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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엘라 Jan 21. 2022

살고 싶었던 날, 저혈당 쇼크

우울증 정신병원 입원기

  우울증 치료를 위해 병입에 입원한 지 4일째 되는 날 ‘저혈당 쇼크’를 경험했다. 그날은 아침을 안 먹은 상태로 신경안정제(Tercian)만 복용하고 공복 상태로 누워있었다. 계속 누워있으니 무기력한 기분이 너무 심해서 기운을 내려고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다. 그리고 다시 병실로 돌아와 가볍게 옆구리 스트레칭을 하는데 갑자기 손가락이 마비가 된 것처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손가락이 마비되어 뒤틀리는 기분이 들고 먹은 것도 없는데 구토할 것 같고 계속 현기증이 올라왔다. '저혈당 쇼크'가 온 것이었다. (그때는 ‘저혈당 쇼크’라는 증상이 존재하는지 몰랐다.)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 순간이었다. 나는 곧바로 병실 안에 있는 '비상 호출 버튼'을 계속 눌렀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때 이후로 알게 된 것인데 그 '호출 버튼'을 누르면 적어도 30분은 지나야 간호사가 무슨 일이냐며 병실로 찾아오는 그런 시스템이었다. 그다지 비상시에 도움이 되는 버튼이 아니었다.)
  


  눈앞이 뿌옇게 현기증이 계속 느껴지고 세상이 빙빙 도는 기분을 느끼며 겨우 사무실까지 기어가듯 걸어가서 도움을 요청했다. 살면서 처음 느껴본 진짜 죽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정말 무서웠다. 간호사를 부르기 위해 걸어갔던 복도에서 잠깐이지만 별의별 생각이 다 스쳐 지나갔다. '내 손가락에 무슨 일이 생긴 거지? 내 손가락에 장애가 생긴 거면 어떡하나, 앞으로 뭐 해 먹고살 수 있을까?, 결국 내가 이렇게 죽는 건가?' 이렇게 머릿속으로 온갖 호들갑을 떨며 걸어가 간호사에게 내 상태를 얘기했다. 그때 간호사는 자주 겪은 상황인 것처럼 '아주' 태연하게 나를 침대에 눕히고 누워 다리를 머리보다 높게 올리는 자세를 취하게 했다. 
 
   그렇게 5분 정도가 지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해졌다. 내가 생각했던 머릿속 최악의 시나리오들은 일어나지 않아서 괜히 민망했다. 간호사들은 신경안정제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설명해줬다. 잠시였지만 죽는다는 것에 대하여 진짜 가깝게 체험 한 기분이 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검색을 해보니 저혈당 쇼크는 조치를 빨리 해주지 않으면 식물인간 상태나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는 무서운 증상이었다. ‘그때 그 죽을 것 같은 무서움을 꾹 참고 죽었어야 했는데…’ 죽을 수도 있었던 절호의 찬스를 놓치고 안타까워하는 부정적인 마음의 소리가 올라왔다. 그때 살고자 했던 나 자신이 미웠다. 


  정신없이 일요일 오전이 호들갑스럽게 지나갔다. 그리고 낮 12시 점심시간이 되었다. 오전 7시에 기상해서 아무것도 먹은 것이 없어서 엄청나게 배가 고팠다. 나는 언제 '생사의 갈림길'을 헤맸던 사람인지 모르게 차분하게 앉아 밥을 먹고 낮잠을 3시간이나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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