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 한입, 꿀 한입

우울증 치료 이야기

by 미엘라

병원에서의 아침식사는 잼, 버터, 바게트, 차, 커피, 코코아 중에 선택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제공하는 '프랑스식' 아침식사도 맛있긴 했지만 나는 평소에도 간식으로 과자, 초콜릿을 지주 먹어서 아침은 되도록 신선한 과일을 먹으려는 편이다. 입원하고 며칠 동안은 바게트에 쨈과 버터를 발라 먹기도 했지만 얼마 후부터는 밖에서 사 온 과일을 아침식사로 먹었다.

밖으로 자유롭게 나갈 수 없어서 담당의사에게 외출 허락을 받고 병원 근처 과일 가게에 가서 귤이랑 홍시를 사 왔다. 과일가게 안에는 1kg에 1.50유로(약 2천 원)하는 싼 귤과 1kg에 3.90유로짜리(약 5천 원) 비싼 귤들이 있었다. 둘 중에 어떤 귤을 살지 고민했다. 비싼 귤은 생김새도 더 맛있게 생겼고 껍질을 까면 귤의 흰색 부분이 적당히 떨어지면서 귤을 씹었을 때 껍질이 너무 질기지 않아서 꿀꺽꿀꺽 씹어 넘기기 쉬워 보이는 그런 귤같이 생겼다. 프랑스에서 살면서 매번 뭐든지 싼 것을 사는 습관이 몸에 배였는데 이날만큼은 좀 더 비싼 귤을 사고 싶었다. 그리고 원래는 홍시를 살 생각은 없었는데, 과일가게 구석에 잘 익은 붉은 홍시들이 한 묶음으로 예쁘게 포장되어 있는 모습이 너무 맛있어 보여서 충동적으로 사버렸다.

잠깐의 과일 쇼핑을 마치고 병원으로 돌아와 비싼 귤보다 홍시를 먼저 먹었다. 손이 닿자마자 껍질이 슥슥- 갈라지며, 갈라진 틈 사이로 홍시가 조금씩 흘러내렸다. 거친 것 하나 없이 부드러운 홍시를 날름날름 핥아먹고 순식간에 홍시 한 개를 다 먹었다. 손가락에 진한 단감의 향기만 남았다. 물로 가볍게 손과 입 주변을 닦으며 다음날 아침에 먹을 또 다른 홍시를 생각하니 기분이 정말 좋았다. 과일 하나로 이틀의 행복이 보장되니 뭔가 이득을 본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과일을 다 먹고 딱히 먹을 것이 날에는 집에서 챙겨 온 ‘라벤더 꿀'을 바게트에 발라서 아침식사로 먹었다. 나는 라벤더 꿀을 정말 좋아한다. 그래서 병원에 오기 전에 집에서 라벤더 꿀을 가져올까 말까 고민하다가 챙겨 왔는데, 안 가져왔으면 어쩔뻔했나 싶게 잘도 먹었다. 기분이 울적할 때 검지 손가락으로 꿀을 한번 찍어먹으면 라벤더의 향기로움과 꿀의 달콤함으로 인해 잠시 기분이 좋아진다. (입원하고 퇴원할 때쯤에 500g의 꿀이 담긴 병의 바닥이 보일 때까지 거의 다 먹었다.) 신기하게도 라벤더 꿀 향기만 맡아도 뭔가 위로를 받는 느낌이 든다.

어느 날, 우울한 기분이 온몸을 감싸는 것 같아서 병원 침대에 하루 종일 누워서 하루를 축내는 그런 시간을 보냈다. 눈을 감고 숨만 쉬고 있는데도 왜 이렇게 지치는 것인지 내가 소멸되어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에 휩싸여 울다가 쉬기를 반복하는 하루였다. 그날은 밥도 안 먹고 싶어서 먹은 것이라고는 신경안정제와 항우울제가 전부였다. 저녁 8시쯤 되니까 입안이 너무 건조하고 쓴맛이 나서 사탕 같은 것을 입안에 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탕은 없고 생각해 보니 집에서 챙겨 온 ‘라벤더 꿀’이 생각이 났다.


어두운 방 안에서 꿀병을 열고 검지 손가락으로 꿀을 떠서 입안에 한입 넣으니 순식간에 침샘이 자극되어 입안에 침이 고였다. 나는 그 순간이 참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꿀 한입으로 하루 종일 건조했던 입안이 침으로 촉촉하게 적셔졌다. 바닥을 치는 것 같은 우울한 감정이 한결 나아졌다. '괜찮아지는 것이 이렇게 쉬운 일이었나?' 잠시 가만히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귤을 하나 집어서 까먹기 시작했다. 귤 한 알 한 알이 입안에서 터질 때마다 사라졌던 미소가 저절로 지어졌다. 연달아서 귤 3개를 까먹고 나는 향긋하고 고요한 저녁을 맞이했다.


◇ 인스타 @miella_page

◇ 유튜브 : 미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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