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의 선물
아빠의 장례식 이후로 고기를 안 먹고 산지 3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다.
고기와 거리를 두기 시작한 이유는 '죽음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었다. 가족의 죽음을 경험하고 난 뒤부터, 나의 주위를 둘러보니 온통 죽어가는 것뿐이었다. 내 주변 사람들, 친구들, 나 자신조차도 그저 잠시 이 생을 스쳐 지나가는 죽어가는 존재로만 보였다. '고기 한점'은 살아 숨 쉬던 동물의 '죽은 살'이라는 생각을 한 이후부터 나의 식습관은 예전과 달라졌다.
예전에는 불그스름한 생고기를 보면 군침이 돌고 '저걸 불판 위에 구워 먹으면 참 맛있겠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생고기를 보면 죽음의 이미지가 피어올랐다. 빨간 생고기를 볼 때 느껴지는 기분이 사뭇 달라진 것이다. 그때부터 장을 볼 때 소고기, 닭고기, 돼지고기를 구매하지 않았다. 더 이상 이런 불쾌한 감정을 느끼면서 고기를 먹고 싶지는 않았다. 쓸데없이 까다로운 사람이 된 것 같지만 이러한 나의 심리 변화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다고 내가 현미 채식 같은 ‘건강식을 먹었다’라고 말하기보다는 ‘고기 빼고 다 먹었다’라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빵, 파스타, 야채, 과일 그리고 가끔씩 해산물을 먹는 식으로 끼니를 챙겨 먹었다.
고기를 끊으면서 사람이 고기를 안 먹고도 삼시 새끼를 다 잘 챙겨 먹고살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참 놀라운 일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아빠를 닮은 건지 먹성이 아주 좋은 어린이었다. 초등학생 때 혼자서 닭 한 마리를 거뜬히 먹어 치우는 건장한 1인 1 닭 소녀였다. 삼겹살 먹는 날에는 고기가 바닥날 때까지 젓가락을 놓지 않았다. 그래서 늘 통통한 체격이었고 그것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다. 특히 내가 중, 고등학생 때 스키니 진이 유행하면서 나는 두꺼운 내 다리를 보며 항상 불만이 많았다. 사실 먹는 양만 좀 줄였어도 내가 입고 싶은 바지를 충분히 입었을 텐데…. 그 시절의 나는 참 뭐든지 많이 먹고 배 터지게 먹는 안 좋은 습관이 있었다. 아무튼 나의 삶의 기쁨 중에 하나가 '고기 먹기' 였던 사람이었다. 그랬던 내가 채식을 하다니, 사별의 영향이 이토록 크게 작용한다는 게 놀랍다.
참 재밌게도, 무언가를 더 얻고 갖고 싶은 욕심에서 시작한 나의 프랑스 유학 생활은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것을 포기하고 내려놓을 수 있게 흘러갔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일도 나한테 정말 큰 영향이 있었고 학교에 입학하고 1년 동안 이사를 한 4번 다니면서, 내 삶의 구성하는 짐들을 샀다가 풀었다가 썼다가 풀었다를 반복하면서 소유와 집착의 무게감을 피부에 와닿게 느꼈다. 채식을 시작한 무렵 늘 쌓아놓고 살았던 가지고 있는 옷의 절반을 버렸다. 내가 꽉 쥐고 있던 것을 내려놓았을 때 느껴지는 홀가분함과 자유는 정말로 커다란 포기의 선물이었다.
나는 예술가가 되고 싶다는 목표를 가지고 유학을 시작했었다. 그 과정에서 노력의 포커스를 잘 못 맞춰서 내가 정말 못하는 부분에 필요 이상의 노력을 하며 시간 낭비도 많이 했었고, 그렇게 다른 곳에 노력을 하다 보니, 진짜로 내가 했어야 할 부분들을 놓칠 때도 많았다. 요즘에는 큰 욕심을 버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마음 편한 것,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큰 욕심은 나를 크게 변화시켜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을 의미한다. 욕심부리지 말고 내가 현재 할 수 있는 것에서 나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니 사는 게 좀 더 수월한 느낌이다.
그리고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이나, 내 자존감을 깎아내리는 사람, 어쩌다가 알고 지내던 친목도모를 위한 사람들도 만나지도 않고 연락을 하지도 않는다. 이렇게 관계를 정리하니까, 사실 남는 사람도 거의 없고 ‘나’라는 인간이 오롯이 보였다. 뭐가 부족하고 뭐가 적당한지 조금씩 깨닫고 있다. 내가 해야 할 것 내가 하고 싶은 것 구분하면서 나 자신을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현재로서는 나는 나의 40대 50대 그 이후가 두렵지 않다. 물론 지금은 돈도 없고 가진 것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인간이지만.. 나의 중년의 삶을 생각해 봤을 때 크게 걱정이 되지 않는 이유는, 첫 번째로 나는 내가 인생에서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해야 할 하는 사람인지 어느 정도 알게 되었고, 내가 지향하는 삶에 도달하기 위해 그저 시간과 노력이 쌓이면 경제적인 문제는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생계를 위한 내가 할 수 있는 노동을 동반하며, 창작을 계속하면서 살고, 언젠가 적당한 시기에 나를 찾아올 행운을 만날 것을 기대하며 하루하루에 집중하며 살 것이다. 그 행운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해도 괜찮다 나는 충분히 내 삶을 열심히 살았으니까.
두 번째로 내가 이상한 남자와 결혼하지만 않는다면, 더 이상 가족문제로 고민, 걱정할 일이 없다. 물론 가족 중에는 오빠가 한 명 남아 있긴 하지만, 나랑 한 살 차이 밖에 안 나고 오빠가 어쩌다가 아프게 된다고 해도, 이제 나는 오빠 한 명만 돌보면 더 이상 가족을 돌보기 위해 내 시간과 돈과 마음과 걱정을 쓰지 않아도 된다. 이제 더 이상 아프신 부모님을 돌봐야 하는 것도 아니고, 건강하신 부모님이 언젠가 아프시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할 필요도 없다. 이 모든 것은 상실이 나에게 준 자유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은 쉴 새 없이 시도 때도 없이 내 마음에 찾아오지만, 나는 그 마음을 잘 끌어안고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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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튜브 : 미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