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한 평범한 하루
이곳에서의 하루 일과는 식사시간을 기준으로 나눠진다.
오전 8시가 되면 병원 분위기는 조금 소란해진다. 직원 분이 음식 카트를 가지고 다니며 방마다 한 명 한 명 환자에게 아침식사를 나눠주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아침 메뉴는 주로 바게트, 버터, 쨈과 커피, 차를 선택할 수 있다. 아침잠이 많은 나는 무기력과 졸음이 뒤섞인 채로 아침밥을 먹으라는 간호사의 목소리를 알람으로 잠에서 깨곤 했다. 그렇게 아침을 먹고 오전 10시쯤 되면 방 청소를 해주시는 분들이 병실의 구석구석 청소해 주신다.
이 순간 나는 참 그분들에게 죄송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몸을 다친 것도 아니고 신체 건강한 나는 침대에 앉아서 조용히 그분들이 청소를 하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 여간 부끄럽다고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잠시 부끄러운 순간이 지나가고 낮 12시에 점심을 먹는다. 음식메뉴는 매일마다 조금씩 달라지지만 대체로 생선, 계란 요리, 야채볶음, 요구르트, 디저트, 바게트가 식사로 나왔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 맹숭맹숭한 병원밥만 먹으니 뭔가 새로운 것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그래서 외출 허가를 받은 날에 근처 슈퍼에서 '쓰리라차 소스'를 하나 구매했다. 정말로 그 소스 하나 덕분에 병원에서의 생활 만족도가 매우 많이 올라갔다.
그리고 매번 식사 때마다 병원 직원 분이 방안에 들어와 음식이 담긴 쟁반을 책상 위에 놓고 돌아간다. 가끔씩 어떤 직원은 그 쟁반을 책상에 살짝 던지듯이 놓고 나간다. 그들과는 잠시 마주치는 그 순간에, 그 사람들의 비언어적인 행동, 눈빛과 말투는 엄청 쌀쌀맞다. 나는 이곳에서 잠시 치료를 받고 나가면 끝이지만, 그분들에게는 이곳의 흐름이 일상일 테니, 일하는 모습을 잠시 관찰하다 보면 타성에 젖은 느낌을 받는다. 나는 그런 영혼 없는 태도를 참 싫어한다. 왜냐면 타성에 젖은 모습을 보면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기 때문이다. 나도 지난 3년간 버거킹 아르바이트를 하면 기계적으로 사람을 대하고 지나치는 손님 한 명, 한 명이 사람처럼 안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래서 나도 이곳 직원분들처럼 수동적인 태도로 사람들을 대할 때가 부지기수였다. 그분들을 볼 때마다 타성에 젖은 내 모습이 떠올라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꼈다.
직원분들과 조우를 끝내고 차려진 음식을 먹고 있을 때, 간호사들이 항우울제를 주고 내가 잘 먹는지 확인을 한다. 그렇게 오전 시간을 보내고 나면 오후 4시까지는 혼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나는 이때 주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며 시간을 보냈다. 항상 시간이 나면 읽어야지 생각만 하던 일본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이라는 책을 드디어 읽었다. 정신병원에서 이 책을 읽으니 감회가 아주 새로웠다. 이 책에서도 정신병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한 '인간'의 내적 고뇌를 다룬 소설이라 공감하며 읽으니 정말 금방 다 읽었다. 이런 식으로 나름대로 시간을 보내고 오후 4시 간식시간에 또 한 번 직원 분이 음식이 담긴 카트를 가지고 다니며 차, 커피, 디저트 중에 뭘 먹을지 물어본다. 나는 주로 차 한잔을 달라고 부탁하는 편이었고 그러면 간호사님은 크래커나 마들렌과 함께 홍차를 내 앞에 내려놓고 돌아갔다.
어물쩍, 어물쩍 시간을 보내고 나면 저녁 7시 저녁 식사시간이 된다. 저녁 메뉴도 점심과 거의 비슷하면서 조금씩 요리 방식이 다른 프랑스식 메뉴들이 나온다. 아주 뜨거운 야채수프. 계란 야채 타르트, 생선구이, 과일 졸임, 달달한 디저트와 바게트 정말 많은 양의 음식이 나와서 나는 주로 절반도 못 먹을 때가 많았다. 그리고 가끔씩은 너무 입맛에 안 맞는 음식이 나올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밖에서 사 온 과일을 먹거나 초콜릿 과자를 저녁으로 먹었다.
저녁 9시쯤, 간호사들이 신경안정제를 나눠주고, 밤 10시 30분쯤에는 수면제를 나눠준다. 잠시 후 졸음이 몰려오고 스르륵 잠이 든다. 거의 매일 이렇게 똑같은 하루를 반복하며 보냈다. 이곳 병원 환자들의 하루는 이렇게 큰 틀 안에서 별다른 변화는 없다. 나 같은 경우 일주일에 2번 '스트라바토(spravato)'라는 약물치료를 하는 것을 제외하고 앞서 말한 병원의 스케줄대로 일어나고 밥 먹고 최대한 '평범한' 하루를 보냈다. 힘들게 하는 일이 전혀 없었다. 쉬고 숨 쉬고 먹기의 반복이었다. 병원은 삶의 가장 기본적인 것을 충족시켜 주는 공간이었다.
병원에서의 하루가 규칙적으로 흘러가는 것이 마음의 안정을 찾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물론 신경안정제를 복용해서 내 마음이 좀 이완된 기분을 느낀 것에 한몫했겠지만. 규칙적으로 생활 안 한지 너무 오래되어서, 일시적으로 이렇게 병원의 규칙 속에 의무적으로 나를 가둬 놓으니, 마치 내가 올바른 삶을 사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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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튜브 : 미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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