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야구입문기
8회초 - #운동장에 구급차 오던 날
영락없는 가을 하늘이었다. 캐치볼은 이런 날씨가 딱이다. 선선한 바람이 불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란색이다. 공은 하얀색이기에 구름이 있는 날은 가끔 구름에 공이 숨는다. 불순물 하나 없이 하늘이 파란색이면, 선명하게 하얀색 공만 보인다. 그래서 이런 날씨가 야구하기 딱인 것이다. 서둘러 몸을 풀고 여느 때처럼 캐치볼 준비를 했다. 오늘 온 곳은 야구장이 두 면이다. 애석하게도 연습할 운동장은 하나 밖에 없는데 4팀이 한 번에 몸을 풀어야 한다. 운동장을 적당히 나눠서 쓰기로 했다.
우리 팀은 운동장 오른쪽 끄트머리에서 하기로 했다. 그 중에서도 나는 더 바깥쪽이다. 볼 컨트롤이 안 되니까, 바깥쪽으로 던진다. 공이 빠져도 뒤에 사람이 없으니 안심이다. 마음 놓고 던지니 아니나 다를까 공이 빠졌다. 데굴데굴 굴러가는 공을 쫓아 달려간다. 공이 운동장 끝에 있던 수풀까지 들어갔다. 수풀을 해치고 돌아오니 다른 언니들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방금 전까지 여기 있었다. 수풀에서 공을 찾느라 조금 헤매긴 했다. 하지만 시간이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당최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다. 캐치볼이 끝난 건가? 공 한 번밖에 안 빠졌는데? 캐치볼이 너무 빨리 끝난 거 아닌가? 내 기준으로는 공을 대여섯 번은 빠뜨리고 주워야 대충 끝이 난다. 방금 수풀에 한번 간 게 전부인데 내가 어지간히 캐치볼을 잘했거나 뭔가가 잘못된 거다. 짐을 놓아둔 벤치로 다들 돌아간 건가 싶어서 그 쪽을 쳐다봤다. 역시 아무도 없다. 연습하던 곳에도 없고, 벤치에도 없으면 다들 어디로 간 거지.
가만 보니 남자팀 근처가 북적북적하다. 운동장 한 가운데까지 가야 하지만, 누구라도 좋으니 물어봐야겠다. 남자팀이 있어야 할 자리인데 익숙한 유니폼이 보인다. 우리 팀 언니들이다. 왜 장난치냐고 소리를 빽 지를 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하다. 방금 전까지 신나게 떠들면서 결국은 수풀 너머로 간다며 등에 대고 깔깔대던 사람들이었는데, 아무 말이 없다. 여기 이 언니는 파들파들 떨며 어쩔 줄을 몰라하고, 저 언니는 눈이 퉁퉁 부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남자팀 선수들도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아니 연습하다 말고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다. 다른 언니와 눈이 마주쳤다. 눈으로 '무슨 일이야?'라고 물었다. 그 언니가 말은 못 하고 손가락으로 운동장 한 복판을 가리킨다.
그런데 운동장 한 복판에 언니가 쓰러져있었다.
소리를 지를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입을 막았다. 운동장에 피도 고여있다. 쓰러진 언니는 위험한 플레이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언니는 차분하고 주위를 둘러보며 조심하는 사람이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넌다. 운전도 방심을 하면 사고가 난다. 하지만 이 언니에게 방심이라는 단어는 없었다. 다른 언니라면 모를까, 이 언니는 방심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공을 정확하게 보기 위해 늘 안경을 끼고, 모든 동작을 조심스레 주변을 살펴보고 하는 사람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여기 운동장 가운데는 우리가 연습을 주로 하는 곳도 아니었다. 캐치볼은 두 명이서 공을 주고받는 연습이다. 한쪽이 공을 못 던지면, 공을 빠뜨리게 된다. 그래서 대체로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끼리 캐치볼을 한다.
하지만 두 명 중에 한 명- 조금이라도 더 못하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다. 공이 자주 빠지는 곳을 바깥으로, 운동장 바깥으로 한다. 즉, 운동장 안쪽으로 공을 주으러 간 언니는 '잘하는 사람' 중에 '안정적으로 공을 받는 사람'이다. 웬만해선 공이 안 빠진다. 나처럼 캐치볼 한번 할 때마다 으레 공을 빠뜨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날씨가 너무 맑고, 하늘이 파랬던 것이 화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언니 방향에서는 햇빛이 맞은 편에 있어서, 눈이 부셨나 보다. 언니가 오랜만에 공을 빠뜨렸다. 나랑 아주 비슷한 타이밍에 나와는 반대 방향으로 언니는 뛰어갔다. 그리고는 쓰러졌다. 파들 파들 떨던 언니는 같이 캐치볼을 하던 짝꿍이었다. 본인이 던진 공을 주으러 가던 언니를 미안한 마음으로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쓰러졌다고 한다. 아니, 공을 주으러 가다가 언니가 갑자기 왜 피를 흘리며 쓰러진단 말인가? 말을 하려다 멈췄다. 그제야 피에 물든 배트가 굴러다니는 게 보였다.
남자팀 선수 중에 한 명이 머리를 싸매고 털썩 앉아있다. 여자야구팀 선수가 쓰러져있는데 왜 남자팀 선수가 머리를 싸매고 앉아 있는 것인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처음에 말했듯 이 운동장은 4팀이 같이 쓰는 공동구역이었기 때문이다. 보통 한 팀이 운동장을 독차지해서 운동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쉽지 않은 일이다. '서울'에서 '집 구하기'만큼, '서울 여자야구팀'이 '운동장 구하기'는 쉽지 않다. 운동장도 적은데 '주말'에 전체 사회인 야구팀-남녀노소를 불문-이 야구장을 구한다고 생각해보라. 그래서 보통 경기가 있는 날은 몇 팀이 운동장 한 귀퉁이를 잡고 연습을 같이 한다.
범인은 저 남자분이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분의 "빠던"이었다."빠던"은 "빠따 던지기"의 줄임말이다. 빠따는 야구 도구 중 '배트'의 속어다. '배트 던지기'라는 것인데 영어로는 배트 플립 'Bat flip'이라고 한다. 안타를 치고 난 다음에 1루로 뛰어갈 때 배트를 던져 놓고 뛰어간다. 한국에서는 타자의 호쾌한 표현으로 받아들여서 프로선수들이 화려한 배트 던지기를 하면서 1루로 뛰어간다. 타자들만의 시그니처 마크처럼 보여서 사회인 선수들도 곧 잘 따라 한다. 그 배트던지기를 따라 하다 사고가 난 것이다. 신이 나서 세게 던지려다, 손에서 슉 하고 빠진 것이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프로가 ‘빠던’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을지를. 안전하고 호쾌하게 ‘빠던’을 하는 건 그만큼 그들이 피나는 연습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남자 힘으로 풀스윙, 세게 던지려고 작정을 한 배트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레이저처럼 날아갔다. 그렇게 언니의 머리를 치고 말았다. 교통사고로 치면 미친 듯이 신나게 과속하던 스포츠 차가 모범택시의 옆구리를 사정없이 박아버린 사고와 비슷할 것 같다. 언니는 소리 한번 지르지 못하고 ‘퍽!’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렇게 언니가 쓰러지고, 운동장에 엠뷸런스가 오기를 기다렸다. 1분이 10분처럼 느껴졌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운동장에 가득하고,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언니가 실려서 갔다. 그렇게 간 이후에도, 피가 덩그러니 남은 운동장 한 복판을 우리는 떠나지 못했다. 멍하게, 불안하게 운동장을 거닐다가 어영부영 마무리 체조를 하고 몇몇은 언니를 쫓아 병원으로 가고 몇몇은 찜찜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다행히 언니의 사고는 더 큰 일로 번지지 않았다. 얼굴이 함몰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큰 일이었지만, 생명은 문제가 없었다고 들었다. 언니는 그 이후 겨울을 지나 봄이 되고 나서야 얼굴을 종종 볼 수 있게 되었다. 얼굴에 멍이 들어 볼 때마다 너무 안쓰러웠다.
여자들은 상대적으로 다치기도 쉽고, 운동에도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서 배울 때 세세한 이론적인 부분들도 같이 많이 배운다. 다치기 쉽기 때문에 남들이 다치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해서 늘 주의하는 것이 몸에 배어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우리 팀은 그랬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가 다치는 건 근육이 당기거나, 넘어져서 피가 나는 정도였다. 늘 주의했기 때문에 큰 사고가 난 적은 없었다. 야구를 한다고 하면 보험도 들기 쉽지 않다. 그렇게 보험을 갱신하다 보면 이 운동이 위험한 한가 보다 하면서 막연히 생각하곤 했다. 그런 생각이 처음에 몸에 와 닿았던 순간이 운동장에서 '사이렌 소리'를 들었던 그 날이었다. 처음으로 이 운동이 '익스트림 스포츠' 구나 라는걸 온몸으로 느꼈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크게 다칠 수도 있다는 걸 빨간색 엠뷸런스 불과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알려줬다.
하지만 아직도 그 날을 생각하면 무책임한 남자팀에게 화가 난다. 힘이 좋고, 힘이 남아돌기에 장난처럼 운동을 했다. 어떻게 던지면 멋있을지 낄낄거리면서 운동하느라 남의 안전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렇게 장난으로 던진 배트에 언니가 쓰러졌다. 운동을 하면서 '주변을 본다.'는 기본적인 수칙도 지키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이 ‘익스트림 스포츠’를 해도 되는 걸까?
심한 표현일 수 있지만, 코로나19의 시작이었던 '신천지'의 행태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그들 입장에서는 이놈의 '코로나 바이러스'는 치료하지 않고도 마구 퍼트리고도 괜찮았을 것이다. 신이 그들을 지킬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 덕에 시범경기는 모조리 취소됐고, 봄인데도 밖을 못 나갔다. 많은 이들이 불안에 떨었다. 그나마 이 정도는 새발의 피다. 본인의 삶에 중요한 날인 결혼식을 취소하는 이들도, 아끼고 아끼던 본인의 가게를 닫아야 하는 이들도 있다. 아픈 사람들이 많이 늘었고, 누군가는 죽기도 했다.
왜 나서서 병을 키우는 이들에게 주의하라고 하지 않는가? 왜 운동장 한 복판에서, 어느 방향으로라도 날아갈 수 있는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배트를 던지도록 놔뒀는가? 던진 사람에게, 병을 키우는 사람에게 주의하라고 해야 한다. 늘 조심하던 언니에게 “갑자기 날아오는 배트마저 조심해.”라고 말하는 건 너무 한 거 아닌가. 그런 사람들을 자제시키기 어려우니까, 쉬운 사람을 골라 조정한다. 병을 키우는 그들은 힘세고, 돈이 많다. 이런 사람들은 말을 듣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문제를 계속해서 일으킨다. 이제는 컨트롤되지 않는 진짜 문제를 고치자고 했으면 좋겠다.
그나마 나 같은 사람들은 컨트롤하기 쉽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괜찮아질 거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말을 잘 듣는다. 그래서 마스크도 끼고, 손도 씻고, '사회적으로 거리두기'를 할 것이다. 그 모든 말을 듣더라도 나는 방망이에 맞을지도 모른다. 왜냐면 정작 고쳐야 할 사람들을 고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그 날 언니가 쓰러진 원인은 너무나 가벼운 마음으로 야구를 했던 사람들 때문이 아닌가? 언니는 결국 완치됐지만, 함몰된 얼굴을 고치는 시간은 한참이나 걸렸다. 얼굴에 든 멍이 쉽게 빠지지 않았다. 언니는 왜 그렇게 아파해야 했던 것인가? 대체 주의해야 할 사람들은 주의하지 않고, 주의하지도 못하던 사람들은 느닷없이 방망이에 맞는 일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안전을 생각해야 할 사람들은 돈이 많고, 배를 사고, 짐을 싣는 사람들이었다. 다치고 쓰러진 사람들은 주의 깊게 하루를 소중하게 살던 소시민들이었다. 그렇다. 나는 공을 주으러 갈 뿐이다. 만약 그날 내가 다른 방향으로 뛰어갔다면 쓰러진 사람은 아마 나였을 것이다. 제발 장난으로 돌을 던지지 말라. 맞는 개구리에겐 생명과 직결된 문제다.
1회 야구를 하고 싶습니다
1회 초 - #왜 하게 되었나
2회 야구하는 여자들
3회 소금 먹고 운동하기
4회 드디어 (동네) 리그를 뜁니다
5회 첫 안타 치던 날
6회 전국대회 벤치 입문
7회 여자야구 국가대표
8회 운동장에 엠뷸런스 오던 날
9회 우승하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