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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대문 김사장 Sep 07. 2022

작은 일의 전문가.

중학교 동창, 지금은 중견기업 부장이다. 경력이 20년 되니까 과거에 수시간 걸렸던 업무를 몇분만에 끝내고, 복잡한 일도 맥을 꿰뚫는 능력이 생겼다고 한다. 일의 프로세스를 파악하고 있기에, 무슨 일이 생길지 훤하게 안다. 


녀석은 잠을 충분히 자고, 커디션이 좋고, 걱정 없는 얼굴이다. 당시 나는 어떻게 먹고 살까? 무엇이 되어야 하나?라는 고민으로 일상이 무거웠다. 하지만 녀석은 그 '무언가'가 되어서 우주의 흔적을 내겠다는 야망일랑 없었다. 누군가는 무엇(the one)이 되려고 하는데, 똑같은 노력으로 녀석은 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그럼 너는 무슨 일을 하는거니?묻자,


중학교때 선생님이 이런 말씀하셨지. 


'가장家長은 작은 일에 놀라고, 큰 일에는 놀라지 말아야 한다'고. 


막상 가장이 되니까 더 새가슴이 되더라고. 작은 일에도 놀라지만, 큰 일에는 아마 까무러칠거야. 어떻게 큰 일을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고민했지. 근데, 


'작은 일에 놀라면, 큰 일이 안생겨' 


선생님 말씀은, 작은 일에 더 신경 쓰라는 말이었어. 굳이 말하자면 난 '작은 일의 전문가'야. 생활 전문가, 보험 약관같이 깨알같은 일들,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고, 얼핏 봐도 짜증나고, 힘들게 해내도 티가  안나는 일이 내 일이지. 


난 녀석의 말을 듣고, 직원에게 맡겨왔던 은행일이며, 관공서 공문, 가게 청소까지 직접 챙기기 시작했다. (사실 사장인 내가 제일 한가하다.) 가정에서도 아내에게 맡겼던 아이들 교육이나 집안일에 조금씩 신경 쓰기 시작했다. 해야 하는데 생각만 하고, 묵혀있는 일들이 집 구석구석에는 많다. 다행히도 난 이런 일을 후다닥 잘 해치운다. 작은 일을 하나하나 처리하니까, 머리가 맑아졌다. 


보이스 비엠비셔스. 소년은 야심을 품어도 된다. 심장과 체력이 받쳐준다. 아저씨는 디테일을 품어야 한다. 디테일이라는 반석 위에 성공도 싹튼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안다. 큰 행운이 없어도, 평타는 치는 것이다.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시대에는, 무엇도 되지 않겠다는 결심도 필요하다. 그 무엇은 정교한 계획이나, 콘셉이 아니라, 작은 일들, 일상의 반복으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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