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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입문 Nov 17. 2019

[01] 1회 초 #왜 하게 되었나

1.  야구하고 싶습니다.

 1회 초 - #왜 하게 되었나



         여자가 야구를 해요?” 취미를 물어보는 사람에게서 으레 듣게 되는 첫마디이다. 그렇다. 여자가 야구를 한다. 전국에 한국 아마추어 야구팀 1만 개, 약 5만 명. 그 가운데서 한국 여자야구연맹 소속팀 40팀, 약 1,000여 명 남짓의 언니들이 이 땅에서 취미로 하고 있다. (2019년 기준, 41개 팀 755명)

 

        나도 처음부터 야구를 했던 것은 아니다. 사실 처음부터 야구를 봤던 것도 아니다. 야구를 보기 시작한 건 대학교 1학년 때부터였다. 상경한 지 얼마 안 되어 시작한 “서울 투어” 막상 혼자 가긴 심심했다. 이제 막 자유를 만끽하기 시작한 생기발랄한 여대생들을 데리고 야구장으로 가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여대생들은 가야 할 곳이 많다. 옷도 사야 하고, 시험도 쳐야 하고, 모임도 많은데 하필이면 야구라니! 당연한 일이지만 친구들은 쉽게 같이 가주지 않았다. 

 

        나는 실적에 목마른 영업사원 마냥 여대생들이 야구장을 가야 하는 이유를 개발했다. 고객의 유형을 분석하여 그들의 니즈에 걸맞은 이유들이다. 맛집을 사랑하는 이에게는 생맥주와 치킨으로, 잘생긴 이를 사랑하는 이에게는 이번 응원단장이 잘생겼다는 이유로, 파티를 좋아하는 이에게는 흥이 넘치는 응원석을 미끼로 친구들을 데리고 다녔다. 그렇게 야구를 매일 보다 보니 티켓비, 식비, 뒤풀이 술값으로 돈이 떨어져서, 라면으로 한 달을 때울 수밖에 없을 정도가 되었다. 아르바이트 비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이 TV로 야구 중계를 보게 되었다. 덕분에 매일 같이 볼 수는 있었다. 

 

            야구 중계가 없는 날 -매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놀랍게도 월요일은 쉰다. 목욕탕도 아니고- 에는 야구를 소재로 한 만화책을 봤다. 주로 아다치 미츠루의 “H2”, “터치”, “크로스 게임” 같은 스포츠와 청춘드라마의 중간쯤인 만화책들이었다. 청춘들이 어떻게 야구에 영혼을 불사르며 연애도 하는지 알 수 있는 만화였다. 하지만 이 만화로는 야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야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 만화는 “크게 휘두르며” 가 있는데 마치 등장인물들과 같은 팀이 돼서 야구를 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말도 못 하게 소심하고, 공을 못 던지는 투수 미하시가 팀원들과 하나가 되면서 한 발씩 앞으로 나아가는 이야기이다. 야구장을 관찰하던 입장에서, 만화로 보는 야구는 간접적이지만 ‘야구를 하는’ 또 다른 세계로 나를 이끌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선수들의 옆에 서서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 들었다. 야구장에서 선수들은 어떤 두뇌싸움을 하는지, 경기 기록으로 보이지 않는 비하인드 스토리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지에 대한 상상을 하게 해 주었다. 

 


         여기 한 투수가 공을 던지려 마운드에 올라왔다. 땀을 훔치며 송진가루를 집는다. 주자 만루, 2 스트라이크, 2 볼, 2 아웃. 선수의 공이 많이 흔들린다. 관중의 입장에서는 그 선수가 긴장해서 공이 흔들리는 이유가 명약관화하다. 만루 상황이기도 하고, 아웃카운트를 하나 남겨두고 있어서 긴장되고 있는 것이리라. 

 

               하지만 만약 내가 같은 팀 선수라면 어떨까? 관중 입장에선 알 수 없는 숨겨진 사실을 알고 있을 수도 있다. 얼마 전에 저 선수와 같이 밥 먹을 때, “2 군이었다 보니, 1군에서 하는 응원이나 관중 소리를 들으면 너무 긴장하게 된다.”라고 들었기에, 그것 때문인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게 다일까? 투수 본인 입장에서는 아까 공을 채다가  손톱이 들려서 아프기 때문에 컨트롤이 흔들리는 상황일 수도 있다. 같은 야구장에서 똑같은 게임을 보는 데도 응원석에서 볼 때,  벤치에서 앉아서 볼 때, 내야에서 볼 때가 이렇게나 다를 수 있다.  

            야구를 여러 각도-야구장 응원석, 벤치, TV 중계, 만화-로 보면 볼수록 들리는 소리도 점점 달라진다. 관중이었을 때는 그저 응원단의 엠프 소리나 전광판에서 울려 퍼지는 이벤트 소리들이 가장 크게 들렸다. 야구장 벤치에서 이런 소리들이 들린다. 선수들끼리 공을 던지고 받을 때 미트 글러브에서 나는 “뻐억! “ 소리. 선수들끼리 운동장에서 외치는 콜 소리. 공을 정말 잘 쳤을 때 나는 알루미늄 배트의 날카로운 “카앙!” 하는 소리 … 야구에 빠지고 나면 그 소리들을 더 가까이에서 들어 보고 싶다. 같은 선수로 이기고, 지면서, 달려가며 무언가 만들어 가고픈 마음이 커지고 있었다. 그게 내 야구의 시작이 되었다. 엄청난 프로선수를 운명처럼 만나 160km 직구를 던지며 재능을 발견하면서 시작한 게 아니라 아쉽긴 하나. 






1회         야구를 하고 싶습니다
              1회 초 - #왜 하게 되었나

              1회 말 - #어떻게 하게 되었나


2회          야구하는 여자들

              2회 초 - #첫 연습 가는 길

              2회 말 - #어떤 여자들


3회          소금 먹고 운동하기

              3회 초 - #식염포도당님 영접

              3회 말 - #냉탕과 온탕


4회          드디어 (동네) 리그를 뜁니다

              4회 초 - #얼마면 돼?

              4회 말 - #선물하시게요


5회          첫 안타 치던 날

               5회 초 - #패배감

               5회 말 - #첫 안타


6회          전국대회 벤치 입문

                6회 초 - #벤치도 공사가 다 망합니다

                6회 말 - #기세는 벤치가 가져옵니다


7회          여자야구 국가대표

               7회 초 - #국가대표의 대가

               7회 말 - #그 많던 언니들은 어디로 갔을까


8회          운동장에 엠뷸런스 오던 날

              8회 초 - #운동장에 구급차 오던 날

              8회 말 - #솜사탕 같은 뜬 공


9회          우승하던 날

               9회 초 - #금메달

               9회 말 - #모자를 던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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