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우울증 치료 경험담
병원에 입원하기 하루 전날, 알 수 없는 이유로 집에 전기가 끊겼다.
추위에 벌벌 떨다가 겨우 잠이 들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가 눈을 떴는데 오전 11시였다. '삑삑-'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잠에서 깼다. 병원 간호사님들이 내가 전화를 안 받아 걱정돼서 집에 찾아온 것이었다. 나는 어젯밤의 힘들었던 불면의 시간들을 조금 설명했다. 간호사님들은 알겠다고 얘기했고, '오후 2시 30분'에 입원할 거니까 짐을 잘 챙기고 치료 잘 받고 오라며 격려의 말씀을 해주시고 금방 돌아갔다.
입원하기까지 3시간 정도 남기고, 서둘러 방을 치우기 시작했다. 뭔가 방안을 치워야만 할 것 같은 강박적인 생각이 들었다. 나는 몇 주, 아니, 몇 달간 정리라는 것을 잊고 살아서 방안이 쑥대밭이 된 상태였다. 특히, 꼭 정리해야 하는 곳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집구석에 있는 소형 냉장고였다. 병원에서 얼마나 오래 지낼지 모르는 상태이기 때문에 일단 냉장고를 싹 다 비워야 했다. 그리고 전기가 끊겼으니 성애가 잔뜩 낀 작은 냉동실 칸의 얼음이 천천히 녹아내리고 있었다. 녹아내리는 얼음으로 인해 냉장고 주변 바닥은 물이 고여있는 상태였다. 이 상태를 그냥 방치하고 병원에 갔다가 벌레가 꼬여서 이름 모를 벌레들이 내 냉장고에서 숙식을 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나는 밤새 추위에 떨어 지쳐버렸고 며칠간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극도로 피곤했다. ‘누가 나 대신 내 인생 살아줬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무기력한 몸을 움직였다. 냉동실의 얼음이 2/3 정도 남아 있는 상태라 깔끔하게 전체 냉장고를 비울 수는 없었지만 일단 버릴 것은 거의 다 버리고 대충 냉장고를 비웠다. 급 수습을 마치고 나니 병원으로 갈 시간이 되었다.
병원 측에서 택시를 불러주었고 덕분에 10분 만에 병원에 도착했다. 나는 택시기사님의 안내에 따라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간호사님이 나에게 지정된 '223번 방'으로 안내해 주셨다. 병실에는 넓은 창문이 하나 있었고 2개의 침대가 보였다. 내가 배정받은 방은 2인실이었지만 나 혼자만 사용했다. 창문 옆에는 병원 의자처럼 생긴 매우 안락해 보이는 초록색 의자가 하나 있었다. 창문을 활짝 열려고 문 손잡이를 당겼는데, 주먹 하나가 통과할 정도밖에 열리지 않았다. 좁은 틈 사이로 바깥공기를 잠깐 마셨다. 아주 차가운 공기가 병원의 온도와 아주 달랐다. 지난밤에 오들오들 떨면서 잠을 자서 실내의 온화하고 적당한 온도가 너무나 반가웠다. 전기가 왜 끊긴 건지 아직도 생각하면 속 터지고 골치 아프지만 잠시 잊기로 했다.
방을 안내해 준 간호사님은 짐 검사를 하며 가위나 칼 같은 도구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자해를 할 수 있는 도구들이 있나 살펴보는 짐 검사 시간을 가졌고 약물 검사를 하는 것인지 침을 뱉는 용도의 작은 보관통을 주었다. 그리고 특별하게 먹지 못하는 음식이 있냐고 물어봐서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얘기했다. 간호사는 용건을 다 끝내자 조용히 병실을 나갔다. 병원에는 은은하게 소독약 냄새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서 나는 약간의 눅눅한 향기? 가 오묘하게 섞여서 느껴졌다. 가져온 짐을 대충 정리하고 잠시 가만히 있었다. '여기서 얼마나 지내려나' 알 수 없는 안도감 와 걱정이 동시에 들었다.
간호사들은 수시로 내방을 왔다 갔다 거리며 뭔지 모를 기계로 내 건강상태를 체크하고 돌아가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사실 평소에 거의 혼자 아무도 안 만나고 지내다 보니 간호사들이 여러 번 왔다 갔다 병실로 들어오는 것이 생각보다 상당히 불편하다고 느꼈다.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그냥 주변에 사람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좀 익숙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그날 오후 4시 30분쯤 담당의사를 만나 간단한 상담을 했다. "오스니 Housni"라는 생소한 이름의 의사가 나의 담당의사였다. 의사 옆에는 간호사 2명과 학생 1명, 총 4명이 나를 둘러쌓고 이야기를 하게 되어있다. 1대 다수로 이야기하는 것이 매우 부담스러웠고 외국사람이라서 그런지 더 거부감이 들어서 ‘네/아니요’ 그것 이상의 대답이 안 나오고 목소리가 잘 안 나왔다. 의사의 말투는 매우 조심스러웠고 어린아이를 대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또 한 번 우울증 증상과 나의 이야기를 쓴 종이를 보여주며 내 삶을 설명했다. 그는 나에게 질문했다. ‘프랑스어가 어려운 건가요? 말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건가요?’라고 질문했다. 나는 '프랑스어도 어렵고 말하는 것도 어렵네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가족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 눈물이 줄줄 쏟아졌다. 눈물은 적당한 시간에 적당히 흘리면 감정 해소에 도움이 되겠지만 나처럼 병적으로 자주 흘리면 조절이 안 돼서 꽤나 마음이 고통스럽다. 나의 내면은 마치 '크게 부풀어 오른 풍선' 하나에 작은 바늘이 스치기만 해도 호들갑 떨면서 바람이 빠지듯이, 가만히 멀쩡하게 있다가도 나를 스치는 작은 감정 하나에도 호들갑 떨면서 슬퍼했다. 내 마음속에는 그런 커다란 풍선 같은 슬픔들이 수도 없이 많아서 눈물이 시도 때도 없이 터진다. 상담을 하는 그 순간에도 그렇게 호들갑스러운 눈물이 내 두 빰 아래로 수없이 흘러내렸다. 거의 울기만 했던 첫 상담을 마치고 내 방 병실로 돌아왔다. 간호사들은 나에게 '때르시엉(Tercian)' 이라는 안정제 복용하게 했고 시간과 함께 약기운이 몸에 퍼지면서 나의 상기된 얼굴은 점차 차분해졌다. 그날부터 아침, 점심, 저녁으로 조금씩 용량을 다르게 5mg, 10mg, 20mg씩 매일 안정제를 복용하며 약으로 나의 마음의 불안을 가라앉히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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