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프랑스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심리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첫 상담이 시작되고 어느 시점부터 많이 힘들었는지 질문을 받았다.
나는 2016년도부터 이모, 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 순서대로 시기별로 떠나보낸 가족들의 이야기를 했다. 지겹도록 나의 내면에서 떠돌아다닌 이야기였지만,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눈물이 수도꼭지처럼 흘렀다.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을 얘기를 하면서도 마치 어제 일어난 일처럼 슬펐다. 얘기를 하면 할수록 눈물이 너무 나와서 상담실에 있던 작은 티슈를 한 통을 다 써버려서 부끄러웠다.
삶이 계속되는 것이 고문 같다는 얘기를 했다.
상실한 대상(가족들)이 없는 하루하루가 나에게는 실망의 연속이었다. 몇 년째 매일 좌절을 하다 보니 좌절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고인분들이 마치 어딘가에 살아있을 것 만 같은데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나를 고통의 늪 속으로 끌고 내려갔다. 내가 느끼는 상실감을 색으로 비유한다면 검은색에 가까웠고 향기는 없고 무거우면서도 텅 비어있었다. 나는 텅 비고 무거운 감정을 끌어안고 계속 살아가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내가 죽은 적은 한 번도 없는데, 엄마의 죽음 이후로 마치 내가 한번 죽었던 것처럼 삶이 새롭게 느껴진다. '새롭게 느껴진다'는 표현보다는 '삶이 낯설게 느껴진다'는 말이 맞는 표현인 것 같다. 모든 것이 낯설어졌다. 사용하던 물건들이, 나의 주변 환경이, 당연시 여겼던 모든 것들에서 희망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프랑스에서 지내고 가족들과 이별을 했던 지난 나의 삶의 5년간의 시간을 생각해 보면 가늠하기 어려운 힘든 감정이 올라온다. 그 이유는 그 당시 나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스트레스의 그 이상의 스트레스를 겪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힘들었던 이유를 글로 적어보니 너무 간단한 이유여서 어이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그 감당 안 되는 스트레스를 맞닥뜨리고 제정신으로 멀쩡히 서있는 것은 상당히 어려웠다. 자포자기 상태로 살았던 지난 몇 년간의 시간들이 떠오른다. 시간이 독으로 작용했던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가족에 대한 죄책감을 늘 갖고 사는 게 너무 고통스러워서 죽음만이 그 생각을 멈추게 해 줄 해결책처럼 느껴졌다. 나를 대신해서 암에 걸린 부모님을 돌보았던 친오빠에 대한 죄책감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다. 내가 늘 잘못한 것 만 같은 기분으로 매일 오빠를 보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었다. 오빠 입장에선 나를 용서했든 안 했든 간에, 내가 느끼는 나의 죄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죽음만으로 그 죄를 용서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늘 나의 마음속 도처에 깔려있었다. 나에게 죽음은 도피처이자 마지막 희망 같은 느낌이었다.
상담을 시작하고 내 얘기 계속 이어가는 것이 어려웠다. 계속 머뭇머뭇거리게 되었고 말대신 눈물이 앞섰다.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얘기를 많이 꺼내지 못해서 아쉬웠다. 삼담선생님은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고 얘기를 꺼냈다.
나는 집에서 챙겨 온 사진 스크랩북을 꺼내어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는 엄마의 화장대에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어린 시절 사진과 엄마가 간직해 온 작은 편지들을 모아 모아서 스크랩북을 만들었다. 항상 혼자 오리고 붙이던 스크랩북을 남에게 처음 보여주는 자리였다. 스크랩북을 만들고 나서 10번, 100번, 500번은 넘게 똑같은 페이지를 본 것 같은데. 이 '사진'이라는 것은 봐도 봐도 늘 새롭다. 사진 속에 엄마의 모습은 너무 생생해서 지금 당장 그 모습 그대로 걸어서 나올 것처럼 생생했다. 내 마음속에서 살아 숨 쉬는 엄마가 죽었다는 사실이 참 안타까웠다.
내가 선택한 사진 속 순간들의 행복한 기억을 보며 긍정의 기운을 살며시 느끼기도 했다. 내가 웃고 있는 사진들을 보고 선생님이 예쁘다는 얘기를 해주셨다. 기분이 좋았다. 동시에 내가 웃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수치심이 들었다.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웠지만 나의 웃음은 나의 수치심을 건드렸다. 선생님은 나에게 얘기했다. '슬퍼픈가운데에서 웃어도 된다, 사람이 24시간 슬플 수가 없다'라고. 그 말을 듣고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내 삶이 이지경에 이르렀는데 웃고 있는 것이 부끄러웠다. 나는 죽어야 하고 죽어 마땅한데 행복하게 웃는 게 말이 안 된다고 느끼기 때문에 나의 웃음은 나의 수치심을 계속해서 자극하는 것이었다. 요즘은 이렇게 심리상담을 받으며 하나하나 마음의 찌꺼기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정신과 약물치료를 시작하고 약 1년의 시간이 지났다. 나는 예전보다 많이 차분해졌고 요즘엔 잠도 잘 잔다. (물론 아직 수면제의 도움을 받아야지 푹 잘 수 있지만) 한국에 온 이후로는 5kg이나 살이 붙었다. 그리고 예전처럼 병적이게 죽음을 갈망하지는 않는다. 아마도 치유의 시간들이 있었기에 나의 상태가 예전보다 훨씬 나아진 거라 생각한다. 부디 상실의 처연한 비극을 마주한 이에게 '시간이 약'이라는 무책임 한말로 위로를 건네는 불상사가 없길 바란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그 이별의 아픔, 슬픔이 치유될 거라는 그 말을 나는 참 싫어한다. 나에게는 시간이 흐를수록 아픔의 크기가 커지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니 부디, 시간이 약 같은 소리 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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