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단하는 킴제이 Jul 02. 2022

나는 오늘 죽는다 02

I DO ME 기필코 나를 하는 하루를 살아야 해 


1편

https://brunch.co.kr/@kimikimj/45



한국으로 가지 못한다는 생각에 내가 온전히 쉴 수 있는 곳이 없다는 생각에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마케팅 수업을 뉴욕대학교에서 30만 원이면 들어볼 수 있다고 해서 그것도 해보고 싶은데 (영어를 못하는데 마케팅 수업은 들을 거라고 생각했음) 해보고 싶은 게 많은데 사고로 못 한다는 생각에 붙들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엄마 엉엉엉 나 그냥 한국 가고 싶어. 더 못 할거 같아 근데 못가"

"어쩔 수 없지 그냥 한국에 와"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게 있는데 못하겠다니까... 엉엉..?"


"배라도 타야지. 하고 싶은었던거 안 하고 싶으면 와 그냥"


답변은 간단하고 차가웠다. 나는 무한한 어이구 내 새끼 어화둥둥 아프면 하지 말아야지 위로받고 싶었나 안 하고 싶은 일이면 안 해야지라고 답하는 엄마의 냉수에 정신이 번쩍 들고 서운하다. 당장 곧 떠나야 하니 필라델피아에서 뉴욕으로 가는 버스를 알아보았다. 어학연수 3개월 프로그램이 끝났으니 기숙사에서 지낼 수도 없었다. 길 건너 편의점에서 총기사건도 있었고 지하철도 있고 집의 옵션들이 다양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민가방에 모든 짐을 싸고 뉴욕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크래이그리스트( craigslist.org)에서 집을 구할 수 있다고는 들었지만 엄두도 안 나고 정보를 알아본다는 자체가 일이었다. 일단 브루클린에 있는 호스텔로 갔다. 이틀 정도 집 알아보고 가야지 하고 15인 다인실에 들어갔지만 결국 한 달 정도를 지냈어야 했다. 무조건 많이 자고 엄마가 보내줬던 남은 한약을 먹고 공용시설에서 집 좀 알아보고 다시 잤다. 그러다가 케빈을 (이름이 생각 안 나서 케빈) 만나게 되었는데 캐나다서 살고 있는 의대생이었다. 다음날에도 복도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내 사고를 이야기하니 의료기록이 있냐고 물어서 사진도 보여줬다. 케빈도 출혈이 멈췄으면 다행이라며 넘어져서 피부에 멍이 들고 피가 났다가 괜찮아지는 것처럼 뇌도 똑같다며 다른 부위 통증들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 


그래 난 괜찮아질 거야!


(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는데 한국으로 가고 싶다는 전화 해 그래 거기서 뭐 하기 싫으면 그냥 한국 오라고 했던 엄마도 가슴을 움켜쥐고 힘들게 뱉은 말이었다. 사고를 당해 한국에 돌아왔다는 사실로 나는 머리가 아픈 사람, 사고가 난 사람으로 스스로 정의하고 하고 싶은 일 앞에서 피해자가 될 수 있으니 한 말이라고 했다. 날 저 멀리서 지켜보며 울타리에 망치질을 하는 엄마 덕에 밝고 강한 걸음을 할 수 있다.)






크래이그리스트에서 하우스 메이트를 찾는 사람들에게 이메일을 매일 보냈고 답이 왔다. Golzar(골져)라는 친구였고 바로 약속을 잡아 그린포인트 주변에 있는 3층 집을 찾아갔다. 차 한잔을 같이 하며 집 구경을 하는데 검붉은 벽에 아프리카에서 온 듯한 장신구가 멋스럽다. 유난히 대화할 때 내 눈을 깊게 쳐다보던 골져는 다음 날 계약하자며 연락이 왔고 나중에서야 친구가 되어 골져가 해준 이야기가 글쎄!

'미국에서 집 계약이 쉽지 않아 호스텔에서 지내고 있다' 이메일 내용에 계약 (Contract)을  Contraction (수축, 진통)이라고 쓰는 바람에  내가 임신 중이라고 착각했었다고 했다. 자궁수축에 진통까지 있는 아시아 여자애를 호스텔에 둘 수 없다며 이전에 계약 문의를 했던 사람에게는 양해를 구하고 나와 함께 살게 되었다. 


나는 이전 병원에서 Squeeze my hand 에피소드를 알려주며 우리는 청소를 하다가도 Squeeze 하며 손을 흔들어댔다. 내가 첫 만남과 집의 냄새, 눈빛 마셨던 차의 온도를 다 기억하는 건 내게 집의 한편을 내어준 구원자이기도 하고 내 삶의 큰 영향을 끼친 인플루언서이기 때문이다.

내 생일날 브루클린의 모델이 되자며 한껏 뽐내 입고 집 앞에서 찰칵

 논문을 쓰다가 잠깐 쉬러 나온 골져와 거실에서 차 한잔을 마셨다. 

"킴제이, 난 교수가 되고 싶어."

"교수가 되는 거 어렵지 않아? 왜 되고 싶은데?" 

(.. 교수가 되려면 돈도 많이 써야 한다고 들었지만 명예 있는 직업이지)

"응 난 새로운 아이디어를 사람들과 논의하는 걸 좋아해. 나의 지식을 매년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과 신선하게 교류하면 행복할 것 같아"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직업인 명사 형태로만 생각하고 동사나 형용사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처음으로 근본적으로 하고 싶은, 행복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녀는 연기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운동도 했다. 버자이나라는 공연에 오른 골져가 신음소리를 엄청나게 내며 여성의 힘에 대해 독백으로 연기하던 그 강렬함은 잊을 수가 없다. 그림도 그녀에게는 잘 그리냐 아니냐 상관없었다. 사람들을 모아 그리고 싶은 주제를 나누는 걸 좋아했고 마음 가는 대로 붓질을 휘날리고 전시회도 오픈했다. 운동도 본인이 리더가 되어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주고 운동을 알려주었다. 경험과 지식이 있어서 한다고? 아니 자기가 하고 싶으니까 하는 거다. 


골자는 자신의 경험을 그 사람에 맞춰 알려주고 함께 해내면서 에너지를 증폭시키는 일이 좋다고 했다. 좋아하는 에너지를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는 명랑함이 그녀의 멋진 무기다. 몇 년 전에는 중국으로 가서 영어 선생님 일을 했고 아프리카에 가서는 아프리카 여성의 문제를 다루는 다큐멘터리를 찍기도 했다. 건강한 스무디를 찾아 마시는 걸 즐겼고 누구보다 자기에게 어울리는 옷을 잘 골라 입었다. 논문을 인쇄한 날 아빠, 엄마, 오빠, 동네 친구들 그리고 헬스장 PT 선생님까지 불러 파티를 했다. 


골져의 졸업파티. 그녀의 에너지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함께 춤추며 놀았다. 술 안 마시고 미칠 수 있다는 걸 알려준 골져


뉴욕에서 지내며 통증도 점점 무뎌져 갔다. 머리가 빠진 곳은 맨들맨들 만지는 재미가 있었고 우려했던 후유증은 없었다. 쥴리아나와 기도하며 들어갔던 검사에서는 출혈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마지막 진단을 받았다. 내가 죽으면 어쩌지. 걷지 못하면 어쩌지. 갈 곳이 없는 환자인데 길 가다 쓰러져서 죽으면 어쩌지. 계약하러 간 집에 이상한 사람이 있으며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했던 모든 나날에서 나는 죽음을 배우고 가까이 두고 관찰할 수 있었다.


두 발로 걷고 우는 나의 눈물을 닦아주고 내 배를 쥐어 잡고 웃어재낄 날들이 유한하지 않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이 마지막 밤의 흔적이 될 수도 있고 갑자기 집이 무너져 사망자 1로 서류에 적혀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나는 언제든 죽으니 오늘 지금 당장 기필코 행복해야 한다. 


골져는 활기찼고 감정에 솔직했다 잘 울고 웃었으며 그 에너지가 빛나 사람들이 모였다. 언제든 죽을 수 있으니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배워가는 내게 엄청난 싹 하나를 심어주었다. 힘겹게 골져 집을 찾아 들어간 것이 내 운명이 책에 정해진 챕터가 아니었을까. 난감한 상황에 처할 땐 골저를 생각한다. 그녀라면 솔직하게 다 말하고 속상해하다가 웃으며 하고 싶은 일이니까 일단 해보지 하며 제일 좋아하는 신발 신고 나가겠지.


골저 고마워

네 덕분에 나도 나를 위해 살아. 우린 매일 죽는다 생각하고 하루를 살자고 했잖아.

나 정말 나를 하며 살게

You do you, I will do me. Love ya!









작가의 이전글 나는 오늘 죽는다 0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