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찾았다기엔 가져본 적 없는

두 번째 결혼기념일에 이혼하기 18.

by 리얼라잎
그들은 그 후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삶이 동화라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약속대로 부부상담을 받았다. 나는 부부상담을 통해 남편이 자신의 성격상의 결함을 깨닫고 내 앞에 참회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우리는 함께 상담을 받기도 하고, 개별 상담도 진행했다. 이를 위해 다양한 기질, 성격, 심리검사도 진행했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내가 아는 최고의 반전 스토리는 영화 '식스 센스(The Sixth Sense, 1999)'였다.

'브루스 윌리스가 유령이었어.'

그런데 부부 상담 결과는 내게 '식스 센스'를 넘어서는 반전이었다.

'남편이 아니라 내가 또라이었어.'


내가 도무지 한 구석도 이해할 수 없는 '또라이'라고 여겼던 남편의 기질과 성격은 종합해 보자면 '별스럴 것 하나 없는 그저 평범한 인간 그 자체'였다. 그에 반해 나는, 상담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런 사람 진짜 찾기 힘든데요'였다. 대부분의 검사 항목이 0 아니면 100, 양 극단에 아주 자유롭게 치우쳐 있었다. 알고 보니 세상 살며 좀체 만나기 힘든 '별종'과 사느라 고달픈 사람은 내가 아닌 남편이었던 것이다. 더불어 알게 된 사실은-새롭게 알게 된 것이라기보다는 이미 익히 잘 아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한 것에 가깝지만-나와 남편은 기질이나 성향, 세계관 등 모든 면에서 맞는 구석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오랜 시간 연구하고 논문을 써온 사람으로서, 정말이지 이토록 맞는 게 하나도 없는 두 사람이 어떻게 그토록 불꽃같은 사랑을 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언젠가는 꼭 한 번쯤 제대로 된 연구를 해보고 싶다는 강한 욕구까지 느끼게 되었다.

부부 상담을 통해 나는 함께 살기 힘든 사람이 남편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남편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게 쉽고 간단하기만 하던가. 나는 적어도 나에게는 도무지 불가해한 남편의 말과 행동에 지속적으로 불만을 표출했고, 남편은 불 보듯 뻔한 내 반응을 몸소 깨달아 익히 알면서도 번번이 꼭 내 말을 받아침으로써 나의 화에 기름을 부어댔다. 우리는 재결합 이후로도 이혼 전과 별다를 것 없이 싸웠다. 하지만 이전과는 크게 다른 차이점이 하나 있었으니, 우리 두 사람 모두가 '아무리 싸워도 절대로 이혼만은 하지 않는다'는 결심으로 무장했다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그 결심하나로 많은 것이 달라졌다. 무엇보다 아무리 싸워도 어차피 이혼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므로, 소위 '끝장을 보자'는 마인드가 아니라 '적당히 하고 넘어가자'는 마인드를 장착하게 되었다. '절대 싸우지 말자'가 아니라 '적당히 하고 넘어가자, 어차피 끝낼 것도 아닌데'라는 자세를 갖는 것만으로도 상대에게 한 결 더 너그러워질 수 있었고, 금방이라도 타오를듯한 분노를 상당히 잠잠케 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이든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옛말은 과연 진리였다. 과거의 나는 '반드시 이혼을 하고야 말 거야'라는 결심으로 가득 차 있었기에, 아무리 사소한 다툼도 언제나 종국에는 '이혼하자'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코 이혼만은 안 한다'는 마음가짐은 내게 너그러움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었고, 적당히 참고 넘어가는 방법도 터득하게 해 주었다.


또한 상담사는 개별 상담 시에 내게 '산후우울증'이 있었는데도 모르고 지나쳤을 수 있다고 예상했다. 그리고 그렇게 우울증에 걸린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강하게 이혼을 원하며, 이혼이 모든 상황의 해결책인듯한 생각을 갖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내가 맹목적으로 이혼을 부르짖었던 이유가 혹시 산후우울증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었다는 의견은 나를 조금은 서글프게도, 한편으로는 안도하게도 했다. 그리고 상담사의 예상은 크게 틀리지 않았다. 우리가 재결합한 지 반년 정도 지났을 즈음, 나는 그간 나 자신을 돌보지 않고 몰아붙이기만 했던 생활 방식과 삶의 태도에 대한 대가를 결국 치르게 되었다. 나는 심각한 우울증과 무기력증에 빠져 어느 날 갑자기 자리에 드러누운 후 일 년 넘게 그 누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내겐 휴지 한 장 뽑을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어떻게 그렇게 순간적으로 사람이 에너지 고갈모드에 빠질 수 있는지, 그동안 나를 움직이던 에너지들이 과연 내 안에 존재한 적이 있었는지 조차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밤잠을 못 자고 두 시간 간격으로 모유수유를 하면서도 창업을 준비하고, 육아와 회사일을 병행하면서도 틈틈이 창업 준비를 이어가고, 그 와중에 가출과 이혼 소송까지 감행하던 그 폭발적인 에너지는 다 어디로 간 것일까 궁금했다. 나는 아이를 돌보기 위한 최소한의 노동을 제외하고는 꼼짝없이 집에 누워만 있었다. 평생을 그렇게 드러누워 있어 본 적이 없었으니, 하루 이틀만 누워있어도 죄책감에 안달이 나서 다시금 무엇이라도 해보려고 에너지를 사용하면 몸을 움직인 시간의 서너 곱절을 더 누워있어야 했다. 누워있다 힘겹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곧장 다시 고꾸라지기를 일 년이 넘도록 반복한 후에야 내 병이 쉬어야 낫는 병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역시 무지(無知)는 병을 키운다.


당시 남편이 다니던 회사는 집에서 2시간 거리로, 남편은 매일 왕복 4시간 동안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는 고역을 치르며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나는 당시 내가 무기력증인줄도 모르고 아무런 의욕도 기력도 없이 그저 마냥 드러누워있었다. 남편에게 나의 이런 증세를 공유할만한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하루에 몇 시간 아이를 돌보는 시간만으로도 나는 노예노역을 한 것 마냥 손 쓸 수 없이 방전되어 남편이 퇴근해 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아이와 함께 잠들 뿐이었다. 남편은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내가 손가락 하나 까딱 하지 않아 고스란히 방치된 살림을 돌보았다. 그는 왕복 4시간의 통근과 고된 업무 끝에 겨우 집에 돌아와서는 그득히 쌓인 집안일을 시작했다. 그는 분명 내가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와중에 집안일에 손조차 대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긴 시간 동안 내게 싫은 소리 한 번 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남편은 당시 나의 병을 알지도 못했다. 내가 아파서 그런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면서도 그저 말없이 고된 몸으로 집안일을 혼자 다 해냈다. 나의 병세가 아주 조금 나아졌던 어느 날, 나는 부쩍 야윈 몸으로 밤늦게까지 설거지와 청소를 하고 있는 남편 등 뒤에다 대고 말했다. 역시 드러누운 채였다.

"미안해."

'나도 내가 왜 아무것도 할 힘이 없는지 정말이지 모르겠다. 나 때문에 당신이 너무 힘든 것 같다.' 따위의 구차한 설명은 생략했다. 모르긴 몰라도 그렇게 길게 이야기를 할 힘조차도 없었을 것이다.

남편은 수척한 얼굴로 내게 웃으며 답했다.

"괜찮아. 내가 하면 돼. 진짜 괜찮아."

예상 밖의 대답에 내가 물었다.

"내가 집에서 놀면서 아무것도 안 하는데, 어이없지 않아?"

내 물음에 남편이 헛웃음을 치며 말했다.

"아이고, 그럼 어때, 그냥 하기 싫은가 보다 하지. 사람이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가 있잖아. 내가 하면 되는데 뭐."

나는 그날 깨달았다. 남편이 그동안 살면서 한 번도 나한테 '먼저' 싫은 소리를 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싫은 소리는커녕 잔소리 비슷한 것도 한 적이 없었다. 내가 먼저 화를 낼 때만 꿋꿋이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내 화를 돋웠을 뿐이었다. 나는 그동안 나의 지적에 '미안해'라는 한 마디로 쉽게 넘어가지를 못하고 싸움을 이끌어내고야 마는 남편의 지능을 의심했었다. 하지만 남편에게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던 것이었다. 자신은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이해하고 넘기는 일들에 사사건건 분노하는 나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내가 우울증과 그로 인한 무기력증에 빠졌다는 걸 나는 한참 후에야 알았다. 우울증이 점점 심해져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게 되자 두려움을 느낀 나는 어느 날, 역시나 밤이 늦도록 내가 방치해 둔 살림을 살던 남편에게 진지하고 차분하게 말했다.

"내가 조만간 나도 모르게 죽을지도 모르겠어. 그러니까 당신은 정신을 잘 차리고 살아. 내가 잘못되면 00이 잘 키워야 하니까, 꼭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 해."

일종의 유언이었다. 너무나 놀란 남편은 나를 붙들고 쏟아내듯 물었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런 것이냐고.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되었느냐고. 자신은 그동안 그저 내가 좀 쉬고 싶은 것이라고만 생각했다고 말하며 슬피 울었다. 그는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말고 괜찮아질 때까지 언제까지고 푹 쉬라며, 그때까지 이미 근 일 년을 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쉬기만 한 내게 신신당부를 했다.


나는 그동안 남편으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아왔다 생각하며 남편을 증오했다. 사람 사이의 모든 일이 그러하듯 인과관계가 명확히 일대 일로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므로, 나의 이 생각은 반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가 남편을 통해 치유되었다는 사실이다. 두 해 가까이 지속된 나의 우울증과 무기력증에 대해 단 한 번의 내색이나 잔소리 없이 그저 묵묵히 지켜봐 준 남편은 거의 다 죽었던 나를 되살아나게 했다. 가끔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밝은 무드로 시도 때도 없이 기막힌 장난을 치는 천진한 그의 성격에는 내가 우울증 환자라는 것조차 순간적으로 잊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나는 가까스로 우울의 늪에서 빠져나온 후 깨달았다. 어느 한 구석 맞는 곳이라곤 없는 나와 남편은 알고 보면 환상의 짝꿍이라는 것을. 내 우울한 감정에 조금도 공감하지 못하며 시시 때때로 어이없다 못해 허를 찌르는 드립을 날리는 그 사람이 우울이란 우물에 빠진 나를 펌프질 해 올리는 나의 구원자였다. 그는 나를 돕기 위해 억지로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그가 그저 천성대로 살면 나는 자연히 치유가 되었으니 말이다. 하늘 아래 어떤 두 사람이 이보다 더 잘 맞는다 할 수 있을까?


나와 남편처럼, 사람은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위로와 살아갈 힘을 주기도 한다. 다시 함께 살게 된 남편과 나, 아이 우리 셋은 서로에게 상처를 줄 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상대에게 응원과 위안이 되고자 노력하며 지내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노력하는 모습에 감사한다. 다시 찾은 가정이지만, 되찾았다기엔 한 번도 제대로 가져본 적 없는 가정이다. 우리는 잃어버렸던 것이 아니라 새롭게 하나를 만들어 본래의 이름을 붙여주었다.

‘가족’


전쟁 같은, 폭풍 같은 이혼 소동을 통해 비로소 우리는 '진짜 가족'이 되었다.

마침내 진짜 가족이 된 우리는 여느 가족들처럼 서로 고마워하고, 사랑하고, 그만큼 미워하고, 때로는 서로에게서 벗어나기를 꿈꾸며 그렇게 특별할 것 없이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특별할 것 없음'에 매일 감사한다.

'무척이나 특별했던' 나의 이혼 드라마를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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