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얼빠가 되어 15년째 얼빠 소리를 듣고 있는가 #야구잡문집
그건 놀라운 일이었다. 그전까지는 창문을 열면 옆집이 보일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창문을 열면 "창문"이기에 하늘이 보이는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창문을 열자, 동그랗게 눈을 뜬 아주머니와 눈을 마주치고 말았다. 나는 놀라서 창문을 황급히 닫았다. 그게 서울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었다. 창문을 열어도 하늘은 없다.
흔한 이야기이다. 어떻게 서울에 있는 대학교를 겨우 오게 되었다. 바리바리 모든 짐을 싸들고 서울에 올라왔다. 주변 건물들은 높았고, 하숙집은 답답했다. 건물끼리 다닥다닥 붙어있어서 창문을 열면 하늘이 보이는 게 아니라 옆 건물이 보였다. 그늘은 추웠고, 옆 건물을 보는 건 무서웠다. 창문을 열어봐야 먼지 밖에 들어오지 않았다.
여간 공기가 답답한 날이 아니면 창문을 닫고 살았다.
서울에 올라오기 전까지 푸른 초원 아래에서 산 것은 아니었다. 살았던 그곳도 나름 도시였다. 하지만 부모님과 함께 살 던 때는 낮에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었고, 밤엔 별은 못 봐도 달은 볼 수 있었다. 그게 사치였다는 것을 서울에 살면서 처음 느끼게 됐다. 그렇게 포기하게 되는 것들이 하나씩 늘어갔다. 생각해보면 그 첫 번째가 하늘이었다.
갑갑하던 어느 날이었다.
"야, 야구장 가자."
"야구?"
"그래 야구."
뜬금없이 가게 된 야구장은 크고 음산했다. 음산한 회색 건물이 나를 압도하는 것 같았다. 건물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줄담배를 피는 아저씨들도 음산함을 올리는데 한 몫하고 있었다. 담배 피우다 침을 뱉는 모습들 덕분에 썩 깨끗해 보이지는 않는다. 치킨을 든 아저씨들이 와서 치킨 만원을 외친다. 누군가는 맥주병을 들고 돌아다닌다. 야구장, 막상 와 보니 정신도 없거니와 번잡스럽다.
멍하게 매표소 앞에 줄을 서있었는데 웬 할아버지가 다가왔다. 귀에 대고 "1루 206."이라고 수군거린다. 이 때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할아버지가 나에게 왜 귓속말을 하고 사라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들의 정체는 암표상이다.) 그땐 흔한 치한인 줄 알았다. 여대 앞엔 치한이 많았다. '그중에 하나 인가보다.' 하고 넘기려 애썼다. 애석하게도 쌉싸름한 불쾌한 뒷 맛이 남아버렸다. 여대생 둘이서 음산한 건물로 들어가기가 더 머쓱해지고 만 것이다.
야구장은 왠지 나의 영역이 아닌 것만 같았다. '그냥 다음에 올까?'라는 말이 목천장까지 올라왔다. '그래도 이왕 왔는데...'라는 생각을 하며 그 말을 꿀꺽 삼켰다. 야구만화를 보다가 뜬금없이 야구장을 가자고 한 건 다름 아닌 나였다. 후퇴란 있을 수 없었다. 현장에서 급하게 구매한 티켓은 두산 베어스 응원단 바로 앞자리였다. 그땐 그 티켓이 그렇게 나를 미치게 만들 줄 몰랐다.
https://www.youtube.com/watch?v=1ef_D9si-9I
내가 우연히 구한 그곳은 의외의 장소였다. 노래방 마냥 목청껏 소리 지를 수 있고, 다 같이 화도 낼 수 있고, 신나게 먹을 수도 있고 심지어 춤도 출 수 있는 곳이었다. 야구를 하나도 몰라서 지겨울까 걱정했다. 괜한 걱정이었다. 지겹기는커녕 먹고 웃고 소리 지르다 보니 벌써 8회가 넘어가고 있었다. 그뿐인가 응원단장은 멋있었고, 치어리더 언니들은 예뻤다.
야구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이 모두 다 함께 일어서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조용하게 박수소리만 울려 퍼졌다. 그 광경은 어쩐지 교회나 성당보다 더 경건하고 멋있어 보였다. 너무 궁금한 나머지 전혀 면식도 없는 옆 사람에게 물어보고 말았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그날은 다쳐서 경기를 나오지 못한 선수가 오랜만에 잔디를 밟는 날이라고 했다. 그렇게 경기장의 모든 관객이 일어서서 한 선수를 맞았다.
뉘엿뉘엿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눈부신 햇빛이 걷히자 자연스럽게 시선이 하늘로 갔다. 그렇다- 하늘이 넓다는 건 이럴 때 쓰는 말이다. 하늘이 둥글고 예뻤다. 서울에 도착해서 본 그 어느 하늘보다 넓었다. 하늘은 고향이나 이곳이나 똑같이 넓었다.
그렇게 "첫 야구"는 나에게 잠시나마 하늘과 잔디를 그리고 감동을 주었다. 그게 내가 이 두산 베어스를 좋아하게 된 첫 야구이자 첫 경기였다. 비록 나는 그날부터 "여자"이고, "야구"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얼빠"라는 소리를 듣고 다니게 됐다. - 스포츠는 모르는 주제에 얼굴은 빠순이 마냥 좋아한다는 뜻인 걸로 느낀다. - 뭐 아무렴 어떠리- 그래도 좋았다.
이제는 15년째 야구를 좋아하고 있다. 아직도 야구를 좋아한다고 하면 남자들 눈에 "얼빠"라는 두 글자가 번개처럼 지나간다. 그걸 알면서도 내심 모른 척한다. 사실 "얼빠"가 아니라고 반박하기도 귀찮다. 그게 그저 고정관념이라면 대화의 실마리가 있다. 이야기하다 보면, 서로 야구를 많이 알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절로 서로를 치켜세우다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문제는'내가 더 많이 안다.'는 자랑으로 '상대를 눌러버리고 싶은 고약한 마음'이 섞여 있는 경우다. 무슨 말을 해도 '당신이 더 많이 알고 있다. 네가 이겼다.'라고 할 때까지 대화(라기보다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야구 정보의 일방적인 송신)를 멈추지 않는다. 듣기가 싫어서 '당신이 더 많이 안다.'라고 맞장구를 쳐준다. 기다렸다는 듯이 그들은 으쓱하며 '역시 넌 얼빠지?'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그렇다. 나는 그 대답을 하기 이제 귀찮아졌다. 그런 표현을 온몸으로 하는 남자들에게 굳이 내 소중한 '야구'를 꺼내고 싶지 않다. 10여 년간 시도해봤지만 대화가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내 앞에서 '여자이고 얼굴만 보고 야구를 좋아하는 너보다 내가 이렇게 많이 안다.'라고 홍보하기 바쁜 어떤 남자들의 설명을 듣고 있는다.
그 대화 한 중간에 "오빠, 얘 야구했잖아." 하고 누가 거들기라도 하면 그들은 조용하게 술잔을 기울인다. 그걸로는 부족했는지, 배팅센터를 가서 굳이 내기를 하자고 한다. 그들을 무참하게 꺾고 나면 신나는 것도 잠시, 왠지 씁쓸하다. 이런 걸로 유치하게 이겨주려고 그 더운 날에 야구를 한 건 아니었다. 야구를 좋아해서 야구를 하고, 15년째 팬을 해도 '야구를 좋아하시는군요.'라는 작은 존중을 받지 못할 때, 그 흔한 '팬' 소리를 못 들을 때는 열이 받는다. 그래서 이런 걸로 유치하게 이긴다.
그저 갑갑했고, 어딘가 멀리 가고 싶었다. 사실은 멀리 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탁 트인 곳을 가고 싶었던 것 같다. 외국엔 그런 탁 트인 곳이 여기저기 한강의 편의점 수만큼이나 많았다. 그래서 갑갑하다고 느끼는 때마다 어딘가 멀리 가고 싶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멀리 가지 못하고, 가까운 야구장을 갔다. 야구장은 가까운 곳이었지만, 나를 어딘가 탁 트인 곳으로 보내주었다. 15년째 이 친구는 꾸준하다. 지금도 야구는 나를 어딘가 탁 트인 곳으로 보내준다. 야구를 할 때는 더 먼 곳으로, 더 탁 트인 곳 보내준다. 날이 따듯해지면 캐치볼을 하러 가야겠다. 맥주도 마셔야 하고, 치킨도 먹어야 한다. 응원단장님도 봐야겠고, 치어리더 언니들도 봐야겠다. 어쨌건 잠실구장에 가야겠다.
p.s : 참고로 이놈의 얼빠 구단은 작년에도 우승을 해서 올해는 v7을 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