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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단하는 킴제이 Jun 24. 2022

프리워커 번아웃 방지위원회

내 손안에 저글링 공이 몇개일까?


목적성을 잃고 의미 없이 살 때 내게 신호가 온다.

매운 음식들을 먹는다거나 술을 마신다거나 운동을 가기가 싫어진다. 의미 없는 콘텐츠에 시간을 보내다가 한심해진 모습에 방 정리도 귀찮아진다. 미국에서 지내보면서 깨달은 습관은 한국에서 아무 이유 없이 술을 가까이했다는 것이다. 주말에 친구를 만나면 맥주 한 잔 열받았다고 들이키고 즐거우면 신난다고 부어재껴 내가 왜 즐겁고 슬픈지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맥주 한 잔 마음에 일단 찌끄려두고 대 낮의 그 열기부터 피하려고 했다. 그럼 당연히 또 스멀스멀 마음이 동요되어 흔들리면 또 습관처럼 시원하게 한 잔 해야겠다 하고 생각하는 거다. 미국에서는 혼자서 맥주를 일주일에 한잔 이상 마신다고 하면 초기 알콜 중독 증상의 하나로 볼 수 있다고 제리에게 들었다. 한국에서 일주일에 2번을 줄을 마시는 나를 제리는 걱정했는데, 미국에서 살아보니 내가 얼마다 술 한잔에 모른척하며 살았나 싶다. 그때부터 탄산수를 즐겨 마시고 운동을 시작했더니 운동할 때는 마음이 힘든 것보다 몸이 괴로운 게 더 낫다 싶기도 하고 생각정리도 되고 좋았다.



그래프가 흔들릴 때는 정신과 체력 분산이 심했다

마음과 몸을 내팽개쳤을 때

01

회사 점심시간엔 병원에 달려가 링겔을 맞으며 이유 없이 눈물을 흘리곤 했다. 이건 아니다라고 알고 있었지만 주변에서 버텨봐. 왜 유난이야 라는 말에 스스로 지하로 땅을 파고 들어가 웅크리고 있었다. 스스로를 구원하지 못해 과호흡 증상이 왔으며 머리가 너무 아프고 숨을 잘 쉬기 위해서 노력했었던 기억이 있다. 일어나면 두통을 먼저 느끼며 헛구엿질을 했고 석촌역에서 서울역까지 택시를 타고 갔다. 몇 번 나를 태웠던 아저씨가 정기권을 끊어서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도 했다. 손발 저린 증상이 나타났을 때는 온몸이 마비가 되는 것 같아 무서웠는데 초기 목디스크 증상 중 하나라며 주사를 맞았더니 금방 가라앉기는 했다.


회사에 들어가면서 갑자기 횡단보도를 천천히 걸었는데, 속으로 교통사고가 나서 어쩔 수 없이 쉬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옆 건물 CJ였나 누가 떨어져 죽었다고 동기 방에서 난리가 났다. 그래도 우린 출근했다. 오늘은 내게 경미한 교통사고가 나길 바라며.

-

세계여행 중인 제리를 처음 만나게 된 날. 한국을 구경시켜준다며 호프집에 가놓고 나도 모르게 이 모든 이야기를 쏟아냈다. 몇 개월만 버티면 평가 S로 성과급도 받고 설이면 보너스도 받는다고 했다. 제리가 그 돈이 지금 필요한 돈이야?라고 물었고 대답을 할 수 없었던 나는, 앞으로도 그 성과급 몇 천만 원을 받고 내년을 살면 정말 차에 치일 수 있다는 두려움에 내가 파 놓은 지하 땅굴에서 한 발 나올 수 있었다.


02

친구들을 만나는 게 힘들었다. 하루하루 생각이 없으니 연락이 오면 그래 만나 해놓고 약속 일자가 다가오면 괴로웠다. 월금 치여서 몸도 피곤했고 만나서 전시장을 가거나 맛집을 갈 흥미가 전혀 나지 않았다. 잘 모른 채로 나가버린 날은 보통 남들처럼 신나게 놀지 못하는 내가 어색하기도 했고 어쩌다 말주머니가 푹 찔리면 지금 일이 얼마나 힘든지 구토하며 쏟아냈다. 고장 난 뻐꾸기시계다. 눈을 벌게 가지고 다녔으며 왜 마음을 다독이지 못했던 모든 성난 언어들이 몸 밖으로 튀어나왔다. 


동기들을 만나면 편했다. 같이 그저 고장 나서 일끝 나며 만나 한 잔 하고 주말 낮에도 만나 놀다가 술을 마시고 다음 날 출근했다. 매일 배가 아프고 괴롭게 숨 쉬는 누군가가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위로를 받으려고 마음을 비볐다. 신경안정제를 먹으니 좀 나아졌다는 이야기에 방법이 있구나 생각하기도 했다. 같은 환자니까 그 잡음에 동요되었던 거지 우리가. 


친구도 많이 잃었다. 나는 야근이라며 약속에 못 나갔으며 피곤한 날에는 안 되겠다며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도 했으며 서운해하는 친구에겐 내가 더 서운해했다.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관계들에 화가 났다. 재현 오빠가 하루는 정은아 너 다른 친구들한테도 그러냐? 나한테는 그럴 수 있는데 딴 사람한테는 하지마 너 욕먹어. 그 말에 정신 차려보니 내 몸에 독소가 가득하니 생각과 말에도 썩은 내가 났다. 


03 

밤마다 매운 음식을 먹었다. 떡볶이 떡 10개 어묵 2장에 고춧가루를 팍팍 넣어 밤 11시가 되면 수저로 퍼먹었다. 훌쩍이면서 먹으면 정신이 없고 물을 허겁지겁 마시며 삼켜댔다. 애승이를 만나면 매운 낚지를 먹으러 갔다. 짜고 맵게 먹어버리면 정신이 홀려서 그날 또 힘든 건 몸으로 잊게 된다. 운동은 하지 않았다. 왜인지 그때는 그렇게 먹어도 살이 찌진 않았기도 하고  (아니다. 나는 구토 증상이 심했으니까 그랬을 수도?) 운동을 하러 갈 시간이 없었다. 나는 술을 마셔야 했고 주말에는 잠으로 잊으려 했다. 면역력 이상이 생겼을 때는 항생제를 받아서 먹었고 급한 대로 출근하며 들린 병원에서 회사 앞에서 출장 갔다가 본 병원에서 처방받다 보니 내가 무슨 약을 먹는지도 잘 몰랐고 왜인지 예전처럼  바로 몸이 나아지지 않는 것 같았다.


항생제를 오래 먹는 게 몸에 안 좋다는 걸 몰랐으며 남발하며 여기저기 병원에 가버린 바람에 결국 내 몸이 마지막 끈을 놓아 대책 없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내과, 안과, 산부인과를 하루 걸러 가야 했다. 5년을 고생했으며 삶의 질이 낮아져 나는 몹시나 예민해 제리도 항상 긴장한 채로 살았다. 

그럼 난 또 매운 음식을 들이킬 뿐이었다. 




쓰고 나니까 아찔하다. 28살과 32살에 이러한 패턴들이 나를 찾아왔다. 회사를 다닌 지 2년 차면 저 증상들이 천천히 밀려들어왔다. 이제는 나를 위해 일해 보면서 살아가는 지금. 신나고 건강하게 일을 하다가 손 저림 현상에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고, 점점 만나자는 약속에 너무나도 큰 부담을 느낀다. 10개월 동안 했던 운동을 잠시 쉬었다가 하자고 해놓곤 3개월째 쉬고 있다. 이전에는 회사 탓을 하면 되었지만 이제는 나다. 내가 이유다. 나를 비난할 수 없다. 잘 대비해서 이번에 밀려오는 시간에 대응을 해야겠다. 라이프 코칭 시즌 2를 시작했다.  시즌 1은 작년 11월부터 1월까지 진행하며 내가 뭘 원하는 것인가 나를 알아보는 시간이었다. 이번 주 수요일은 시즌 2를 시작하며 노마드 워커, 프리 워커로 신나게 나에게 달려들어오는 공을 기회라고 붙잡다가 두 팔로 다 챙길 수가 없어서 저글링을 하고 있는 나를 다시 관찰해보고자 한다.


이 모든 계약과 프로젝트들이 재미나지만 저글링 하는 날 보며 멋있다며 손뼉 쳐주고 치켜세워주고 있지만, 문제는 내가 지금 휘두르고 있는 공들이 몇 개인지 모르겠다. 10개의 공으로 저글링을 하는지 7개인지 그저 눈앞에 떨어지는 다음 공을 잡기 위해 지금 손에 있는 공을 냅다 공중에 던질 뿐이다. 슬쩍 보니까 땅에 떨어진 공들도 있는데 쉴 새 없이 날아오는 것들을 잡느라 허리 숙여 챙길 수가 없다.


지금 내가 맞닥뜨린 나의 문제는 어떤 공을 가져갈 것인지 버릴 것인지 모른다는 것. 지금은 음 그래 7개인지 10개인지 모를 공들로 쇼를 해볼 수는 있겠어. 근데 이렇게는 2개월 이상 가지 못할 거라는 걸 안다. 멋있는 나만의 쇼를 하고 싶다. 날아오는 게 돌인지 공인지 배추인지 감자 인지도 모른 채 휘둘리지 않고 내 손에 촥감기는 기회의 공들로 놀다가 쉬고 싶을 때는 두 손 모아 공을 감싸도 될 만큼 해야 내가 지금 어느 길에서 쇼를 하고 있는지 다음 서커스는 어딜 가고 싶은지 저 멀리 볼 수가 있다. 


처절히 도 지질하게 구석으로 몰아 힘들어해 봤기에 지금은 절대로 그럴 수가 없다. 이 귀한 나를 내버려 둘 수가 없다. 다시 매주 수요일 라이프 코칭을 받기로 했고 더 오랫동안 사랑하는 일로 살 수 있도록 정신 차리고 나를 돌볼 예정이다. 번아웃 방지위원회가 떴다. 킴제이 잘하고 있고 지금 모든 게 귀찮아지고 피곤한 것도 너가 또 큰 일을 치렀기 때문이야. 그리고 이번엔 이전처럼 되지 않아. 너는 너가 무엇을 해야 할지 잘 알고 있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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