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하고 둘째 날 밤 잠이 들고 새벽에 여러 번 깼다.
병원에 오기 전에도 자다가 깨는 날들이 부지기수였다. 중간에 한번 깼을 때 다시 잠들지 못하면 그때부터 끝없는 생각이 시작되고 온갖 망상으로 이어진다. 이날도 한참을 다시 잠 못 들고 뒤척거렸다. 병원에 누워있는 내 모습이 마치 건조한 사막 속에 혼자 누워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뭔가 내 삶이 아주 잘못되었고 계속 이렇게 외롭게 살다가 고통스럽게 죽을 거라는 생각이 이어져서 두려움을 느꼈다. 두려움이 느껴지면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은 감각이 일어난다. 그렇게 뜬눈으로 건조한 밤을 보내고 나면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를 보낼 힘이 도저히 없다. 이미 해가 떴지만 이미 하루를 다 보낸 것 같은 지친 상태로 힘없이 계속 누워있으면 점점 더 일어나기가 힘들어진다. 계속 눈을 감고 또 수 없이 많은 생각을 하며 괴로운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아침에 정신은 깨어났지만 계속 누워있기를 하다 보면 낮 12시가 금방 된다. 병원에 와서도 그 무기력은 여전했다.
점심시간에 맞춰 직원분이 음식을 쟁반에 담아 밥을 먹으라고 얘기한 뒤 나갔다. 그때 기운을 조금 차리고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 항우울제를 먹었다. 나는 무기력에서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을 때는 뜨거운 물로 목욕을 하며 기분전환을 하려고 시도해 본다. 일단 씻고 나면 개운하기 때문에 기분전환에 아주 도움이 된다. 그리고 잠깐 산책을 나간다. 산책하고 돌아오면 무기력했던 집안의 공기가 달라짐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한번 하루의 흐름을 바꿔주면 남은 하루를 좀 차분하게 보낼 수 있다. 이곳에서도 나의 ‘목욕-산책’ 코스를 이용해서 무기력을 떨쳐내려고 일단 씻었다. 그리고 병원 내에 있는 작은 공터에 산책을 나갔다. 사실 공원이라고 하기에는 면적이 좁아서 산책을 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공간이었다. 그곳에는 흡연자들이 모여서 담배 한번 피우고 시원한 공기 한번 마시고 돌아가는 그런 장소였다. 5분만 둘러보면 사방이 막혀있는 작은 공원은 답답하게 느껴졌다. 내가 왔을 때는 아무도 없었는데 잠깐 사이에 입구 쪽 벤치 쪽에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람들 4명이 모여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이곳 환자 여러 명이 모여있는 모습을 봤다. 다들 뭔가 느리고 졸려 보였다. 나는 비흡연자이다 보니 그 작은 공원에서 뭐 할 것도 없고 햄스터처럼 같은 공간을 삥삥 돌며 걸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냥 내 방 병실로 돌아왔다.
나의 답답함을 의사에게 설명하고 1시간 외출 허락을 받았다. 바로 바깥 산책을 나갔다. 밖에는 눈이 약간 내리고 있었다. 온몸을 꽁꽁 싸매도 소매와 소매 사이로 아주 미세한 틈 사이로 추위가 스며들어왔다. 병원밖에 여러 갈래로 나눠진 길들 중에 어느 한길도 선택해서 걸어가기 애매했다. 어딘가에 가서 걷고 싶었는데 어디를 가야 하는지 막막했다. 여기저기 눈이 잔뜩 쌓여있었다. 고요하게 눈이 내리는 허무한 길거리에서 잠시 고민하다가 걸어갈 의욕이 사그라져서 다시 병원으로 들어왔다. 여러 갈래 길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막연함이 삶에 대한 두려운 감정으로 이어졌다.
나는 가수 타블로 솔로 1집 노래 중에 ‘집’이라는 노래를 참 좋아한다.
“이젠 눈물 없이도 운다. 그저 숨 쉬듯이 또 운다.
집이 되어버린 슬픔을 한걸음 벗어나려 해도
문턱에서 운다. 나도 모르게 운다.”
슬픔을 집으로 비유해서, 언제나 집에 돌아가듯이 마음의 고통은 삶에서 떼어낼 수 없는 감정이라는 것을 간절하게 호소하는 느낌이 너무나 공감이 된다. 이제는 하루 일과처럼 상실한 것 들과 마주하며 시간을 보낼 때가 많다. 이제는 떼어낼 수 없는 감정이 된 것 같은 그리움, 아쉬운 슬픔 그런 것들이 항상 머릿속을 떠돌아다녔다. 이것은 상실을 겪는 사람이라면 어쩔 수없이 마주하게 되는 현실이다. 항상 존재하던 그 사람이 사라진 나의 남은 삶.... 그 허망한 감정이 나를 뒤덮을 때가 많았다.
더 이상 엄마와 같이 카페에 가서 팥빙수를 먹으면서 더운 여름밤을 함께 보낼 수 없고, 엄마의 방에 이제 엄마가 없다니.... 펑퍼짐한 원피스 잠옷을 입고 tv를 보다가 어느새 잠들어버린 엄마의 모습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다. 그때 그녀가 내 옆에서 있었다는 것, 그 여자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 그 사람이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 그것이 찬란한 순간이었다는 생각까지 다다른다. 영원히 내가 엄마를 자세하게 기억했으면 좋겠다. 어제 만났던 것처럼 영원히. 내 기억 속에서는 죽지 않고 계속 살이 숨 쉬고 얘기 나누고 싶다. 아무리 상상과 기억 속에서 엄마를 찾고 만나도 ‘그녀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는 라는 생각에 사로 잡혀버리면 또다시 억장이 무너지는 고통이 찾아오지만..
아... 인정하기 싫고 받아들이기 싫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그 이후부터는 내 삶이 그 두 사람과 얼마나 많이 연결되어 있는지를 깨닫는 여정을 보내고 있다. 죽음을 만난 이후 생각보다 시간이 지나도 슬픔이 좀처럼 줄어들지가 않았다.
분명히 사람들이 시간이 약이라고 했는데... 좀처럼 이 상실감이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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