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시도 3번 하고 코마 상태에서 깨어났다.

자살시도 부작용 코로나 후기

by 미엘라

병원을 퇴원하고 나서 충분히 치료를 받았음에도 나는 2022년, 지난 1년간 3번의 자살시도가 있었다.


3번째 자살시도는 한국으로 돌아가기 일주일 전 금요일이었다. 외국 생활을 정리하려고 물건을 열심히 버리다 보니 어느새 방안이 텅 비어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고 그날은 모든 것을 끝내기 좋은 날 같았다. 여태까지 이 정도 살았으면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삶을 더 살아가는 것이 말이 안 되는 그런 기분을 느꼈다. 비어있는 방에 앉아서 ‘내 삶이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눈물이 나왔다. 그런 약한 마음이 들기 시작하고 마음의 고통이 나를 죽일 것처럼 옥죄었다. 그래서 모아놓은 약을 먹고 잠시 후 잠에 들었다. 내가 기억하는 금요일 밤의 기억은 여기까지다. 약을 먹고 금요일부터 화요일까지의 기억이 전혀 없다. 얼마큼 약을 먹었는지 어떤 모습으로 간호사들을 본 건지 병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5일 동안의 기억이 전혀 없었다. 이런 경험은 또 처음이었다.

잠들고 일어나니 응급실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렇게 스르륵 일어나서 이틀 동안은 계속 자다가 깨기를 반복했다. 이틀 동안은 배도 안 고팠다. 눈뜨면 계속 잠이 와서 잠을 잤다. 몸을 움직이면 근육통 때문에 온몸이 아팠다. 몸을 대충 살펴보니 오른쪽 다리 여기저기에 긁힌 상처가 있어서 조금 쓰라렸고 옷에는 피 자국이 조금 묻어있었다. 모두가 다 아픈 장소에서 약한 모습으로 누워있으니 ‘육체의 고통’에 대한 공포심이 많이 올라왔다. 암환자 엄마, 아빠의 아픈 모습도 생각나고 응급실에 누워 있으면서 인간으로서 어찌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해 많은 한계와 좌절감을 느꼈다. 예전에 오빠가 나에게 말했다. ‘자살할 거면 어디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죽어’라고. 그 말처럼 어디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죽음을 선택하고 싶었다.


의사 선생님께서 5일 동안의 상황을 대충 설명해 주셨다. 간호사님이 약을 주러 우리 집에 들렀는데 내가 문을 안 열어줘서 소방서에 연락했고, 문고리를 부수고 집에 들어왔다. 나는 코피를 흘리고 제정신이 아니었고 병원에 오고 코마 상태가 되었다. 급하게 응급실에 실려와서 치료받았고 그렇게 5일이 훌쩍 지나가버렸다는 것이다. 이 얘기를 듣고 ‘죽음에 좀 가까이 갔었구나. 실패해서 조금 아쉽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SAM_2343.JPG 병원 사진

계속 누워있다가 화요일 밤에 화장실이 너무 가고 싶어서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몸을 일으켜 세우기만 했는데 온몸의 근육통 때문에 고통스러웠고 일어서면 힘이 없어서 바로 쓰러질 것 같았다. 몸을 움직이기가 정말 어려웠다. 그래도 오줌이 마려우니 화장실에 가는 것을 도전해 봤다. 걷기가 너무 힘들어서 간호사님의 부축을 받고 겨우겨우 한걸음, 한걸음 걸어서 변기에 앉았다. 문제는 소변이 엄청 마려운데 도대체 오줌 줄기가 나오지를 않아서 5분 동안 변기에 앉아서 멍 때리며 소변을 기다렸다. 며칠 동안 계속 누워있어서 그런지 소변을 어떻게 보는지 잊어버린 사람처럼 그냥 변기에 앉아만 있다가 결국 소변줄을 이용해 볼일을 봤다. 살 것 같았다. 호스를 삽입할 때 생각보다 아프지 않았지만 맨 정신에 소변줄을 달아보니 심리적으로 상당히 거북했다.


급한 볼일을 보고 다시 침대로 돌아와 흐느적거리는 몸을 누였다. 그런데 응급실에서 물을 따로 챙겨주지를 안아서 입이 극심하게 말랐다. 약 부작용인지 계속 끝도 없는 갈증과 입마름으로 혓바닥이 정말 말라비틀어지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괴로운 며칠 지나고 환자가 끊이지 않는 정신없는 응급실을 벗어나 병실을 배정받았다. 병실에 입실하고 나서는 근육통과 벌레 환각을 계속 봐서 좀 괴로웠다. 병원이 엄청 낡아 보이고 거미줄이 쳐져있는 그런 환각이 보였고 거미가 내 발가락 위로 올라오는 그런 소름 돋는 이미지들이 보여서 너무너무 기분이 이상했다. 영화 올드보이의 개미 장면과 비슷한 이미지들을 봤다. 추상적인 동그라미 무늬 바닥장식들이 구더기처럼 보여서 여러 번 간호사를 불러 벌레들이 너무 많이 있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제정신이 아닌 것은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그 소름 돋는 벌레 환각은 3일 뒤부터 사라져서 정말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그리고 또다시 병원의 느린 일상에 동화되어 무기력한 일주일을 보냈다. 그나마 집에서 물건을 챙겨 올 수 있게 허락해 줘서 노트북을 챙겨 왔다. 그래서 앉아있을 힘이 좀 나면 그전에 여행하면서 찍은 영상들이 있어서 그 영상들을 편집하며 시간을 어찌어찌 시간을 흘려보냈다. 영상 속에서 활발히 움직이고 있는 내가 ‘나’가 아닌 것 같았다.


약 부작용 때문에 온몸이 아픈데 한국으로 가기까지 3일이 남은 상태였다. 계속 아파서 도저히 비행기를 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행기를 타기는커녕 공항까지 가지도 못 할 것 같았다. 다행히도 비행 날짜를 연기할 수 있어서 사회복지사 선생님의 도움으로 귀국 날짜를 2주 뒤로 미뤘다. 모든 것이 뒤로 미뤄지고 정말 정말 지루한 시간을 보냈다. 회색 큐브 같은 병실에서 홀로 있는 것은 정말 온 세상에서 멀어진 아득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6년 전, 엄마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나서 삶이 죽음으로 가는 긴 여정으로 밖에는 안 느껴졌다. 프랑스에서 지내는 동안 ‘꼭 죽어야겠다’라는 마음을 품고 있었는데 3번의 자살시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약 부작용 때문에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근육통으로 고생하고 있다. 길고 길었던 3차 병원생활을 마치고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문을 부순 상태라 고치는 비용 150유로를 지불해야 했다. 더 많이 나올 줄 알았는데 다행히도 그 정도에서 상황 수습은 끝났다.


퇴원하고 일주일이 지나고 조용히 귀국 준비를 하던 어느 날 어이없게도 코로나에 걸려버렸다. 자살시도 이후 몸이 약해져서 그런지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마주한 것이다. 또다시 출국을 5일 남겨놓고 코로나에 걸려서 정말 여러모로 난감하게 프랑스에서 2주가량을 더 지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외국에서는 숨 쉬는 시간이 늘어난 만큼 그 시간을 다 돈으로 매워야 했다.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정신적, 경제적 타격을 받고 우울한 며칠을 보냈다. 코로나 증상으로 몸이 너무 아파서 병원에 다시 입원하고 또 혼자 절망의 시간을 보냈다. 자살시도와 코로나로 인해서 몸이 급격하게 약해졌다. 몸이 아프니 정말 맨날 눈물이 끊이지를 않았다. 한국에 도착하기 전까지 정말로 몸이 참 많이 아파서 힘들었다.


병원에 있으면서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탈출구가 필요했다. 격리하는 기간 동안 마인드 컨트롤하려고 예전에 여행을 다녀온 영상을 편집하며 시간을 보냈다. 영상편집은 늘 현실을 도피하기 좋은 도피처가 되어준다. (결국 퇴원할 때쯤 여행 영상 편집을 다 마쳤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너무너무 힘들었던 2022년 11월, 12월이었다.



◇ 인스타 @miella_page

◇ 유튜브 : 미엘라



↓병원 입원하고 속얘기 찍은 영상↓

https://youtu.be/L1woKFF8NhE


↓현실도피에 도움되었던 나의 파리 여행기↓

https://youtu.be/AVDHepo870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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