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결혼기념일에 이혼하기 마지막화.
두 번째 결혼기념일에 이혼 변호사를 찾아갔던 나는 이 책에서 밝혔던 정확히 그대로, 다시 한번 가정을 꾸렸고, 이후 4년이 지나 결혼 7년 차에 접어들었다. 정말이지 맞는 구석이라고는 한 군데도 없지만 그럼에도 이제는 나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된 나의 남편은 '두 번째 결혼기념일에 이혼하기' 브런치 북의 열혈 구독자이다. 그는 연재 초반부에는 연재일인 월, 수, 금요일마다 퇴근 후 내 앞에 석고대죄를 일삼았고, 중반부에는 지난 기억으로 가슴 아파했고, 후반부에는 현재 우리 삶의 모습에 감사했다.
'두 달 만에 만난 아빠와 딸' 에피소드가 발행되던 날의 일이다.
사실 나는 해당 에피소드를 쓰면서 무언가 어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마치 퍼즐을 맞추었는데 가장 중요한 한 조각이 없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글을 다 쓰고도 그 이상한 느낌을 떨쳐낼 수 없어 글을 읽고 또 읽었다. 몇 번을 반복해서 읽던 나는 가까스로 그 이유를 짐작해 냈다. 어떠한 마음의 준비도 없이 통보도 없이 하루아침에 아이를 빼앗기고 얼굴도 보지 못하게, 목소리도 듣지 못하게 되었던 남편이 아이를 두 달 만에 만나게 됐는데, 그가 이상할 정도로 침착했던 것이었다. 아무리 당시 기억을 다시 떠올려 봐도 남편이 감정이 격해졌던 장면이 떠오르지를 않았다. 당시 나는 남편이 겉으로는 담담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기뻐서 울고 있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그저 남편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었고, 그래서 나와는 판이하게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꼈었다. 그렇게 제목과는 어울리지 않는 무드의 '두 달 만에 만난 아빠와 딸' 에피소드를 업로드한 날 저녁, 남편이 퇴근해 집에 오자마자 하루종일 기다렸다는 듯 나에게 따지고 드는 것이었다. 내용인즉슨 내가 과거를 왜곡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아이와 '우리 집'에 놀러 오던 그날이 자신이 아이를 두 달 만에 처음 보는 날이냐며, 나더러 거짓말을 했다 비난했다. 나는 남편이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눈만 끔뻑였다. 남편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내가 아이를 보여주기로 마음을 고쳐먹고 가출 후 처음으로 아이를 데리고 당시 남편 혼자 살던 '우리 집'에 갔던 날보다 일주일 전쯤 남편은 아이를 우연히 만났다. 당시 우리는 아이 돌봄 문제로 나의 친정 부모님과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었다. 하루는 남편이 외출 후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리려는데 자신의 차 앞으로 친정 부모님의 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는 혹시나 아이가 함께 타고 있을까 하는 마음에 차에서 내려 부모님 차를 따라갔다. 남편은 멀찌감치 떨어져 지켜보다가 주차를 마친 부모님 차에서 아이가 내리는 것을 보자마자 아이에게 달려가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아이를 안아봤다는 것이다. 남편은 나의 가출 후 자신이 아이를 처음 본 것은 그 때라고 했다.
전혀 몰랐던 이야기에 나는 남 일 궁금해하듯 호들갑을 떨며 물었다.
"어머어머, 진짜? 나는 왜 몰랐지? 그때 처음 만나서 어떻게 했어?"
나의 해맑은 물음에 남편이 어이없어하며 물었다.
"진짜 그 일을 모른다고? 그때 장모님도 같이 계셨고 장모님이 나를 집까지 데리고 올라가셨는데 어떻게 그 얘기를 모를 수가 있어?"
아마도 나의 엄마가 그 이야기를 내게 굳이 하지 않으셨던 것 같았다.
"와, 나는 정말 몰랐네. 어쩐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거야. 당신이 두 달 만에 애를 처음으로 만나는데, 너무 담담한 거야. 안 그래도 영 뭔가 찜찜하다 했는데, 그날이 처음 본 게 아니었구나!? 그나저나 그때 주차장에서 아이 두 달 만에 만났을 때 어땠어??"
나는 잘못 쓰인 에피소드는 안중에도 없이 그 '진짜 첫 만남의 순간'에 대한 궁금증만으로 가득 차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내가 그날 일을 정말 몰랐다는 것을 깨닫게 된 남편이 허탈한 표정으로 그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땠냐고?? 장모님 차에서 00 이가 내리는 걸 보자마자 달려가서 아이를 받아 껴안고 00아!!! 00아!!! 소리 지르면서 엉엉 울었지! 주차장이 떠나가라 대성통곡을 했어. 내가 너무 정신 못 차리고 우니까 장모님이 동네 창피하다고, 얼른 집으로 같이 올라가자고 하셨다니까? 그래도 한동안 나는 애 껴안고 우느라 움직이지도 못했어. 나는 정말 그때 갑자기 마음의 준비도 없이 아이를 보게 돼서 마음을 다스릴 수가 없었어. 눈에 뵈는 게 없었어. 창피고 뭐고 없었다니까."
이렇게 말하며 당시 자신이 통곡하는 모습을 몸소 재현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자마자 나는 눈물을 왈칵 쏟았다. 하루아침에 아이를 빼앗겨 못 보게 된 아빠가 아무런 준비도 없이 아이를 우연히 만났을 때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그 심정을 표현하는 단어를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 아니, 그 마음이 어떠했을지 어림짐작도 되지 않는다.
그제야 내가 '두 달 만에 만난 아빠와 딸' 에피소드를 쓰며 영 찝찝해하던 부분이 해소되었다. 제목에서 예상되는 무드와 너무도 달랐던, 그래서 내 기억을 재차 의심하게 만들었던 그날은 남편이 아이를 두 달 만에 처음 만난 날이 아니었던 것이다. 후에 알고 보니 나의 엄마가 당시 이혼과 가출의 괴로움에 하루하루 여위어가던 딸에게 '불쌍한 사위와 돌쟁이 손녀의 눈물의 상봉' 소동을 전하지 않기로 결정하셨던 것이었다. 벌써 4년이 넘게 지난, 그날의 자신을 재현하던 남편은 결국 다시 눈시울을 붉혔고, 그간 모르던 '통곡의 상봉' 장면 재현 1인극을 관람하던 내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나는 남편에게 4년 전의 일로 연신 미안하다 말했고, 남편은 벌게진 눈을 하고는 밝게 웃으며 괜찮다며 나를 안아주었다.
"그때 일을 다시 떠올리니, 지금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새삼 알겠어. 글 써줘서 고마워."
남편이 말했다. 전혀 기대치 않은 감사 인사를 받았지만, 내 글은 결코 남편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나의 브런치를 구독 중인 나의 가까운 지인이 한 명 있다. 그녀는 주로 육아 에세이를 쓰던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이혼'이야기를 연재하기 시작한 것이 몹시도 황당했다고 고백했다. 그녀는 이번 책의 첫 화는 황당했지만 그럼에도 흥미진진했다 했고, 두 번째 화를 읽고는 '작가의 서랍'에 저장해야 하는 글을 잘못하여 발행한 줄로만 알았다 말했다. 그렇게 황당하기도, 어리둥절하기도, 한편으로는 흥미진진하기도, 조마조마하기도 했던 나의 브런치북을 매 화 업로드 알람이 뜰 때마다 기다렸다 읽는다는 그녀는 연재 중반 즈음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내게 물었다.
"책 너무 재밌어요! 다음 화가 너무 기대돼요! 그런데요, 정말, 이거 왜 쓰는 거예요?"
진심으로 궁금해하던 그 눈빛에 나는 크게 한 바탕 웃었다. 이번 브런치 북의 모든 에피소드가 종료된 이제야 비로소 내가 당시 그녀에게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나의 소중한 구독자 분들께 들려드릴 수 있게 되었다.
레프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고, 모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의 이유로 불행하다.
지금으로부터 4년 전, 나는 몹시도 불행했다. 나의 결혼생활은 적당히 불행했지만, 나는 그 적당히 불행한 결혼 생활을 너무나도 끝내고 싶은데, 그러질 못하여 나는 세상 끝까지 불행했다. 이는 실로 엄청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불행한 생활의 탈출을 감행하지 못하는 것에 더 탈출의 원인보다 더 크게 불행해하다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실생활에서 이러한 모순을 심심찮게 자행한다. 대표적으로 직장생활에서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다니며 불행함을 느끼는데, 실상 직장 생활이 주는 불행함보다 그곳을 탈출(이직 또는 퇴사) 하지 못하는 현실에 더욱 크게 불행해한다. 이와 반대로, 같은 직장에서 동일한 괴로움을 느껴도 이직이나 퇴사의 소망을 품고 있지 아니한 자들이 있는데, 이들은 이직이나 퇴사의 소망을 품고 있는 자들에 비해 확연히 덜 불행함을 느낀다. 이들이 같은 직장에서 다른 이들과 비슷한 수준의 괴로움을 느끼면서도 해당 직장을 관둘 마음을 갖지 않는 것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믿음 또는 마음가짐에서 기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만 한 데 없다'
'여기서 나가봐야 별 볼 일도 없다'
'여기나 저기나 거기나 도긴개긴이다'
이러한 태도에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평생직장 마인드'이다. 이는 공무원처럼 정년퇴직 시점까지 그 회사에 붙어 있을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회사를 못 다니게 되는 날이 오기 전까지는 한 눈 팔지 않고 쭉 이 회사에 다녀야지, 하는 '회사에 대한 태도'를 말한다. 이러한 평생직장 마인드로 회사를 다니는 자들에게는 하루하루 그날의 소소한 괴로움은 있을지언정 '인생에 대한 한탄'이나 '자신의 처지에 대한 비관'과 같은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의 삶의 고통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만나온 수많은 기혼자들의 사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확히 톨스토이의 통찰대로 '각자 저마다의 이유로' 결혼 생활을 불행해하거나 힘겨워한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런 면에서 직장 생활과 결혼 생활은 닮아 있다. 삼삼오오 모인 자리에서 소위 '회사 욕'을 하지 않는 사람을 좀체 만나보기 힘들듯, 결혼 생활에도 각자 제각각의 괴로움의 요소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나의 경험상, 이와 같은 다양한 괴로움의 상황에서 결혼 생활의 '행복'과 '불행'을 가르는 것은 바로 '결혼에 대한 태도'였다. 어떤 사람들은 과거의 나와 마찬가지로 '할 수만 있으면 정말이지 이혼이라는 걸 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서 별 수 없이 산다'라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은 아무리 결혼 생활이나 배우자가 밉고 짜증스러워도 '이혼'이라는 것을 염두에 조차 두지 않고 그저 살아간다. 나는 과거에는 전자에 해당했고, 현재는 후자에 속한다. 그리고 후자에 속하게 된 지금, '웬만해서는 이혼하지 않는다'는 마음가짐은 동일한 괴로움의 상황이나 짜증의 순간에 나를 보다 더 너그럽게 만들어 주고, 쉽사리 흔들리지 않게 해 준다.
당시 괴로운 결혼 생활과 그보다 더 큰, 이혼을 하지 못하는 괴로움의 심해에 거꾸로 내던져져 있던 나는 일기장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사람이 절대 하면 안 되는 일을 정말이지 죽도록 하고 싶을 때,
만약 그 일을 하지 않고 참으면 참느라 너무 괴롭고 힘든 나머지 미쳐버린다.
만약 그 일을 끝내 해버리면 죄책감으로 너무 괴롭고 힘든 나머지 미쳐버린다.
어쨌든 양단간에 모두 미치도록 되어있다.
결혼 2주년을 맞이하던 나에게는 '이혼'이라는 게 바로 그 '정말이지 죽도록 하고 싶은 일'이었다. 동시에 그 일은 내게 '절대 하면 안 되는 일'이었다. 나에게는 돌쟁이 딸아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출산예정일보다 한 달이나 빠르게, 1.98킬로그램의 작은 몸으로 나온 그 아이의 무게가 나에게는 천근처럼 느껴졌다. 나는 결혼 직후부터 임신 기간 내내 이혼을 바랐고, 거칠 것도 무서울 것도 없었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난 후에 세상이 바뀌었다. 나는 달라져야 했다. 나는 더 이상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 수가 없었다. 그러기에는 아이의 존재감이 너무도 컸다. 그래서 나는 내 마음이 그토록 간절히 원하는 이혼을 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 병들어갔다. 나는 처음에는 결혼 생활이 괴로워 이혼을 갈망하게 되었지만, 이후에는 그토록 원하는 이혼을 하지 못하는 상황 자체에 더욱 큰 괴로움을 느꼈다. 내가 그토록 이혼을 원하게 만든 결혼생활의 괴로움 보다 그렇게나 원하는 이혼을 하지 못하는 괴로움이 더 컸던 것이다. 괴로움에 몸부림치던 나는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절대 하면 안 되는 일을 하건, 하지 않건, 종국에는 결국 미쳐버리게 되어 있다면, 하고 미치는 쪽을 택하기로. 그렇게 결심을 하고 처음으로 이혼 전문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간 날이 공교롭게도 나의 두 번째 결혼기념일이었다. 나는 지하철을 타고 변호사 사무실이 있던 교대역으로 가는 동안 그날이 결혼기념일임을 알아채고는 인생이 참으로 소설 같다 생각했다. 남들은 두 번째 결혼기념일에 무엇을 할까 생각하니 몇 가지 이미지가 떠올랐다. 꽃다발, 손 편지, 작지만 고급스러운 케이크, 샴페인, 어둑어둑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과 허세 가득한 음식들, 그리고 두 남녀 사이를 잔잔히 메우는 사랑과 감사와 행복이 공존하는 따스한 분위기. 이런 이미지를 떠올리자 내 처지가 더욱 한스러웠다. 언제부터 내 인생이 이렇게 영화 같아졌을까, 생각하며 한숨을 지었다. 그리고 그 순간에 나는 나의 이 기구한 이야기를 언젠간 글로 써봐도 좋겠단 생각을 했다. 물론 '성공적인 이혼 스토리'로.
그리고 내가 18화에 걸쳐 연재한 이 책의 내용대로, 나는 지옥 같던 이혼 생활과는 또 다른 마음의 지옥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이혼을 꿈에서도 부르짖을 때는 결코 알지 못했던 많은 사실들과 교훈들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의 과정에서 나는 다시 생각했다. 이 이야기를 꼭 글로 써야겠다고. 물론 이전과 같이 '성공적인 이혼 스토리'가 아니라 '성공적인 이혼 실패 스토리'를 말이다. 나는 결국 이혼에 실패했고, 실패한 이혼 경험은 이전에는 그저 지옥 같던 결혼 생활을 퍽 만족스러운 결혼 생활로 바꾸어 주었다. 나는 내가 이혼 소송 과정을 경험해보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이런 안정적이고 감사가 넘치며 행복으로 가득 찬 결혼 생활은 불가능했을 것이라 감히 확신하게 되었다.
나는 이혼을 결심하기까지 결혼 생활 내내 '이건 정말 아니야'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국 이혼을 감행했다. 그런데 이혼 진행을 하면서 '이건 정말 더 아닌 것 같은데?'라는 의심을 한 시도 떨칠 수 없었다. 그토록 꿈에서도 염원하던 이혼을 막상 실행으로 옮기고 보니, 앓던 이가 빠진 것 마냥 속 시원하다거나, 역시나 하길 잘했다 싶은 일이 하나도 없었다. 결혼 전 꿈꾸던 삶과 결혼 후의 삶이 전혀 딴판이었듯, 내가 이혼 전 꾸던 꿈과 실제 이혼을 마주한 현실은 완전히 달랐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나의 소중한 가족과 가정을 되찾은 나는 앞서 말한 '평생직장 마인드'를 결혼 생활에 적용하는 것이 순탄한 결혼 생활의 치트키임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결코 '결혼이라는 것이 신성한 것이기 때문에', 또는 '아이가 있어 이혼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결혼이라는 것에 평생직장 마인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결혼이라는 것은 인간이 만든 제도에 불과하고, 자신과 함께 행복하게 살기 위해 세상에 내놓은 아이가 자신의 삶에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적어도 일단 '결혼'이라는 것을 자의로 수행했다면, 모름지기 그 '결정'과 '행동'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한다고 믿게 되었다. 결혼은 단지 두 사람이 같이 사는 행위가 아니다. 부모가 만들어준 '가정'에서 분리되어 나 자신이 '새로운 가정'을 꾸리겠다는 의지의 수행이다. 그렇다면 내가 내 손으로 창조해 낸 그 가정을 훌륭히 다스리고 경영해 가는 것이 나의 인생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태스크가 됨은 응당하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모든 과정이 그러하듯, 세상에 없던 새로운 '가족'과 '가정'을 창조하고 유지하는 일에는 엄청난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막상 이 엄청난 창조의 과정을 경험해 보니,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인구가 증가하는 현상이 지극히 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결혼과 출산을 인생에서 배제키로 한 이들이 한 편으로는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달픈 것은 사실이다. 가족이나 아이가 주는 삶의 의미나 행복, 도덕심과 인류애 따위의 심오한 이야기를 차치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그 '창조'를 선택한 이라면, 그 선택에 합당한 헌신을 해야만 할 것이고, 이때 그 헌신이라는 무거운 짐을 한 결 쉬이 지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평생직장 마인드'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만 한 데 없다'
'여기서 나가봐야 별 볼 일도 없다'
'여기나 저기나 거기나 도긴개긴이다'
이렇게 나의 선택을 믿고, 어떻게든 내가 만든 가족과 가정 안에서 행복의 요소를 찾아내 함께 살아갈 방도를 찾고자 하는 의지는 매일 결코 순탄하기만은 할 수 없는 결혼 생활의 피로와 괴로움을 '피로와 괴로움 그 자체'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 줄 것이라 믿는다. 적어도 그 괴로운 삶을 벗어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서 더욱 큰 괴로움을 느끼는, 내가 겪은 아이러니를 다른 누구도 경험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나는 4년간 묵혀둔 나의 치부를 이토록 기꺼이 내보이게 되었다. 물론 이 세상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사람들과 수많은 삶의 모양이 있고, 그 보다 더 많은 생각과 의견들이 존재하므로 나의 이 마음이 모두에게 전달될 것이라고는 결코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만 몇 명에게라도 나의 이 미천한 '돕고자 하는 마음'이 가닿을 수 있다면 나는 무척이나 행복할 것이다. 내 '이혼 소송 후 재결합'이라는 수치스러운 과거가 누군가에게는 '리얼하게 잘 만들어진 이혼 시뮬레이션'이 되어 주기를, 그래서 그 시뮬레이션을 통한 가상 이혼 체험 만으로도 내가 깨달은 소중한 것들을 모두 얻게 될 수 있기를, 그래서 내가 겪었던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을 단 한 명만이라도 피해 갈 수 있기를, 나는 바란다.
마지막으로, 미천한 작가의 미친듯한 감정의 변화로 점철된, 어찌 보면 마음 불편할 수도 있는 이 책을 읽어주시고, 응원해 주신 모든 구독자 분들께 진심 어린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