트의 차이


        “카앙-!” 평소에 듣는 소리보다 좀 가벼웠지만 분명 이 소리가 맞다. 야구배트에 공이 맞은 소리다. 알루미늄 배트에 공이 맞으니, 타격연습장에서 나는 소리가 들린다. 프로경기에서는 나무 배트를 쓰니까 “따악!” 하는 소리가 나는데 왠지 새로운 느낌이다. 가까이 가보니 야구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빨간색 유니폼, 파란색 유니폼… 노란색도 보인다. 구장은 하나인데 팀은 여러 팀이 섞여있다. 파란 유니폼을 찾아서 쭈뼛쭈뼛 머쓱하게 다가가니, 주장님이 금방 알아채고는 다가온다. “아, 오셨어요? 잠시만요.” 어떻게 알아본거지? 애석하게도 온 운동장에 청바지에 티셔츠 입은건 나 하나 뿐이다. 나설 때만 해도 눈에 띄지 않는 복장이라 괜찮았는데 구장에 오니 모두 야구복에 모자를 쓰고 있어서, 딱 봐도 “구경 온 사람”이라고 이마에 써붙인 것 같다. 주장님이 내 팔을 끌면서 안내를 해주었다. “이제 감독님께 인사드리고, 연습 참여하시면 될 것 같아요. 이 쪽으로 오시면 되요.”

 

           주장님은 마르고, 가녀리면서 엄청 여성스러웠다. 하지만 ‘운동하는 팀의 주장님’ 답게 까무잡잡했다. 말랐지만 자세히 보면 잔근육이 장난이 아니다. 머리에는 뭔가 헬멧을 거꾸로 쓴 듯한 모습인데 맨질거려서 얼핏 보면 대머리인줄 알았다. -주장님 미안해요.- 다리에는 건담의 발진장치 같이 생긴 보호대 같은걸 차고 있다. 꽤나 푹신해 보이고, 팍 차도 절대 안 아플 것 같은 독특한 장비를 가지는 포지션은 딱 하나 밖에 없다. ‘포수신가?’ 하고 생각하다보니 어느 샌가 나이가 좀 있으신 관록 넘치는 강렬한 언니 앞으로 왔다.


            이른바 감독님 대면. “아, 왔어요. 여기 주장이고, 저기 코치. 지금 몸 풀기 끝났으니까 몸 풀기만하고 캐치볼 같이하면 되겠네.” 감독님이 가르킨 쪽에서는 사람들이 두 줄로 서서 거리를 벌리고 어깨를 돌리고 있다. 바닥에는 각자의 글러브가 놓여있다(정말 공을 던지나 보다.) 생각보다 빠른 급 전개에 다소 정신이 없다. (여튼저튼 염원하던 캐치볼을 갑자기 하나보다.) 가만, 나 글러브 없는데 어쩌지. “거기 글러브 남는거 포수 장비 안에 없어?”, “아, 오늘 없네요.”, “나 하나 있어요.” 누군가 글러브를 하나 빌려주신다. 이어지는 질문들. “공 던져 본 적은 있어?” 아니요. “ 운동 뭐 하는거 있어?” 아니요. “평소에 운동은 해?” 아니요. 그리고는 위 아래로 준비상태를 체크한다. 음- 운동하러 온 애가 청바지라. “스판이라 잘 늘어나서, 체육복이 안 말랐더라구요….” 거기까지 듣더니 글러브는 반납, 일단 몸풀기를 하자며 기초 체조를 가르쳐주는 것으로 계획이 변경 되었다.

 

           주장님은 하던 캐치볼을 다른 누군가에게 맡기고, 나에게 기초 체조를 알려주기 위해 다가왔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들은 알았던 것 같다. 몸을 움직이는 프로인 그들은 나를 딱 보는 순간 ‘운동한 적이 없군’, ‘준비한 옷이 초보 그 자체군’, ‘심각하게도 평소 하는 운동조차도 없군.’, ‘야구 관심만 많군.’, ‘당장 던져봐야 다른 애들 운동 리듬만 끊어놓겠군.’ 하는 각이 나온 것이다. 내 자신도 지금 하는 업무 내용은 프로젝트 설명만 들어도 대충 ‘견적 얼마’, ‘기간 3개월’ 같은 각이 나오는 것 처럼.


            기초 운동은 일단 목 풀기부터 시작했다. 하루종일 컴퓨터만 두들기는 일을 하는 몸을 오른쪽으로 꺾자마자 어마어마한 두두둑 소리가 났다. 목을 뱅글뱅글 돌린다. 국민운동처럼 하면 되나 하고 다음 동작을 하려다가 주장님에게 저지 당했다. “음! 지금 그냥 몸을 움직이고 계신거죠. 그러면 근육이 안풀려서 나중에 크게 다쳐요.” 나중에 다친다니… 나는 나름 최선을 다해 움직였건만, 몸을 대체 어떻게 더 움직여야하나-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 새 동작 정지. 보다못한 주장님이 예시를 보여준다. “자 이렇게 왼쪽 머리를 오른쪽 어깨로 당겨주세요. 목 근육이 충분히 늘어날 수 있게, 근육이 늘어나는 느낌을 받아야 해요. 반대편도 마찬가지요. 안 쓰던 데가 늘어나는 느낌이 나게 해주세요

전신스트레칭 - 그냥 움직이지 말고 근육이 당겨지는 느낌이 있어야 한다

          영혼 없이 하던 국민 체조가 제대로 몸풀기 운동으로 동작 하나하나 바뀌어갔다. 의미 없이 뱅글뱅글 돌리던 팔 동작은 ‘뭔가를 주세요 하는 포즈에서 손가락을 아래로 땡기면서, 팔 안쪽 근육을 이완시키도록 개선되었다. 허리동작이나 다리 동작도 의미 없이 접었다펴기를 하거나 돌리기를 하는게 아니었다. 다리의 바깥쪽 근육을 이완시킬 수 있도록 충분히 ‘당겨지는 기분’이 드는 동작들이었다. 여기까지만 배워도 약간 지친 것 같다. 지칠리가 없다는 확신에 가득찬 주장님은 힘차게 캐치볼 하러가요! 라고 외친다. 준비 운동을 다 한 것 같은데 다시 또 글러브를 놓고 준비 운동을 한다. 이번에는 던지는 동작을 위한 상반신 풀기이다. 어깨를 돌리는 동작들을 몇 가지 더 한 이후에 드디어 글러브를 손에 낄 수 있게 되었다.


          멋지게 던지는 동작을 시범으로 보여주는 주장님. “이렇게 던지시면 되요.” 하고 연습삼아 공을 던져준다. 일단은 본 게 있어서 받기는 받았다. ‘이렇게…’ 그것은 마법의 단어였다. 방금 지나간 그 동작은 나에게는 ‘팔 휘두르기’에서 더이상 묘사할 디테일이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보고 이해한 동작인 ‘팔 휘두르기’로 공을 던졌다. 뭐 -그 공은 그녀의 글러브로 한번에 빨려들며 멋진 미트 소리를 냈다. 나는 다음 날 마운드에 오를 수 있도록 특급 연습을 했다. 내 구속은 어느 덧 124키로 아마추어 최고 구속을 찍었다. 다음 날은 전국대회, 우승은 나의 것…  -같은 스토리를 떠올렸지만 당연히 그렇게 될리가 없었다.


나의 캐치볼. 공이 사라지는 마구였다.


            나의 공은 멋지게 주장님을 한참 벗어난 오른쪽으로 굴러갔다. 그 굴러간 공마저 주장님은 멋지게 받아냈다. 다음 공은 주장님에게 닿지도 못했다. 나도 똑같이 팔 휘두르기를 한 것 같은데, 대체 왜 공이 원하는대로 가지 않는지 알 수 없었다. 나중에 가서는 캐치볼이라기 보다는 바닥에 구른 공을 줍기에 가까워졌다. 바닥에 구르는 공을 주우러 다니는 일은 생각보다 지친다. 체력이 없으니 굴러다니는 공만 보고 뛰어갔다오면 헥헥 거리고 있다. 주장님이 던지는 공은 내 가슴팍 언저리에 팍팍 꽂혀서 팔을 움직일 필요도 없었다. 그 때는 팍팍 꽂힌다고 생각한 공은 지금 생각해보면 초보자를 고려한 적정 스피드였던 것 같다. 첫 연습은 그렇게 굴러간 나의 마구를 주으러 가는 걸로 마무리가 되었다.






1회         야구를 하고 싶습니다
              1회 초 - #왜 하게 되었나

              1회 말 - #어떻게 하게 되었나


2회          야구하는 여자들

              2회 초 - #첫 연습 가는 길

              2회 말 - #어떤 여자들


3회          소금 먹고 운동하기

              3회 초 - #식염포도당님 영접

              3회 말 - #냉탕과 온탕


4회          드디어 (동네) 리그를 뜁니다

              4회 초 - #얼마면 돼?

              4회 말 - #선물하시게요


5회          첫 안타 치던 날

               5회 초 - #패배감

               5회 말 - #첫 안타


6회          전국대회 벤치 입문

                6회 초 - #벤치도 공사가 다 망합니다

                6회 말 - #기세는 벤치가 가져옵니다


7회          여자야구 국가대표

               7회 초 - #국가대표의 대가

               7회 말 - #그 많던 언니들은 어디로 갔을까


8회          운동장에 엠뷸런스 오던 날

               8회 초 - #운동장에 구급차 오던 날

               8회 말 - #솜사탕 같은 뜬 공


9회          우승하던 날

               9회 초 - #금메달

               9회 말 - #모자를 던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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