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생각한 것들을 글로 남기고 그림으로 그리고 표현해야지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어쩔 수 없는 인간들’이라고 지칭하고 싶다. ‘어쩔 수 없는 인간’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내면에 쌓여있는 ‘그 무엇’을 표현해내야만 한다. 그러지 못하면 항상 고구마를 먹은 것 같은 답답함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렇게 글을 남기는 것처럼 나도 그 ‘어쩔 수 없는 인간’에 해당되어 늘 작게나마 내면의 무언가를 표현해야지 직성이 풀렸다.
나는 어릴 때부터 막연하게 ‘예술가’를 꿈꿨다. 예술가가 구체적으로 뭘 하는 사람인지 몰랐지만 새로운 것을 창작하고 만드는 것이 좋았다. ‘예술가’라는 추상적이고 모호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흘러 흘러 미술학교에 입학하게 만들었다. 대단한 작품을 만들기를 바란 나의 기대와는 다르게 미술학교를 다니면서 내가 깨달은 것은 예술은 나의 우울함을 표출하는 감정의 해소 도구였다는 것이다. 학교를 다니면서 나는 '화가' 같은 예술가가 되고 싶다고 말하고 다녔지만, 사실은 내 안에 있는 부정적 에너지가 너무 커서 그것을 표출하는 도구가 필요했던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부정적 에너지를 예술로 잘 승화시켰다면 좋았겠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실력자가 많은 학교에 다녀서 주변에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과의 상향비교로 인해 자존감도 많이 떨어지고 창작을 하고자 하는 의지가 많이 사라졌다.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세상에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깨닫는 과정이었다. 학교를 다니면서 나는 창작하는 게 너무 두려웠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커지면 커질수록 자기 비하를 하게 되었다. 그런 부정적인 감정 때문에 창작이 어렵다고 느끼기도 했고, 또 ‘무엇을 창작할 것 인가’라는 ‘그 막연한 감정' 또한 창작이 어렵다고 느낀 요소 중 하나였다. 다른 사람들은 다들 자신만의 작업을 하는데 나는 갈피를 못 잡고 늘 불안했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를 아는 것이 참 어려웠다. ‘내가 잘하면서도 잘하고 싶은 작업을 찾는 것’이 정말 어려웠다. 그래서 늘 나 자신이 창피하고 뭘 하든 부끄러웠다. 때맞춰 이 시기에 차례대로 엄마, 아빠가 사망하고 오래 사귀던 연인과도 헤어지고 나는 삶의 무의미함을 많이 느꼈다. 창작에 대한 열정도 많이 식어버렸다. 그리고 마침내 시간이 흐르고 점차 세상에 그 어떤 것에도 별 감흥이 없어지는 우울증에 빠져버리고만 것이다.
나는 우울증은 육체는 살아있으나 정신이 죽은 상태라고 정의한다. 그렇게 정신이 죽은 상태가 되니 창작은 더 이상 내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런 와중에 졸업전시를 준비하느라 정말 힘들었다.) 학교 졸업 후 길고 긴 우울증 치료 끝에 감정적으로 조금은 회복되고 나서 현재 나는 꿈이 없다. 크게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없다. 한 가지 원하는 것이 남았는데 그것은 잘 죽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우울증의 증상인지 그냥 그럴 수도 있는 생각인 건지 모르겠으나 잘 죽는 것이 꿈이 되었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어쩌다가 부득이하게, 자신밖에 운전할 사람이 없는 순간이 오는 것 같다. 좋든, 싫든, 준비가 되었든, 안 되었든 그 운전대를 잡고서 어디든 출발해야 한다. '지금이 나의 운전대를 잡아야 하는 순간'이라는 사실을 상기할 때마다 두려움이 온몸을 감싼다. 두려움이 많고 자기 확신이 낮은 나는 운전을 하는 일, 즉 삶을 살아가는 일이 너무 무섭게 느껴진다.
물론 그냥 그 자리에 머무르는 것도 선택인 거고, 머무는 곳을 떠나 먼 곳으로 떠나는 것도 선택 중에 하나일 뿐이다. 용기를 내서 시동을 걸고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하면 무언가는 달라진다. 하지만 운전을 하려면 책임이 따르고, 어느 길을 가든 불확실함이 곁에 머물고, 어떠한 변화든 스트레스를 불러일으킨다.
자기 삶에 책임지고 사는 삶. 그 당연한 일이 나는 왜 이리 두려울까?
모든 것에서 흥미를 잃어갈 무렵 학교를 졸업했고 우울증을 크게 앓았고 졸업 이후에는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 하는 마음을 포기했다. 그러고 나서 내가 시작한 것은 인스타그램에 소소하게 만화를 그리는 일이었다. 잘하고 싶은 마음을 포기하니까 비로소 내 작업이라고 부를만한 뭔가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런저런 많은 시도 끝에 나의 예술적 감정해소에는 약간의 글과 그림이 필요할 뿐 붓이 필요하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 하는 만화작업이 나에게 적합한 창작 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하는 인스타툰작업을 지치지 않고 계속해 나아가는 것이 요즘 나의 화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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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튜브 : 미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