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로 시작해 입사로 끝나는 "타임머신 직장생활" 이야기
퇴사 D-90일 전 이야기
신입사원 교육
오늘은 상반기 공채 신입사원을 교육하는 날이다. 오전에 일찍 잡혀있는 보고를 빨리 마치고 부지런히 신입사원이 있는 회의실로 가고 있다. 인사팀에서 전해 듣길 이들은 몇십 대일의 경쟁률을 뚫고 수 차례 테스트와 교육을 거쳐 선발된 인재들이라고 했다. 내가 만약 지금 이 시대에 이들과 경쟁한다면 과연 이 자리에 함께 할 수 있을까?라고 상상을 잠시 해 본다.... <생각 중>... 아무리 생각해도 그 들보다 조금 빨리 태어난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신입사원이라고 하고 싶을까?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갔다. 신입사원과 눈이 마주쳤다. 거의 똑같은 스타일의 옷(흰색 셔츠 또는 흰색 블라우스에 검은색 쟈켓과 바지)을 입은 8명의 신입사원이 일동 기립하여 "선배님 안녕하십니까?"라고 합창하며 90도 인사를 했다. 취업 커뮤니티에 나와 있는지? 아니면, 스스로 컨셉을 잡았는지 모르겠지만 열심히 하고자 하는 열정만큼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인사를 마친 후 서로 부끄러워하는 모습에서 그들인들 이렇게 하고 싶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내일부터는 편한 복장으로 가볍게 인사하자고 부탁했다.
"자기소개"에 그들은 있는데, 나는 없다
신입사원 교육은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으로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을 표현하는 것에 대해 최고의 전문가이자 시인이자 작가였다
저는 "삼각형"처럼 안정적인 사람입니다
저는 "별"처럼 개성이 넘치는 사람입니다
저는 "빨간색'처럼 열정이 가득한 사람입니다
저는 "파란색"처럼 신뢰가 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해"처럼 밝은 사람입니다
저는 "달"처럼 조용한 사람입니다
저는 "바람"처럼 역동적인 사람입니다
저는 "음악"처럼 즐거운 사람입니다
한 명씩 자기소개가 끝날 때마다 우리는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 어색함이 사라지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될 즈음 마지막으로 나를 소개할 시간이 왔다. 나는 자신 있게 말했다.
저는 OO팀에서 OO을 담당하는 OO입니다
나도 박수는 받았다. 짝! 짝! 짝!
그런데 내 소개를 듣고 있던 신입사원 중 한 명이 나를 바라보며 선배님! 하시는 일 말고 선배님이 누구인지?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싶어요. 선배님 소개에 선배님이 보이질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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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황하지 않은 척) 아~~ 네~!!!라고 대답하고 내가 말한 "자기소개"를 번개처럼 되내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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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사원 말이 맞았다. 무의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던 <저는 OO팀에서 OO을 담당하는 OO입니다>라는 소개는 몇 년 전에는 전임자가 사용했었고, 몇 년이 지나면 후임자도 사용할 수 있는 자기소개 였다.
그래서, 그들이 듣기에는 나의 자기소개는 회사에 존재하는 수많은 톱니바퀴 중 하나를 소개하는 말에 지나지 않았고, 그 안에는 "내"가 없다는 것을 알아챈 것이다.
나의 자기소개에는 시간이 지나면 제가 없어지겠지만, 여러분들의 자기소개에는 시간이 지나도 여러분의 개성이 살아남아길 바랍니다.라고 당부하며 서둘러 교육을 마쳤다.
교육을 마치고 생각해 봤는데, 나는 내가 회사에서 개성이 넘치고 주체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지금껏 살았는데, 나도 모르게 나 자신을 회사의 부속품인냥 설명하는 걸 보니...음...좀 씁쓸했다. 그래도 나는 중요 부속품일꺼야!! 라고 생각하며 그들과 점심을 먹으러 갔다
다음날, 사내 공지사항을 보니 신입사원 대부분이 본인들이 원하는 팀으로 발령받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 3개월 후 -
백호에게 메신저가 왔다.
백호 : "안녕하세요. 저 3개월 전 신입사원 교육을 받은 백호입니다.
나 : (나는 그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집은 제주도이고, 부모님께 부담을 주기 싫어 고시원에서 출/퇴근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그 누구보다 긍정적이고 개성 넘치는 존재였다.) 당연히 기억하죠.. 잘 지내죠?
백호 : 음........... 아니오
- 정 적 -
나 : 왜요? 무슨 일이 있어요?
백호 : 혹시 회사 밖에서 30분만 면담 부탁드려도 될까요?
나 : (기분이 쏴~ 하다) 네, 건너편 스타벅스에서 10분 후에 보시죠..
-스타벅스에 도착해서 호지티라떼 2잔을 시켰다.-
백호 : 바쁘신데 시간 뺏어 죄송해요
나 : 아닙니다. 무슨 일이 있으세요?
백호 : 저 ..저....저 퇴사하고 싶어요
나 : 입사한 지 3개월밖에 안 되었는데 왜요?
백호 :"별"처럼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면
"별"처럼 모가 났다고 하고
"빨간색"처럼 열정적으로 아이디어를 내면
"회색"처럼 조용히 있으라 하고
"바람"처럼 역동적으로 추진하려 하면
"잡초처럼" 혼자 해결하라고 합니다
이제는 눈치가 보여 회의시간에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힘들어요
백호에게 무슨말을 해야하나?
지금도 나는 업무를 추진하다가 수많은 장벽에 좌절하며,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는 자기검열을 하고 있고, 다양한 협업 아이디어를 제시하기 전에는 괜히 다른 팀들에게 업무 부담이 갈까봐 튀지 않는 무채색으로 살아야지!라고 다짐하고 있었다. 이런 내가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오답이 정답인데
백호에게 말해 줄 정답과 오답이 생각났다
/정답/
백호 씨 회사에서는 커뮤니케이션이 가장 중요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경력 2년은 만들어야 타회사로 이직하기 편합니다. 선배들과 잘 맞추면서 좀 버텨 보세요, 언젠가는 본인에게도 기회가 올 수 있습니다.
/오답/
백호 씨 스트레스로 보낸 지난 3개월조차 너무 아깝습니다. 지금이라도 빨리 본인의 비전에 맞는 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회사가 있는지 알아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회사를 정하고 퇴사하면 좋겠지만, 지금 퇴사해서 새로운 환경을 찾는 데 올인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내가 만약 평범한 직장인이 생각하는 정답을 말해 준다면 그는 자기 생각과 맞지않은 사람들과 오랜시간 함께 업무를 해야 하는 단점은 있겠지만, 어렵게 입사한 직장에서 월급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만약, 내가 오답을 말해 준다면 본인의 미래가 다시 불안해 진다는 단점은 있겠지만, 진정 본인의 길을 발견 한다면 미래에 무한한 기회가 펼쳐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고민 끝에 백호에게 정답과 오답 중 나의 생각을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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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는 3주 후 퇴사했고, 두 달 후 그는 이름만 들어도 아는 외국계 회사에 입사하여 본인의 역량을 십분 발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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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호가 연락이 와서 진지하게 들어줘서 고맙다고 했다. 나는 그를 응원했고 축해해 줬지만 내가 만약 그때 " /오답/"을 이야기해 줬다면 더 멋진 선배가 되지 않았을까? 후회를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